[미디어펜=이상일 기자] 논문번역료, 시장조사비, 해외관광 및 골프비 명목 등으로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와 외국계 의료기기 판매업체, 이들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의사 536명이 대거 적발됐다.
2010년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도 처벌하는 '쌍벌제'가 도입된 지 5년이 됐어도 리베이트 관행이 개선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검찰은 향응으로 받은 금액이 300만원 이상인 의사 4명만 재판에 넘겼다.
외국계 회사도 리베이트 제공에 나서는 등 리베이트 관행이 만연한 것으로 확인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 서부지검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의료기기나 의약품을 판매하고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인 A사 한국지사장 김모(46)씨와 B제약회사 영업이사 손모(46)씨 등 업계 관계자 7명과 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긴 신모(47)씨 등 의사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2013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해외 제품설명회 등 명목으로 신씨 등 정형외과 의사 74명을 방콕이나 하와이 등지로 데려가 골프관광을 시켜주는 수법으로 총 2억 4천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의 회사는 미국계 의료기기 판매업체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과 일본 등 전세계 19개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제약회사 영업이사 손씨의 경우 2010년 9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의사 461명에게 500여 차례 약 3억 5천90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손씨는 리베이트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의사들에게 논문 번역료나 시장조사 응답 보상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지만 정작 의사들은 번역과 시장조사 등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실제로 의사들이 논문을 번역한 것처럼 회사가 따로 논문을 번역해 두는 경우가 많았고 제품 설문지는 허위로 작성해 둔 회사도 있었다"고 전했다.
대학병원 의사 김모(48.불구속 기소)씨는 특정 의약품을 처방해 주는 대가로 7개 제약회사 관계자들로부터 15차례 2천여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선결제해 놓은 업소에서 공짜로 술을 마시거나 아예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리베이트를 뿌린 회사들과 의사 339명은 보건복지부 등 담당 기관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받은 금액이 수십만원 수준인 의사들은 행정처분 의뢰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그동안에는 리베이트 단속이 국내 제약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번 수사를 통해 외국계 기업도 리베이트 제공 등 불법적인 영업행위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두차례 이상 적발될 경우 제약회사에 엄중한 제재를 가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는 작년, 금품 제공자 외 수수자도 처벌토록 하는 '쌍벌제'가 2010년 시행됐지만 리베이트 관행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리베이트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