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 사인이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허 일병의 죽음을 자살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하고 헌병대의 부실수사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10일 판결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이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군은 재조사를 거쳐 의문사위 조사 결과가 날조됐다고 주장했지만, 2기 의문사위원회도 다시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놓으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해 국가가 유족에게 9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결론을 뒤집었다.

항소심은 허 일병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으로 흉부와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봤다.

M16 소총으로 복부와 머리를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형태의 자살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또 3군데 총상 모두 가까운 데서 총을 쏴 생긴 상처라는 점, 살아있을 때만 나타나는 '생활반응'이 나타난 점을 고려할 때 생존시 스스로 총을 쐈을 가능성이 높고, 머리의 혈액이 흐른 방향이 일정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시신이 옮겨지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병대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져 사건이 30년간 의문사로 남았다며 유족의 고통을 고려해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