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결정한 근거와 과정, 책임 소재를 놓고 26일 국회에서 정부와 의료계가 또다시 첨예하게 맞붙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이날 오전과 오후에 걸쳐 연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에서 정부와 의사단체는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고, 의대 증원의 필요성과 비현실성에 대해 각자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특히 2000명이라는 의대 증원 규모를 누가, 언제, 어떻게 정했는지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가 빗발친 가운데, 증인으로 나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가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지난 2월 회의 이전엔 2000명에 대한 언급이 나온적 없었다"고 증언했다.
"내가 결정했다"는 조규홍 장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 청문회에는 정부를 대표해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과 이기일·박민수 1·2차관이, 의료계에서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비롯해 강희경 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포문을 연 것은 보건복지위 의원들이었다. 비판의 초점은 의대 증원을 결정한 '근거'와 '주체'뿐 아니라, 결정 과정에 대한 '비공개' 진행에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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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사진 왼쪽)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은 조규홍 장관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2024.06.26.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이날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보정심) 이전, 2000명이라는 숫자가 언급된 회의가 있었냐"며 "보정심 회의록에서 일부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회의를 하고 증원을 통보했다, 큰 문제를 이렇게 결정하는게 맞냐"고 정부를 향해 다그쳤다.
민주당 이수진 의원 또한 "2000명 증원안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후 비공개로 했다가 보정심 발표 이후에 바로 확정 발표했다"며 "이걸 보고 밀실 행정이라고 한다, 이게 바로 의료대란 사태를 만든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에 조규홍 장관은 "2000명이라고 하는 숫자는 그냥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며 "의-정 협의체에서 4차례에 걸쳐 수급 전망에 대한 논의를 했고, 이와는 별도로 전문가 수급 전망에 대한 논의를 했고, 전문가 포럼도 했다"고 답변했다.
조 장관은 이날 의대 증원 근거 및 결정 주체와 관련해 "제가 결정한 사항"이라면서, 대통령실로 의대 증원 책임의 화살이 향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나섰다.
조 장관은 "복지부가 어떤 인원을 정했는데, 대통령실에서 그걸 해서 숫자가 바뀌었다는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잘못된 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실에는 보정심이 올라가기 직전 사회수석실을 통해서 오늘 2000명을 보정심을 올려서 논의하겠다고 실무자를 통해 말씀을 드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거듭 의혹이 제기되자, 조 장관은 "아까도 말씀드리지 않았냐"며 "(의대 증원은 대통령실이 아니라) 제가 결정했다고,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라면서 언성을 높였다.
이에 대해 임현택 대한의협 회장은 이날 남인순 의원의 질의에 "현 사태는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의료) 시스템을 (손댄) 복지부 차관과 공무원들이 만든 것"이라며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의사 증원을 포함해 의료개혁 4대 과제를 발표했다"며 "의사 증원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대책을 통해 필수의료 과목들이 제대로 진료할 여건을 만들 수 있는 내용을 정책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보상을 위해 수가 보상 체계를 바꾸고, 사법 리스크를 가장 어려워하기 때문에 그런 보호장치도 갖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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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06.26.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의대 증원을 결정한 근거와 관련해, 정부는 이날 청문회에서 '제대로 된 2000명 숫자를 찾을 수 없었다'는 답변도 내뱉어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이날 조 장관에게 '정부가 의대 증원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 3건에 20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오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조 장관은 "(2000명이라는 의대 증원 숫자는) 없었다"며 "KDI 논문 외 2개 보고서에도 없었다"고 답해 의혹을 키웠다.
이러자 박주민 위원장은 "(의대 증원이) 굉장히 주먹구구식이었다는걸 보여 준 한 예"라며 "정부가 굉장히 나이브하게 상황을 평가하고 예상하고 대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료제출에 비협조적인 정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돌출된 또다른 쟁점은 보건복지부가 자료제출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위는 이날 의대정원 배정위원회 회의자료, 2000명 증원에 대해 대통령실 및 국무조정실에 보고한 날짜 등을 사전 제출 자료로 요구했지만, 보고 받지 못한 것을 항의하고 나섰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은 "이번 청문회의 핵심은 '왜 증원 규모가 2000명인가'를 밝히는 것인데, 정부는 그 근거 자료를 법원에만 제출하고 국회에는 '재판 중인 사안'임을 이유로 내지 않았다"며 "법원은 믿고 국회는 안 믿는다는 뜻인가"라고 지적했다.
박민수 차관은 이에 "논의한 것을 몇월 며칠날 논의했는지를 특정하기가 지금은 자료 확인이 좀 쉽지가 않다"며 "어디 기록이나 이런 것들이 남아 있지 않다, 정리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해보겠다"고 말을 아꼈다.
근거뿐 아니라 또다른 쟁점은 의대 2000명 증원을 결정한 주체와 불투명한 추진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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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06.26.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이날 정부를 겨냥해 "많은 국민들이 2000명에 대해서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총선용으로 2000명을 얘기했다"며 "아니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을 덮기 위해서 이렇게 물타기를 한 것이다, 심지어는 윤석열 대통령이 '천공'이라는 사람 때문에 2000명을 결정한 것이다, 이런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개호 의원도 "이천공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이천공 성이 이씨기 때문에 2000명을 정했다는 설이 돈다"며 "이천공의 성이 오씨나 육씨였으면 어쩔뻔했냐?"고 물었다.
김선민 의원 또한 "정부가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한다"며 "문제는 이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왜 1000명도 1500명도 아닌 2000명이냐"며 "항간에 떠도는 대로 진짜 2000공 때문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는 전공의 공백 기간을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도 쏟아졌다.
박주민 위원장이 "전공의 이탈 기간이 얼마나 오래 갈지 예상했느냐"고 묻자, 조 장관은 "의료 파업은 과거 전례에 따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렇게 넉 달 넘도록 지속될 것까지는 예상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의료대란이 이렇게 장기간 이어질 줄 정부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데 국민 생명이 장난인가"라며 "(정부가)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지"라며 일침을 가했다.
의협 회장 "의료 시스템 붕괴시킨건 정부"
한편, 임현택 대한의협 회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보건복지부에서 (의료계의) 해외 파업 사례가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파업은 의사 기본권"이라며 정부와 뚜렷한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임현택 회장은 민주당 소병훈 의원의 질의에 "복지부가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했고, 노예 취급을 했다"며 "저도 압수수색을 두 번이나 당하고, 10시간 가까이 경찰 조사를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대화가 되겠나"고 반문했다.
이어 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의료계 파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냐'고 묻자, 임 회장은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킨 건 복지부"라며 "정부는 전공의들과 의사들한테 의료 개혁이 미래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줬다"고 명확히 선을 긋고 나섰다.
의료공백 사태의 중심으로 관심을 모았던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 청문회에 불참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이날 처음으로 직접 얼굴을 맞대고 국회의원들의 질의 속에 답변을 주고 받았지만, 갈등의 골과 서로 다른 입장은 한치도 좁혀지지 않았다.
조 장관이 이날 의대 증원에 대해 '모두 자신이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방어막을 쳤지만,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을 철회하지 않고 의료공백 사태가 길어질수록 의료계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대정부 공세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