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자유, 민주주의, 평등의 딜레마…답은 성공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는 폭넓은 학술활동을 통해 기업정책 및 경제발전 연구에 매진한 ‘기업경제’ 전문가다. 좌 교수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동반성장 기조를 회복시킬 방안에 대해 기존 주류경제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 교수는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을 통해 “오늘날 세계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고난도의 경제문제와 더불어 한국경제 동반성장의 해법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박정희 시대의 기업부국패러다임, 신상필벌의 차별화원리 속에 있다”고 밝힌다. 미디어펜은 향후 한국경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좌승희 석좌교수의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의 일부를 발췌하여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다섯 번째 연재다. 저서를 펴낸 곳은 출판사 ‘백년동안’이다. [편집자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⑤] 반 박정희 논리의 허점들

반 박정희 논리는 이와 같이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고 논리적으로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 모든 논리가 각자의 이론이나 이념에 비춰 박정희 정책이나 그 성공이 수반한 결과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도그마화된 자기 안경으로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은 “그럼 이들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이론이나 이념은 옳은 것인가”, 혹은 다른 말로 “그렇다면 이들 이론이나 이념을 따르면 궁극적으로 경제발전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적이면 이들의 평가는 올바른 평가일 수 없고 실사구시적 학문태도와는 거리가 먼 그저 자기 도그마에 빠진 자기만족적 평가에 그치고 만다.

질문1: 시장만의 힘으로 성공한 경제가 있는가

인류가 지속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소득을 키워 온 일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최근 200여 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인류는 그전까지 수천만 년을 겨우 생계유지도 어려운 빈곤 속에 살았다. 지금의 서구 선진국들은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적 도약을 이루던 시절 사적재산권등 새로운 시장제도를 도입하면서도 모두가 정부의 산업 육성정책에 매달렸다. 20세기 이후 경제도약을 이룬 나라는 하나같이 시장중심적이지 않은 풍토에서 산업 육성정책을 통해 일어섰다.

또한 오늘날 지구상에 북한 말고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는데도 지구상 200여 개의 나라 중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4분의 1 정도에 그치고 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도처에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시장경제가 널려 있지 않은가? 도대체 시장은 다 어디 가고 지구촌 곳곳의 가난은 방치되고 있는가?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들과 주류 경제학은 이들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좌승희 著)은 ‘기피의 대상’으로 방치된 한국경제의 핵심적 시기를 경제학적 분석의 화두로 삼은 저작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적 본질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박정희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성공원리를 밝히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은 경제적 자유와 사유재산권 제도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할 일은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뿐으로 산업정책 등을 통해 직접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가시적 경제발전 성과를 보여 온 대다수의 나라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자유의 신장보다 정부의 산업정책을 중시해 온 나라들이다. 지금의 중국은 얼마나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고 있는가? 연평균 9퍼센트가 넘는 30년간의 성장이 자유시장경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세계무역기구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개입을 금지하면서도 오늘날 선진국들은 왜 눈에 보이게 안 보이게 산업 육성정책을 시행하고 있는가? 주류 경제학계 및 자유시장경제론자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주류 경제학이나 자유주의 경제학계는 이상의 관찰과 질문에 대해 별 신통한 설명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장경제이론은 ‘주어진 자원과 부의 최적 배분원리’로서 최상의 정치성을 뽐내어 경제과학(economic science)이라고 노벨상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새로운 자원과 부의 창출원리’, 즉 경제의 발전이론으로서는 현실 설명력을 잃고 있다. 이론상의 시장, 즉 완전경쟁시장은 이미 신처럼 도그마화가 되었으나 아직도 빈곤과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의 경제성장과 발전의 해법은 오리무중인 셈이다. 배분경제학(allocation economics)을 넘는 더 높은 차원의 발전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은 아직도 암중모색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류경제학이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한다고 보는 소위 이단적 정책으로 이룬 당대 최고의 동반성장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진다.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정책이 최고의 성장을 가져온 기현상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자유는 그 자체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일 수 있지만 이것이 자동으로 경제발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유시장경제론자들의 딜레마는 또 있다. 경제적 자유가 충분치 못했던 박정희 시대의 성공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난 30여 년 동안 선진국 진입을 한다고 관치 청산과 경제자율화에 매진해 온 한국경제가 오늘날 부딪치고 있는 성장정체, 양극화, 분배악화문제를 설명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일부 시장 중심론자들이 견강부회식으로 박정희 시대가 경제자유를 신장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런 해석이 일부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경제자유의 신장에 나섰던, 박정희 시대 이후 오늘날의 경제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 이르면 설명이 궁색해질 뿐만 아니라 이쯤 되면 소위 경제적 자유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애매해지게 된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질문2: 선(先) 민주화가 경제발전을 가져온 경우가 있는가

오늘날 민주주의는 하느님의 경지에 이르러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절대적 선이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 모든 경제문제에도 ‘민주’라는 접두어나 접미어가 최상의 인기 용어가 되고 있다. 경제발전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가 선결되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이 인기를 얻고 있다. 물론 이는 자유시장론과 결합하여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많은 나라들 중에 시장경제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가 몇이나 되는가? 감히 별로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역으로 지난 세기 가시적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들이 진정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국은 물론 중국, 싱가포르, 타이완이 민주주의를 해서 성공했다1)고 할 수 있는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선진화된 서구 선진국들의 19세기 도약과정이 오늘날 같은 민주질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오늘날 서구 선진 민주국가들의 경제는 본받을 만큼 역동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혹은 경제발전은 친구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역사발전의 끝이라 했는데 성급한 결론이 아닌가 싶다.2)

   
▲ 좌승희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야말로 생산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 또는 부(富)를 창출하는 핵심장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요체는 ‘시장경제’라기보다는 ‘기업경제’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좌 교수는 박정희 경제정책이 자본주의 본질적 기능인 ‘기업경제’에 부합하도록 추진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시대 정책패러다임을 ‘기업부국 패러다임’으로 정의한다./사진=미디어펜

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나아가 경제발전은 친구가 되기 어려운가? 우선 이들의 원리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그 원리로 하지만 후술하는 바와 같이 시장은 항상 결과의 불평등을 만들어 냄으로써 동기부여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끄는 장치이다. 시장경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그 기본원리이다. 따라서 민주정치가 정치 영역을 넘어, 즉 정치적 평등을 넘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게 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나아가 경제발전이 같이 갈 수 없게 된다. 오히려 민주정치가 경제발전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정치개혁보다 시장경제개혁을 먼저 한 중국이 이와 반대로 개혁을 한 러시아나 여타 동구권 체제전환국들보다 더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이제 정치학계, 정치경제학계, 정치계의 민주지상주의가 경제발전의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박정희의 권위주의 정치가 어떻게 경제발전과 양립할 수 있었는지도 어느 정도 보일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도그마로 박정희 혹은 경제발전 문제를 보는 것은 뭐라 할 수 없겠으나 민주화가 되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옳은 명제가 아님을 명심하면 좋겠다.

질문3: 기업의 성장과 경제력의 집중 없이 경제가 발전하는 예가 존재하는가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다. 자본주의 경제는 주식회사 기업제도의 혁신을 통해 진화해 온 경제체제이다. 그리고 그 발전도 기업의 성장발전을 통해 견인되어 왔다. 오늘날 국가 간 1인당 소득의 순위와 『포춘』 500대, 1,000대 일류기업의 보유 순위와 대기업 비중(경제력 집중)의 순위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3) 그리고 후술하는 바와 같이 기업의 성장 없이 경제발전은 없다. 성공하는 기업에의 경제력 집중 없이 성공한 경제가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혹자들은 타이완을 반대 예로 들겠지만 이는 적절한 예가 아니다.4)

질문4: 평등한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가

시장에만 맡겨 놓는다고 해서 경제가 발전한 예를 찾기가 어렵지만 또한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이 없이 경제가 발전하기도 어렵다. 현실시장은 경제적 노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함으로써, 즉 경제적 불평등을 촉매로 모두를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장치이다.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과와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한 보상을 받는 사회가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없음은 너무 자명하다. 이런 사회는 전 국민의 사보타지, 즉 일 안하기 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바로 경제평등원리 때문이고,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은 바로 시장의 불평등 창출기능 때문인 것이며, 그래서 평등지상주의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는 일임을 이제 이해할 수 있으리라.

   
▲ 삼성전자든 현대차든 골목길 치킨집이나 편의점이든 기업의 본질은 매한가지다.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돈을 버는 데에 있다. 지금의 경제는 과거 농경사회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거래비용을 줄이는 기업 간의 치열한 가격 경쟁을 통해 굴러가는 경제며, 여기서 소비자로부터 선택받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의 윈윈게임이다./사진=미디어펜

경제발전의 본래 의미는 모두가 가난하고 평등했던 농경사회가 점차 부자들이 생성되는 산업사회로 창발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의 발전과정은 불균형발전이 기본이며 평등발전은 형용의 모순이다. 모두가 발전하면서도 같아질 수 없는 과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지역 간 불균형이 반박정희 논거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으리라.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볼 때 반박정희 논거는 논리적·현실적 근거가 희박하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1) 반론으로 홍콩을 거론할지 모르나 이는 영국의 복제품에 불과하여 후진국 경제개발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2) 후쿠야마(Fukuyama, 1992)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을 통해 인류 역사의 발전은 이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승리를 끝으로 이념과 체제경쟁이 종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시장경제는 물론 민주주의는 서로 충돌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3) 자본주의 기업경제론의 체계적 주장에 대해서는 졸저(2012) 참조.

4) 타이완은 개발 초기 본토로부터 이주한 국민당 정부가 민간 대기업의 독점방지와 경제적 평등을 주창한 쑨원의 민생경제를 실현한다고 대규모 중화학공업과 소위 민생산업 등 기간산업을 국영화하면서 민간자본은 노동집약적 중소기업 부문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들 중소기업들이 초기에는 과거 점령국인 일본의, 그리고 나중에는 점차 미국 등 선진국 기업의 하청기업으로 특화하게 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타이완 통치를 위해 현지 민간 대기업의 출연을 환영하지 않았던 국민당 정부의 이념과도 관계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타이완의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 생태계는 일종의 인위적 결과로서 경제도약의 견인차 역할을 지속하기가 어려웠으며,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정체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현지인 집권세력이 등장하여 민간 대기업 성장을 장려하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ICT산업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크게 신장되어 타이완의 GDP 대비 10대 제조 대기업의 매출액은 2000년 14.5퍼센트에서 2011년 71.3퍼센트로 급증하고 있다. 김군수 외(201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