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천사, 민간은 악마?" 로비 유도하는 법제도…'규제철폐' 정책의지 실종
   
▲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문제는 법체계다: 포지티브제도에서 네거티브제도로
 
자유 시장경제 제도 하에선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민간이 정부나 국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경제자유의 수준이 한 나라의 경제번영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개인의 소유권이 철저히 보장된 경제자유가 높은 국가일수록, 민간의 경제활동은 활기를 띠고, 그 나라는 경제가 번영한다. 공공부문은 뒤에서 소유권을 철저히 보호하면 된다. 그래서 자유시장경제 제도에선 민간영역이 공공영역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로비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선 민간부문이 정부와 국회에 항상 줄을 대고, 로비를 해야 한다. 인지상정의 우리 사회에서 이들에게 조그마한 성의표시를 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간간히 비리 혹은 뇌물로 사회적 문제가 터져 나온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16년부터 일명 '김영란법’을 시행하였다. 점심이나 선물에 대해 각각 몇 만 원으로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이를 넘으면 범죄행위로 다룬다는 획기적인 법률이다. 전 세계에서 보기 어려운 이런 법이 왜 한국에만 일어나야 하는가? 아울러 민간영역은 왜 정부나 국회에 소위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행위를 하는 걸까? 그들이 범죄 집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리한 범법조항을 원하는 건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선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항상 강조하는 정책방향이 '규제철폐’다. 규제철폐로 민간경제를 활성화시켜, 경제발전을 추진한다는 방향도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권에서 처음에는 장황하게 정책의지를 보이다가, 서서히 이슈가 꺼져가는 정책이다. 왜 모든 정권에서 규제철폐 정책의지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가? 정책의지가 약할 것일까, 규제가 본질적으로 철폐하기 어려운 것일까?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고심하던 중에, 의외로 문제의 핵심은 우리 법체계가 '포지티브 제도(positive system)'이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포지티브 제도란 법률조항을 나열할 때, 허용하는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법체계는 정부에서 허락하는 행위만을 민간에서 할 수 있고, 개별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행위는 절대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면 미국과 영국 등의 법체계는 어떨까? 완전히 반대다. '네거티브 제도(negative system)'로서 법률로 할 수 없는 영역만 규정해 놓고, 그 외는 모두 할 수 있는 제도다. 법체계의 이러한 차이는 민간경제 영역에 주는 의미와 영향도가 엄청나게 차이를 가진다.

   
▲ 민간기업이 매번 새로운 창조를 할 때마다 기업은 관료와 국회의원들에게 특정행위를 법률에 넣어주기를 간청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것이 정치의 권력이다./사진=연합뉴스

 
포지티브 제도의 기본철학은 정부는 천사인 반면, 민간은 악마로 본다. 시장의 탐욕은 그침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하나씩 규정해 주지 않으면, 민간의 탐욕은 절제 시킬 수 없다는 시각이다. 반면 네거티브 제도는 기본철학이 민간의 경제행위를 최대한 보장하려고 하면서, 정부는 최소한으로 개입하려고 한다. 정부차원에서 특정 행위를 허용하지 않는 반면, 그를 제외한 어떤 행위도 모두 인정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법체계의 차이는 민간과 정부를 보는 시각의 엄청난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포지티브 제도는 기본철학이 '규제우선제도’인 반면, 네거티브 제도는 '자유우선제도’를 철학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도 포지티브 제도는 '규제우선제도’로 바꾸고, 네거티브 제도는 '자유우선제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 영어의 전문용어이지만, 정책혁신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선 전문용어가 대중인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기 때문이다. 즉 네거티브는 그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차이점은 세상변화에 적응하는 수준이다. 민간은 세상변화에 민감해서, 항상 혁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을 창조한다. 이런 행위에 성공하면, 기업은 지속적으로 이윤을 얻고 발전한다. 반면 새로운 혁신을 바탕으로 한 기업행위가 없으면 그 기업은 망한다. 그래서 기업은 살기 위해서 혁신을 하고, 경쟁에 치열하다.

민간영역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않으면 망한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새로운 세상을 예측할 수 없다. 지금 존재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민간이 해도 좋은 영역만을 규정할 뿐이다. 민간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체제에 있는 반면, 공공부문은 지금 세상에 충실해야 하고,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규정했다가 때론 무거운 책임을 져야하는 위험이 따른다.

민간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때 마다 현행법에 없는 행위나 상품이므로, 법률에 이들의 새로운 상품을 명시하게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행위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거나, 행위를 한 후에 범법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민간영역은 정부와 국회를 가까운 거리에 두고서, 창조행위에 맞추어 법적인 뒷받침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때론 뇌물 혹은 정경유착이란 오명을 지게 된다.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은 현행 포지티브 제도 하에서 그들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민간영역이 매번 새로운 창조를 할 때마다 그들은 관료와 의원들에게 특정행위를 법률에 넣어주기를 간청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것이 그들의 권력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관료는 그들의 현재 자리의 힘과 퇴직 후의 자리도 보장받는다. 또한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지지를 거래조건으로 유도할 수 있다.

   
▲ 한국에선 민간부문이 정부와 국회에 항상 줄을 대고, 로비를 해야 한다. 인지상정의 우리 사회에서 이들에게 조그마한 성의표시를 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간간히 비리 혹은 뇌물로 사회적 문제가 터져 나온다./사진=미디어펜
 
규제철폐가 어려웠던 이유는 규제자체보다는 규제정책의 시행 체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이해집단의 권력경쟁 차원에서 보면, 그렇다. 우리 제도도 서양처럼 네거티브 제도, 즉 자유우선제도라고 가정해 보자. 민간영역이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들에게 로비할 유인이 없다. 누가 보아도 허용할 수 없는 영역만을 법률에 넣을 수밖에 없고, 그 외 행위는 민간에서 할 수 있다. 그만큼 민간영역은 관료나 국회의원들에 로비하고 인사하고, 머리 조아리는 활동을 경제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기업은 더 높은 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고, 기업발전이 모여서 국가경제발전을 이룬다.
 
자유우선체계로 법체계의 개혁방향이 핵심이지만, 의외로 이 방향으로의 개혁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법학자는 많지 않았다. 우리 법체계와 미국 영국 등의 법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형식적 논리가 이유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필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법체계는 법을 서술하는 방식인데,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방향에 장애가 되는 체계이면, 법체계의 전환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비용을 치룰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용은 단기적 비용일 뿐,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경제 번영하는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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