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폐해·현실 가리우는 과거지향…정치는 현재와 미래 위한 것
   
▲ 이인철 변호사
왜 현재와 미래를 정치(政治)하지 않는가? 죽은자의 정치가 가리우는 현실

정치는 산자를 위한 것,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우리의 정치는 과거의 죽은 자에 머물러 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 정치는 삶을 위한 것 - 현재의 삶과 미래를 위한 것이다. 과거를 문제 삼겠다는 의욕만 엿보인다. 상대를 쳐서 빼앗고 많이 빼앗아서 나누어 주겠다는 이야기만 들린다. 

중요한 현재를 문제로써 다루기 보다는 과거의 문제를 다루고자 애쓴다. 죽은 자를 위한 정치, 현실이 아니라 과거의 문제를 오늘의 문제로 둔갑시켜서 이를 가지고 논란을 벌인다, 죽은 자의 정치, 조선 500년간 그래왔듯이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문제, 오래된 비명(碑銘)에 대해서 논란하며 그것을 정치문제로서 다루면서 거기에 매어서 시간을 보내왔다.

오늘의 문제는 시급하지 않고 과거의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서 다루어진다. 싸움거리를 현실에서 찾지 않고 과거의 사건에서 찾는다. 수년전 사건, 수십년전 사건, 수백년전의 사건에서 싸움거리를 끌어온다. 이러한 끌어냄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끌어냄이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끌어냄으로 현실을 가리우는 것이 정치가의 본연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꺼집어냄이 과오로 밝혀져도 언제나 새로운 꺼집어냄이 있기에 상황은 계속 진전된다. 아서라. 언제까지나 과거의 문제로 현재를 가리울 것인가? 집어치워라.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비명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논쟁을 벌일 것인가?

김열규는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책에서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구원이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죽음을 부인하게 되면 이는 현세에 대한 집착이라는 태도를 낳는다. 한국인의 정서에서 죽음은 삶의 끝이기에 죽음은 부인된다, 죽은 자는 쉽게 저승으로 못가고 이승에 남아서 언제나 산 자와 함께 하면서 산 자를 지배한다. 

죽은 자와 동거하는 사회, 그래서 죽은 자가 지배하는 사회. 한국인은 죽은 자와 늘 같이한다. 과거의 문제가 소멸되지 아니하고 언제나 남는다. 죽은 자의 문제는 죽은 자와 같이 우리 곁에 있다. 정치는 삶을 위한 것이고, 미래를 위한 것인데, 언제까지나 과거를 위한 정치, 과거의 그늘에 가리운 정치에 머무를 것인가.

현재의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하지만 죽은 자의 권리행사에 가리운다. 현재의 우리는 자기 권리를 내세우지 못한다. 내 앞에서 죽은 자의 차례가 있다.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우리는 죽은 자의 권리의 협상을 위해서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자녀 세대를 희생해야 하는가? 

죽은자는 저승으로 가지않고 이승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한반도의 시계는 왜 현재를 가리키지 않고 아직도 과거의 시간을 가리키는가? 왜 멈추어진 한반도의 시계는 고칠 수 없는가? 고치지 않는가? 고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며 과거를 가리킴을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가?

   
▲ 정치는 삶을 위한 것이고, 미래를 위한 것인데, 언제까지나 과거를 위한 정치, 과거의 그늘에 가리운 정치에 머무를 것인가./사진=연합뉴스

과거에 머물면서 과거의 과제를 해결한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어떤 일도 아니한다. 그냥 과거를 재현하고 그에 대한 단죄 그리고 적절하게 이익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무마하려 한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체제와 제도의 문제를 고치지 아니한다. 고치려 하지 아니한다. 

누구의 책임을 물어서 단죄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고치면 안된다. 고치면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어져서 곤란하다. 책임을 전가할 근거가 사라져서 곤란하다. 정치란 책임을 전가하는 정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가 해야할 일이 없어지면 곤란하다. 그래서 현실을 바꾸지 않으려고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과거의 정치라는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한 정치라는 것이다.

죽은자의 정치는 현실을 가리운다. 그래서 실제적인 문제가 가리워진다. 실제의 기득권의 폐해가 가리워지고, 실제의 가해자와 문제의 원인이 가리워지고, 만들어진 피해자가 나타난다.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문제를 언제까지나 끌어내어서 현재의 문제로 만들면서 현실을 가리워야 하는가? 

걷어치워라. 조선말부터 현재까지 과거에 머무는 행태를. 대한민국의 건국은 계속하여 부정되고 아직도 일제시대이고 아직도 조선말인가? 왜 시계는 과거의 시간을 가리키고만 있는가?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언제까지 상여매고, 언제까지 비명을 해석하기에 시간을 보내며, 언제까지 현재를 보지 않으려 하는가? 언제까지 현재의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이 현재의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자녀를 위해서 일하기 보다, 과거의 일로 시간을 보내고 그것으로 정치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우리의 신문과 방송들은 그런 과거에 매몰된 죽음의 정치를 다루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듯이 떠들어 대고 있을 것인가? 왜 우리가 정치인들을 뽑았으며, 누가 그들에게 과거의 문제를 맡기었는가? 죽은 자의 정치, 죽음의 정치는 모두에게서 현재를 빼앗고, 미래를 빼앗았다. 정치에게 빼앗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되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해야 할 때이다. /이인철 변호사

   
▲ 우리의 정치는 과거의 죽은 자에 머물러 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 과거를 문제 삼겠다는 의욕만 엿보인다. 상대를 쳐서 빼앗고 많이 빼앗아서 나누어 주겠다는 이야기만 들린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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