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나는 그들의 모르모트였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내가 <공산당 선언>을 읽기 시작했노라 말했을 때 지었던 그의 비릿한 웃음을. 나를 한껏 추켜세웠지, 진정한 지성인으로 거듭났다느니, 네가 우리의 희망이라느니. 하기사, 적당히 허세 부릴 줄 알고 적당히 친구들 사이에서 지성으로 까불 줄 알며, 적당히 인간사 도리를 밝히는 내가 그들에게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작은 그거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찌 윤리 교사가 정치사를 줄줄 읊겠는가마는, 궁정동 양주파티니 뭐니, 고등학교 갓 입학한 신입생에게는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되도 않을 그런 소리를 역설할 때 알아챘어야 했다. 산업화야 민주화 이후에도 가능했노라고, 이승만 그놈이 분단의 원흉이라고, 사실은 이승만이 친일파인 건 아느냐고. 박정희는 남로당 동지들을 팔아넘기고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노라고... "허, 참 내 인생에서 말세였던 시절이다!“
나는 홍위병이었다. 나의 스승님, 은사님, 훗날 주례를 서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쭐 때, 나는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되레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그에게 말했다. '이 제자, 진심으로 정의로운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전향' 사실을 알리던 날, 그에게서 부재중 통화 여덟 통이 왔다. 임수경 민주당 의원이 옛 동지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에게 뱉었던 말을, 나도 그에게서 듣게 되었다. 아, 하루아침에 나는 홍위병에서 변절자가 되었다. 지금은 해직교사가 된 소위 나의 한 때 스승은, 해직 이후 환경운동 이라며 같잖은 좌파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 국정교과서는 더 이상 나 같은 모르모트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최소한의 조처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으로 여길 수 있는 그 당연한 이치를,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일대 계기다. 비정상의 정상화이며, 최저의 교육 윤리를 실현하는 길이다./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
그런 그가 지금은 '환경'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을 국정 교과서 채택 문제에 투신했다. 사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검정 교과서' 때도 그는 불나방처럼 몸을 던졌다. 교학사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역사교과서를 내겠노라 했을 때, 그는 몸과 마음을 함께 던졌다.
비단 나뿐이겠는가. 그의 마약 같은 언변에 넘어간 앳된 청춘이. 비어있는 머릿속에 채워졌을 그 '빨간 약'이 나에게만 투여되었겠는가. 시뻘건 눈으로 정부 여당과 '자본주의 지주' 들에게 살기를 품었을 그 사슴 같은 눈망울이 어찌 내 두 눈뿐이었겠는가.
나는 한 때 바랐다. 그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그들이 외치는 알량한 정의만큼의 속죄를. 하지만 부질없음을. 그들의 광기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음을.
한편으로 그들에게 감사한다. 이제는 어쩌면 같은 입장일 내게 '진정한 교육의 길'을 일러준 그들을. 나는 내 제자들에게 강요 따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가 더러운 교육의 길로 빠지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진심으로.
나는 그들의 모르모트였다. 그리고 작금에 불거지는 국정 교과서 문제는 더 이상 나 같은 모르모트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최소한의 조처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으로 여길 수 있는 그 당연한 이치를, 드디어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일대 계기다. 비정상의 정상화이며, 최저의 교육 윤리를 실현하는 길이다.
▲ 이제는 어쩌면 같은 입장일 내게 '진정한 교육의 길'을 일러준 그들을. 나는 내 제자들에게 강요 따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진심으로 감사한다./사진=미래엔 국사교과서 현대사 첫페이지 |
물론, 이다음 단계가 더 중요함을 안다.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더욱더 강하게 법제화하여 소위 양다리 걸치고 있는 정치 교사들을 현장 일선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언제나 '교실 전복'을 노리고 있을 그들에게서 더 이상의 희생양을 용납지 않을 유일한 길이 그 길이라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
7년 전 처참했던 모르모트, 오늘 여기에 고백하노라. "나는 전교조의 모르모트였다." /정경봉 부산교육대학교 교육학 석사과정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