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방법
"여기 노란 천막들은 뭐야?" 며칠 전 우리나라에 놀러 온 중국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내가 너의 안내자가 되어주겠노라며 광화문에서 당차게 시작한 안내가 처음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에 봉착했다. 1년 반 전 여객선이 침몰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추모 장소라 하니 왜 광장에서 추모를 하느냐는 질문이 또 이어졌다. 1년 반 전 일이라는 내 설명에도 친구는 이해가 잘 안 간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그 친구 외에도 수많은 외국인이 노란 천막을 지나며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노란 깃발이 휘날린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살고 있다. 광화문 광장은 유가족들의 고통을 끊임없이 세상에 드러내는 장소가 됐다. 세월호 추모 장소 뿐만이 아니다. 광화문 광장에는 여러 명의 1인 시위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촛불을 앞세운 시위도 어김없이 광화문 광장에서 불을 붙인다. 광화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위 광장이 됐다. 시민들은 수많은 피켓과 서명을 권유하는 사람들을 지나며 광화문 광장을 '통과'한다. 광화문 광장 자체를 즐기기 위해 그 자리에 멈추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관광객들도 사진만 서둘러 찍고 광장을 떠난다.
물론 1인 시위를 하거나 합법적인 집회를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자유이므로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세월호 천막처럼 1년 반 동안 광화문 광장에 뿌리를 내린 경우는 다르다. 광장은 시민들의 공간이다. 누구도 그 공간을 자신의 소유처럼 여길 수 없다. 세월호 천막에 상주하는 유가족들과 관련자들은 때때로 그 사실을 잊는 것 같다.
▲ 지난 4월 18일 세월호 시위대가 광화문광장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폭력이 난무했다. 경찰물건이 탈취당하고, 차량들이 대거 손상됐다./사진=연합뉴스 |
얼마 전 필자가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였다. 엄마 부대 봉사단이란 시민 단체가 세월호 천막 주변에서 집회를 열었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관련해 북한을 규탄하고 정부에게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집회였다. 그때 세월호 천막에서 중년남성과 중년여성이 나왔다. 중년남성은 엄마 부대 봉사단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쏟아냈다. 중년여성은 "왜 우리 아이들 추모하는 장소에 와서 이래요!"라며 오열했다. 엄마 부대 봉사단과 세월호 단체가 여러 번 부딪힌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호 천막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장소'라며 다른 단체의 시위를 막을 자격은 없다.
그렇다면 특정 집단이 광화문 광장을 점유하지 않고 광화문을 시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광화문을 진정한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광화문 광장이 '시위 전용 광장'이 되지 않기 위해선 광장의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 광화문 광장에 서면 저 멀리 청와대가 가까이엔 정부종합청사가 보인다. 근처에 언론사들도 여럿이다. 물리적으로 시위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정부나 언론에 보여주기 쉽다는 얘기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이 지나갈 때 시선을 둘 곳이 없다. 한마디로 '구경거리'가 없는 것이다.
로마의 나보나 광장이나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 그리고 광화문 광장과 가장 유사한 구조인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보자. 이 거리들의 공통점은 보행자가 시선을 여러 곳에 둘 수 있단 점이다. 분수나 동상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상점과 보행자들의 거리다. 보행자와 상점들의 거리가 짧고 상점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그 광장에서 즐길 거리가 많아진다. 예를 들어 샹젤리제 거리 양쪽은 상점들이 내놓은 야외 의자가 늘어져 있어 거리를 활기차게 한다. 트래펄가 광장과 나보나 광장들도 상인들이 들락거린다.
반면 광화문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몇 개 상점을 빼곤 상점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머물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는 그의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보행자의 걸음걸이와 상점 개수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상점에 대한 접근성이 높을수록 사람들이 거리에서 더 머물고 싶어 보행속도를 줄인다는 것이다. 그는 광화문 광장 주변 카페들이 야외에 의자와 테이블을 내놓을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태극기 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광화문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즐길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듣는 공간이 아닌 보행자가 무엇을 할지 수많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게 만드는 공간이 돼야 한다. 광장 가운데에 카페를 만들어 의자를 갖다 놓는 것은 어떨까. 젊은 예술가들의 야외 갤러리를 열어도 좋다. 길거리 공연을 할 수 있는 간이무대도 보행자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 광장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상인들이 장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광장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야 시민들은 그 광장을 즐긴다. 훗날 "오~샹젤리제"처럼 "오~광화문광장"이라며 광화문 광장의 매력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활기찬 시장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광장의 성격이 바뀌면 보행자가 광장에서 머물면서 수많은 선택지를 매개로 광장이란 공간과 소통하게 된다. 그래야만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이 시위 광장이 아닌 시민들의 광장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주도하는 광장 문화를 꿈꾼다. 광화문 광장이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닌 시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고윤상 한국외대 언론정보학과
(이 글은 자유경제원 '청년함성'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