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유능한 CEO는 골프에서 운동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사려 깊은 CEO는 골프에서 비즈니스와 친목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한다.
연습장에서, 라운딩에서, 클럽하우스에서 CEO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진리는 과연 무엇일까.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 꼭 골프를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골프를 못한다고 CEO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며, 골프와 담을 쌓은 훌륭한 CEO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CEO들이 골프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 특유의 무한한 ‘무용(無用)의 유용성 (有用性)’ 때문이다.
건강 증진과 여가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면 골프보다 효과도 좋고 재미있는 스포츠는 얼마든지 있다.
운동 측면에서 골프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한 라운드에 10㎞정도 걷는다고 하나 등산이나 조깅에 비할 바 못된다. 카트를 타는 경우 운동효과는 더 줄어든다.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작 자체를 운동으로 보기도 뭣하다. 연습장에서는 장시간 집중·반복적으로 스윙 연습을 하기 때문에 운동효과는 분명 있지만, 4시간 남짓 소요되는 라운드 중 스윙에 소요되는 시간은 고작 4~5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골프 인구가 늘어나고, 특히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골프가 필수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다지 쓸모 있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잘만 활용하면 그 쓰임새가 넓고 깊은 골프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공직에서 은퇴한 뒤 필리핀 오지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보람찬 인생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한 지인은 공직에 있을 때 골프의 고비용과 비효율을 탓하며 골프를 철저히 외면했다. 공직에서 물러나 공기업의 사장을 맡고 나서 외국 나들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골프를 권유 받은 그가 골프채를 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GE 회장이던 잭 웰치의 권유였다.
▲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 꼭 골프를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골프를 못한다고 CEO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며, 골프와 담을 쌓은 훌륭한 CEO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CEO들이 골프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 특유의 무한한 ‘무용(無用)의 유용성 (有用性)’ 때문이다./삽화=방민준 |
60세가 다 되어 잭 웰치 회장의 충고를 받아들여 골프채를 잡은 지인은 금방 골프의 세계에 심취, 스스로 골프 문외한들에게 골프를 권유하는 ‘골프 전도사’가 되었다. 지금은 골프보다 더 보람 있는 봉사활동을 위해 골프채를 놓았지만 그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골프가 안고 있는 무한한 ‘무용의 유용성’이라고 실토했다.
골프는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비춰주는 거울이며, 모든 것을 담아내는 스펀지다. 많은 CEO들이 골프장을 찾는 것은 이 거울을 보고 스펀지를 얻기 위함이다.
웬만큼 골프의 구력이 쌓인 경우라면 한번 라운드를 돌아보면 특정 동반자의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스코어야 골프 구력과 골프에 대한 열정이 말해주지만 골프를 잘 하지 못해도 한 사람의 인격이나 성향은 남김없이 드러난다.
골프는 잘 못 쳐도 얼마나 라운드에 집중하는지, 정직하게 플레이 하는지, 동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실수에 따른 분노와 실망을 어떻게 소화해내는지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라운드를 돌며 이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이 사람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 수 있다.
동시에 다양한 동반자와 라운드 하면서 이들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도량도 얻게 된다.
세속적으로 알려진 골프의 무용성 속에 무한한 유용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골프채를 잡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