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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인사’로 뒤통수 친 고대영 KBS 사장

2015-12-03 10:07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공동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지난달 24일 고대영 KBS 사장의 취임 일성은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릴 때가 됐다”였다. 그 한마디는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배부른 기득권 집단 중 한 곳처럼 익숙한 곳이 되어 버린 KBS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인 방만 경영, 때마다 정치투쟁에나 골몰하는 귀족노조, ‘뿌리깊은 미래’와 같은 반대한민국적 프로그램 제작, 이승만 왜곡보도와 같이 끊이지 않는 보도사고를 되풀이하는 구태를 끊어낼 절호의 기회다 싶었다. 그런데 고 사장이 끼운 첫 단추부터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뭔가 단단히 잘못돼 가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고 사장도 인사가 만사라는 말에 적극 공감할 것이다. 조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미래 비전이 무엇인지 인사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고 결과를 예측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 사실은 국가운영이든 KBS 경영이나 마찬가지다.

고대영 사장은 국민과의 약속이 종잇장처럼 가볍고 쉬운가

그런데 고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첫 인사는 KBS 다수의 직원들이 충격과 배신감에 치를 떨 정도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직원들은 편성본부장, 보도본부장, TV본부장, 기술본부장, 시청자본부장, 정책기획본부장 등 6개 본부장과 편성본부 콘텐츠창의센터장과 글로벌센터장 인사를 기대와 완전히 어긋난 인물들로 채웠다고 분노하고 있다.

KBS에서 가장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공영노조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KBS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무소신과 이중 처신한 인사들로 구성된 배신의 인사”라고 규탄했다. 교섭대표노조인 노동조합은 “변화를 싫어하는 공기업 조직에서나 승진할 법한 무색, 무취, 무탈한 인사”라고 가차 없는 평가를 내렸다. 여기저기 눈치가 빨라 자리보존에나 도가 튼 함량미달의 사람들을 터무니없이 막중한 책임의 자리에 올려놨다고 비판일색이다. KBS 다수의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잘못된 인사라고 비판한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영노조가 낸 성명을 보면 고 사장 인사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 보인다. 불법파업이나 시사, 역사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편향적인 노조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한 인사들을 제외시켰다고 한다. 또 KBS의 책무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후배들 눈치 보거나 특정 정파에 우호적인 편향된 인사들을 대거 발탁했다.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릴 때가 됐다”며 개혁을 호언장담하던 고 사장이 KBS를 오늘날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인 익숙한 구태의 인사를 되풀이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KBS가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면서 고 사장은 제작경험은 물론 현업부서 근무경력도 거의 없는 인사,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후배들을 설득하고 관철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 직을 던지고 도망가 상황 모면에 바빴던 인사를 편성과 제작을 책임지는 핵심 요직에 앉혔다.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나온 인사인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이런 인사로 KBS가 ‘대한민국 바로세우기’라는 국민의 열망을 실현하는데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어떤 국민이 믿을 수 있겠나.

   
▲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릴 때가 됐다더니, 고대영 사장은 정작 버려야 할 것은 버리지 않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은 버리는 인사를 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전문성과 능력을 중요시 하는 인사, 회사를 흔드는 정치노조로부터 당당한 인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인사의 기회를 스스로 내다버렸다./사진=연합뉴스
익숙한 구태 되풀이 한 고 사장의 ‘국민 기만’ 더는 곤란하다

다른 인사까지 따지자면 점입가경이다. 고 사장은 평생 사업과는 무관한 취재일선에 있던 인물을 수신료 정체와 광고급감의 위기상황에 놓인 KBS의 제3수익을 책임져야할 콘텐츠사업의 책임자로 앉혀 놨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 사장은 이런 인사를 해놓고도 국민 앞에 KBS 경영이 어려우니 수신료를 인상해달라고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더 황당한 건 내정된 부사장, 편성TV본부장, 콘텐츠창의센터장, 라디오 센터장과 고 사장이 모두 11기 입사 동기들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이라고 해도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의식적으로라도 피할 인사를 고 사장은 아무렇지 않게 했다. KBS 임원이 입사동기회냐는 비아냥을 듣는 인사, 고 사장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이렇듯 당황스러운 고 사장 첫 인사에 대한 필자의 소감은 한마디로, 망각의 인사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본인 위치와 책임은 잊고 친분이나 체제 안정만을 위한 인사를 했다는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릴 때가 됐다더니, 고대영 사장은 정작 버려야 할 것은 버리지 않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은 버리는 인사를 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전문성과 능력을 중요시 하는 인사, 회사를 흔드는 정치노조로부터 당당한 인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인사의 기회를 스스로 내다버렸다. 그 대신 기회주의가 빛을 발하는 구태 인사, 측근 인사를 택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보신주의가 승리한 인사로는 KBS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런 인사를 해놓고 국민에게 KBS 개혁을 약속하고 변화를 떠든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배신의 인사”라는 비판은 단지 KBS 내부에 한해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 사장 첫 인사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자신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이 없다. KBS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약속이 거짓이 아니라면 잘못 끼운 첫 단추는 과감히 풀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고 사장의 다음 인사를 지켜보는 건 단지 KBS 직원만이 아니라 시청자 국민이라는 점 명심해야 한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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