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소윤 기자]건설업계의 해외 수주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원전·에너지·친환경 등 고부가가치 분야를 중심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결과, 11년 만에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올해는 지난해를 뛰어넘는 성과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건설사가 지난해 해외에서 473억 달러를 수주하며 11년 만에 최대 기록을 썼다. 유럽 시장 수주 실적이 전년과 비교해 298% 늘어난 데다가 플랜트, 원자력 등 고부가가치 공종으로의 다변화가 이번 성과의 배경으로 꼽힌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총 472억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400억 달러를 넘어서며 11년 만에 최대 실적을 거둔 것이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27%로, 4년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이번 실적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수주 지역과 공종의 이동이다. 유럽 지역 수주액(201억6000만 달러)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사업에 힘입어 전년 대비 약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해외 수주의 40% 이상이 유럽에서 발생한 셈으로 중동 지역에 편중됐던 과거 수주 구조와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공종별로는 산업설비가 74.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특히 원전·에너지 인프라·친환경 설비 등 고부가 공정이 성장을 주도했다.
실제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에너지저장장치(ESS), 데이터센터 등 미래 산업 분야 수주 규모는 빠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ESS는 2022년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출 이후 지난해에만 7억3000만 달러를 수주했고, 카타르에서 대형 CCUS 프로젝트(13억7000만 달러)를 따내면서 신시장 개척에도 성공했다. 건설업계의 수주 전략이 과거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2025년 해외 건설 수주 통계./사진=국토교통부
해외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한 건설사들이 추가 수주를 예고하면서 올해 전망도 우호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원전 대장주로 꼽히는 현대건설은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 원전 4기 건설 기본설계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연내 EPC(설계·조달·시공) 계약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역시 EPC 계약을 앞두고 있어 '글로벌 원전 붐'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거론된다.
삼성E&A 역시 탄탄한 해외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이다. 멕시코 메탄올 등 지난해 이연됐던 프로젝트가 올해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사우디 카프지 가스 프로젝트(약 20억 달러), 카타르 화학 프로젝트(약 40억 달러) 등 새로운 파이프라인도 추가됐다.
해외 물량 확보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글로벌 건설시장이 2026년~2030년 연평균 6%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해외 사업 경쟁력을 강화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한미글로벌은 지난해 에너지인프라사업팀을 '에너지사업부'로 승격하고 기존 원전그룹을 '원전사업단'으로 재정비했다. 대우건설은 원자력사업단을 CEO 직속으로 재편하는 한편 AI·데이터 조직을 신설해 사업 대응력을 높였다. 현대건설 또한 양수발전·해상풍력·데이터센터·지속가능항공유(SAF)·수소 & 암모니아 등 전담팀을 신설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건설업계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해외건설 정책 방향을 통해 원전, ESS, 데이터센터, 송배전 인프라 등 고부가가치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초고층 빌딩과 초장대 교량 등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는 기술 고도화를 통해 독보적 입지를 굳히고, 원전과 같은 복합 사업은 범부처 지원체계를 가동해 수주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가 원전과 에너지, 친환경, 첨단 인프라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며 "단기 실적 개선을 넘어 수주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