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레미콘 산업이 수요 급감이라는 동일한 충격 속에서 생존 전략이 갈리고 있다. 레미콘 공장 가동률이 시멘트와 함께 3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산업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레미콘 수요는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한국레미콘공업협회는 지난해 전국 레미콘 공장 가동률이 14.4%에 그쳤다고 공식 집계했다.
이는 1993년 이후 최저치로 그간 정상 가동의 전제로 여겨졌던 20%대 중후반 가동률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러한 가동률 하락은 곧바로 손익 악화로 이어진다. 레미콘은 저장이 불가능하고 고정비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상 일정 물량 이하로 떨어질 경우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운송비, 인건비, 원자재 부담이 겹치며 중소 업체들의 체력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실제로 지역 중소 레미콘 업체들 사이에서는 공장 매각이나 사업 정리, 회생 절차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대구 달성군에서는 35년 간 영업을 유지해온 레미콘 업체가 폐업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단기적 위기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기업들이 시장에서 밀려나는 과정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아주, 삼표, 유진그룹 등은 같은 불황 속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출구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사업 구조 조정과 효율화,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을 통해 가동률 하락을 전제로 한 경영 체계를 강화하며 불황 장기화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삼표그룹은 레미콘과 시멘트를 핵심 축으로 하면서도 건설 소재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온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레미콘·시멘트 외에도 골재, 건축자재, 물류 인프라 등을 아우르는 공급 체계를 갖추며 특정 제품 의존도를 낮춰왔다. 특히 최근에는 저탄소 친환경 특수 시멘트인 'BLUE MENT'의 새로운 BI(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상표를 출원하는 등 친환경·저탄소 제품 개발과 환경·자원 순환 사업을 강화하며 비(非)레미콘 영역의 비중을 키우고 있다.
포트폴리오 다양화로 레미콘 출하 감소 국면에서도 실적 변동성을 완화하는 완충제를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유진기업 역시 레미콘을 주력 사업으로 유지하면서도 건자재 유통, 골재, 물류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왔다. 특히 이 중 디지털 기반 운영 체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유진기업은 국내 레미콘 업계 최초로 디지털 품질·출하 관리 플랫폼 ‘콘라이브(ConLive)’를 도입해 제조사와 건설사 간 정보를 실시간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레미콘 출하량이 줄어드는 국면에서도 전사 실적에 미치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기준 유진기업은 업황 부진 속에서도 순이익이 전년비 112.6% 불어난 980억 원을 달성하는 등 손익을 방어하고 있다.
아주산업은 레미콘 본업을 중심으로 수도권 일대 7개의 레미콘 사업소를 포함해 다수의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광명·수원·병점·광주·인천·비봉·상암 등 주요 지역에서 레미콘 출하를 수행하며 수도권 건설 수요를 직접 소화할 수 있는 공급 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한 PHC파일(기초공사용 콘크리트 파일), 골재 생산 등 레미콘과 연관된 건자재 사업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정부의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비롯한 공공·민간 주택 공급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기초 자재 수요 회복 과정에서 이 같은 종합 건자재 체계를 갖춘 점이 상대적으로 빠른 가동률 회복과 실적 반등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결국 업계에서는 레미콘 산업의 위기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보다는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건설 경기 수요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가동률 반등만을 기대하기보다, 사업 구조와 포트폴리오 경쟁력이 기업 간 명암을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불황을 전제로 한 체질 개선과 운영 효율화에 선제적으로 나선 대형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 업체 간 격차는 향후 건설 경기 회복 국면에서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은 하루 몇 시간 돌리느냐보다 안 돌 때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경영의 핵심”이라며 “레미콘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구조에서 가동률이 낮은 상태를 버티기 위한 체력 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