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시멘트 업계가 수출 확대를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있다. 내수 출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공장 가마(소성로)를 멈출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해외 시장으로 물량을 돌려 산업의 ‘기본 체력’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장기 내수 침체를 겪은 일본 시멘트 업계가 수출 중심 구조로 전환하며 생존해온 흐름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시멘트 업계가 수출 확대를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있다. 사진은 한라시멘트 공장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3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시멘트 수요는 3600만 톤으로 예상된다. 이는 3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시멘트 출하량 3650만 톤보다 1.3% 감소한 수치다. 건설 경기 회복 지연과 주택·SOC 발주 위축이 겹치며 내수 반등 시점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반면 수출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지난해 시멘트 수출 물량이 450만 톤에 달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년 대비 52% 증가한 규모다.
시멘트 산업은 설비 특성상 가마를 멈출 경우 재가동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수출 확대가 가동률을 유지하고 고정비 부담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경기는 어렵지만 공장을 멈출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수익성이 낮더라도 최소한의 고정비를 충당하기 위해 수출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 판로도 빠르게 다변화되고 있다. 한라시멘트는 지난해 시멘트 수출 물량을 전년 대비 63% 확대하며 국내 업계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수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존 페루·칠레·과테말라 등 중남미 시장 비중이 컸으나, 최근에는 카메룬·기니 등 서아프리카 국가로 수출선을 넓히며 지역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항만·도로·주택 등 기초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물량을 확보해 내수 부진 장기화에 대비한 완충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한라시멘트 사례에 이어 삼표시멘트도 수출 확대 흐름에 합류했다. 삼표시멘트는 최근 남미 지역 바이어와 신규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해외 출하를 본격화했다. 구체적인 물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브라질·페루 등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한 인프라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삼표시멘트가 해안가에 위치한 공장·전용 부두를 보유하고 있어, 내륙 공장 대비 추가 육상 운송 부담 없이 곧바로 해상 물류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수출 확대 배경으로 꼽았다.
이 같은 흐름은 일본 시멘트 업계의 대응 방식과도 닮아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내수 감소가 장기화되면서 시멘트 생산과 판매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수출 비중을 확대하며 산업 전반의 급격한 위축을 완화해왔다.
일본시멘트협회(JCA)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일본의 시멘트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출 물량은 9% 늘어나 내수 부진 속에서도 견조한 수출 실적을 보였다.
건설 경기 회복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내 시멘트 업계는 수출 전략이 단기 생존을 넘어 중장기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확대가 당장의 실적 개선보다는 글로벌 시장 이해도 축적과 사업 구조 유연성 확보 측면에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전략은 단기적으로 가마 가동률과 고정비 부담을 관리하는 역할이 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해외 시장 경험을 축적해 산업 구조를 유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