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지방 소멸이 곧 내수 붕괴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유통과 서비스에 기반한 롯데그룹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공장을 세우는 대신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짓는 방식으로, 롯데는 지방 활성화의 다른 해법을 꺼내 들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경./사진=롯데 제공
5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은 올해부터 5년간 수도권 외 지역에 약 2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주요 투자 분야는 반도체 설비 증설, 배터리 생산·R&D 역량 확장, AI 전환 및 탄소중립 인프라 등으로 알려졌다.
주로 첨단·전략 산업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는 가운데, 롯데 그룹의 투자 분야에도 관심이 모인다. 롯데는 화학·건설 등 다양한 산업군을 아우르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핵심 사업 은 유통과 서비스 영역에 집중돼 있다. 해당 분야는 제조업과 비교해 내수 의존도가 특히 높은 산업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롯데는 이번 투자에 대한 셈법을 다른 기업과는 다르게 취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방 활성화를 위한 투자가 일부 기업에게 ‘압박’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롯데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기 때문이다. 10대 그룹 중 내수 의존도가 가장 높은 롯데에게는, 지방 활성화가 정책 협조 차원을 넘어 미래 시장을 지키기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은 롯데 핵심 산업 기반인 유통·서비스 시장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지방 도심이 공동화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 채널 집객 효과가 떨어지고, 매장 운영 효율성이 저하된다. 이는 유통 사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은 지난 2024년 6월 매출이 부진한 마산점을 폐점한 데 이어, 올해 3월엔 분당점에서 철수할 예정이다. 위기를 체감하는 온도가 다른 만큼 지방 활성화에 대한 의지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롯데의 ‘지방 투자’는 지역 내 유동인구를 붙잡을 수 있는 ‘체류형 인프라 구축’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지역 거주민들이 문화·여가 생활과 쇼핑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등 유통 채널에서도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전통적인 다점포 전략만으로는 지역 거점 역할을 맡기 불충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역 내 소비자를 ‘락인(Lock-in)’ 할 수 있는 거점 재구축이 롯데 지방 투자의 첫 조각이다.
롯데 프리미엄 복합쇼핑몰 '타임빌라스 수원' 전경./사진=롯데 제공
유통업계에서는 프리미엄 복합쇼핑몰 ‘타임빌라스’가 롯데의 주 무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시간이 열리는 공간’이라는 철학을 담은 타임빌라스는 롯데 미래형 쇼핑몰 전략의 핵심으로, 쇼핑·엔터테인먼트·미식을 아우르는 ‘원스톱 쇼핑 메카’를 지향하고 있다. 앞서 롯데는 ‘타임빌라스 수원’을 발판으로 2030년까지 7조 원을 투자해 전국 13개 점포로 확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롯데 타임빌라스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을 넘어, 해당 지역에서 문화와 여가를 향유할 수 있는 ‘랜드마크’를 세우는 전략이다. 특히 지방 인구 역외 소비 유출을 막는 역할과 동시에, 지역 상권과 연계된 대규모 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롯데의 ‘물류 인프라’는 지방 활성화를 지탱하는 또 다른 핵심 축이다. 체류형 인프라가 지역 내 문화·여가·쇼핑 수요를 흡수한다면, 물류 인프라는 지방 거주 편의성을 좌우하는 생활물류시장의 핵심 요소다. 롯데 물류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택배 인프라 확충과 스마트 물류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중부권 메가허브 터미널’과 자동화 설비, 디지털 전환(DT), IT 시스템 등에 지속 투자하고 있다. 롯데쇼핑도 글로벌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협업해 부산에 첨단 고객풀필먼트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롯데호텔과 리조트 등 ‘관광 인프라’는 지방 활성화의 마지막 퍼즐이다. 타임빌라스와 물류 인프라가 지역민을 붙잡는 그물망이라면, 관광 인프라는 국내외 관광객을 지역으로 유입시키는 미끼 역할인 셈이다. 특히 계열사 시너지를 살려 지역 관광 자원을 ‘체류형 인프라’와 연계시킴으로써, 관광객에 의한 지역경제 낙수효과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경제 활력 저하를 외부 유동인구 유입을 통해 만회한다는 계산이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마다 투자 우선순위가 다른데도 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방 투자’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정부가 기업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롯데처럼 소비재를 많이 하는 기업이나 내수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라면, (지방 활성화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