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느닷없이 꺼내든 야권통합 카드는 일단 무효했다. 자칫 국민의당이 와해될 지경으로까지 관측됐지만 국민의당은 4일 심야 의총에서 거부 결정을 내렸다.
심지어 국민의당은 당내 일각에서 나왔던 수도권 야권 후보 연대도 거부할 방침을 세웠다. 적어도 4.13총선 전까지 김종인 발 야권연대 제안이 빛을 잃는 순간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꾼 지 3개월을 맞았다. 당명과 당대표가 바뀌자마자 여야 모두 총선가도로 질주하면서 어느새 옛 당명이 가물가물해질 정도가 됐다. 그런데 최근 김종인 대표의 야권통합 제의는 양산에 칩거 중인 문재인 전 대표를 새삼 떠올리게 만들었다.
김 대표는 국민의당을 향해 통합을 얘기하면서 안철수 대표 등 부정적인 사람은 제외시키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분명 이미 탈당해 창당한 제3당인데도 마치 마음만 먹으면 통합이 될 것 같은 자기 식구처럼 흔들었던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전 대표 시절 패권정치를 보는 듯한 기시감마저 불러왔다.
김종인 대표는 지난 2일 야권통합을 제안했고, 이때부터 김 대표와 국민의당 내부 통합론자들이 이미 통합에 대한 사전조율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곧이어 김 대표는 안 대표를 향해 “대권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반대의견을 내고 있다”며 정면 공격했다.
안 대표를 비롯한 탈당파들이 문 전 대표를 비난하던 어법 그대로이다. 새정치당 시절 소위 비주류 의원들은 연거푸 선거패배를 겪으면서도 문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자 ‘대표로서 책임감없이 대권만 노린다’고 비난한 바 있다.
김 대표의 공격을 받은 안 대표는 필리버스터 중단에 따른 국면전환용으로 김 대표가 야당통합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비난했다. 안 대표는 “비겁한 공작” “임시사장” 등 평소 드러내지 않던 독설도 쏟아냈다.
국민의당은 4일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를 잇따라 열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야권 통합 제안을 당 차원에서 거부키로 의견을 모았다.사진은 이날 호남향우회에 나란히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종인 더민주 대표./사진=연합뉴스
김 대표의 야권통합 카드는 여러모로 전략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먼저,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로 9일간 국회를 마비시켰지만 결실도 없이 선거운동만 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당의 출구전략으로 삼았다는 지적이 있다. 또, 국민의당이 끝내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할 것 같은 순간 박지원 의원이 입당함으로써 국면전환이 가능한 시점에 국민의당을 와해시킬 정도의 충격파를 던진 셈이다.
탈당파들이 국민의당으로 뭉쳤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선거연대에 대한 생각이 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안철수 대표와 박주선 의원의 경우 ‘총선연대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초지 일관했다. 반면, 김한길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천정배 공동대표는 처음부터 지역별 의원연대는 물론 최종 야권연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국민의당이 야권연대에 대한 끝장토론을 벌인 이날 오후 안철수 대표와 김종인 대표가 나란히 호남향우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주목받았다. 이날까지도 서로를 향해 독설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어색한 조우는 반전을 불러왔다. 김종인 대표와 김무성 대표가 귓속말까지 나누며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인 반면 안철수 대표는 외딴섬처럼 앉아 있었다.
김종인 대표와 안철수 대표의 축사가 끝나면서 분위기는 싹 달라졌다. ‘야권통합’에 방점이 찍힌 김 대표 발언 끝에 조용한 박수소리가 나온 반면, 안 대표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주장만 해선 정권교체의 희망이 없다”는 발언에는 우레같은 박수와 환호가 나왔다. 안 대표의 발언 중에 관중들은 “옳소” “안철수”와 같은 구호도 쏟아냈다.
이후 국민의당 의총 결과 야권연대 거부 결정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제1야당의 분당 사태까지 낳았던 소위 ‘3중고’는 해결된 기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더민주에는 ‘반호남주의’, ‘이념적 편협성’, ‘패권 계파정치’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정작 탈당의원들부터 야권연대를 주장하는 김종인 대표를 향해 “패권 청산부터 먼저 보이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김 대표의 야권통합 카드는 분당 3개월여만에 새삼 더민주당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한 셈이다.
이미 수차례 이뤄진 야권연대로는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기 어려운데도 불과하고 김종인 대표가 야권통합 카드를 서둘러 사용한 것 역시 진정성이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국민의당에 입당한 박지원 의원은 김 대표가 안 대표를 배제한 발언을 놓고 “안 대표만 빼고 전부 돌아와 달라는 얘기는 정치도의상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며 “그건 통합하자는 얘기가 아니고 누구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어 “(통합이) 현재 꼬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야권통합을 고수해 온 장본인으로서 기존 입장이 변한 것은 아니겠지만 김 대표의 발언의 내용이나 더민주 내부가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이 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날 국민의당은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의총에 이어 최고위원회의를 개최, 2시간여에 걸친 논의 끝에 독자노선을 결정했다. 이날 의총에는 소속 의원 18명 중 일정상 불참한 박지원·황주홍 의원을 뺀 16명이 참석했다. 이로써 여야 3당이 대결하는 3자 구도 또는 일여다야(一與多野) 선거구도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철수 대표는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 이번을 계기로 해서 우리의 불꽃을 다시 살리자는 각오를 다졌다”면서 “(총선연대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 의석을 얻었을 때 국민의당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에는 “그런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안 대표는 또 “우리가 국민의 당을 창당한 근본적인 이유, 즉 지금 현재 기득권 양당구조가 그대로 간다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는 그런 문제의식에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