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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여러분, 오늘도 안녕하신가요?"

2016-03-23 15:40 | 이원우 차장 | wonwoops@mediapen.com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서울 소재 한 은행의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D씨(36)는 최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관전했다.

"인터넷에서 '미래에 사라질 직업' 조사결과를 보면 은행원이 항상 들어가잖아요. 그렇다 보니 이세돌 9단에 감정이입을 하게 됐죠. 알파고가 은행 현장에 투입돼서 저와 경쟁을 했을 때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 없는 게 사실입니다"

성과주의 도입에 대해서는 반발도 거세다. 특히 전국금융노동조합(금융노조)의 거부반응은 격렬하다. 이미 금융노조는 '성과주의를 전면 거부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성과주의가 금융권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선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원들의 압박감도 커지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이들의 부담이 상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느끼는 중압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데 있다.

알파고 열풍은 D씨에게 은행권에서 '사람'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생각나게 했다. 일선 은행 영업점의 점포 숫자부터가 꾸준히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의 국내 점포 수는 지난 2012년 말 7698개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다 작년 9월 말엔 7305개가 됐다. 1년에 100개 이상의 점포가 줄고 있는 것이다. 

빈자리는 '모바일뱅킹'이 채우고 있다. 한때 잠시 각광 받았던 무인점포에 대한 관심조차 최근엔 시들해졌다. 무인점포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대부분 모바일로도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행 알파고 출현? 자신이 없다, 이길 자신이"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권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심경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금융권에 성과주의를 도입하려는 금융당국의 의지는 일선 행원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의 핵심은 '개인별 평가'다. 그간 부서나 팀 수준에서 평가되던 성과가 행원들 개개인의 상벌과 가감점으로 작용하는 성과주의가 업계 전반에 도입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평가가 D씨가 속한 '팀'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D씨 개인에 대한 평가 결과가 D씨의 경력을 좌우하게 된다. 

이미 농협은행은 성과를 많이 낸 직원들을 1~2년 앞서 승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발탁승진제도를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 역시 개인별 성과에 따라 승진에 차별을 두는 차별승진제를 도입했으며 KEB하나은행 역시 성과 높은 행원에게는 특별 승진을 허락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타 은행과 업계 전반에 확산된다면 '개인별 평가'는 금융권의 새로운 대세가 될 수도 있다.

회사에선 "퇴근하라"지만…

성과주의 도입에 대해서는 반발도 거세다. 특히 전국금융노동조합(금융노조)의 거부반응은 격렬하다. 이미 금융노조는 '성과주의를 전면 거부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성과주의에 대해 지금까지는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피력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3일 시중 은행의 한 관계자는 "노조의 이러한 입장에 내심 동의하는 일선 행원들이 매우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은행은 일반 제조업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 이 관계자는 "개인별로 성과를 판단한다는 게 행원들에게는 전례 없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성과주의 분위기가 체감되면서 영업점 행원들의 발걸음은 바빠지고 있다. ISA에 계좌이동제, 점포 수 감소 등의 경쟁적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자산까지 관리하는 공부까지 따로 해야 하는 상황이다. D씨 역시 인터넷으로 업무 관련 자격증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D씨는 이러한 '열공' 분위기가 "회사에는 비밀"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수 은행들이 주2회 정도는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정시 퇴근을 장려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D씨는 "퇴근해도 업무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제도는 이미 유명무실해진 셈이지만, 그래도 퇴근 안 하면 KPI(주요성과지표) 점수가 깎이니 어쩔 수 없다"면서 "정시에 퇴근해야 하는 날에 전략적으로 퇴근하되 그 시간을 가족보다는 성과주의에 대비하는 일과로 채우는 행원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D씨를 비롯한 행원들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오늘도 더욱 고달프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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