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봤어?” 현대그룹 창업자 고(故) 아산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이 응축되어있는 한마디다. 아산이 기업을 시작할 당시 한국은 아프리카 가나 수준의 최빈국이었다. 그럼에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경부고속도로, 중동진출, 조선사업, 자동차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며 한국경제 성장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이것이 정 창업주의 서거 당시 미국의 타임지가 그를 ‘다른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을 해낸 사람’으로 평가한 이유다. 아산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이 오늘날 한국경제에 던지는 시사점은 더욱 크다. 저성장의 돌파구로서 창의력과 도전정신 등의 가치가 절실한 요즘이기 때문이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아산의 서거 15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생애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자유경제원이 21일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이봐, 해봤어?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을 기리다’ 정주영 서거 15주기 기념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선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산 정주영을 “글로벌한 국제경쟁에서 국민적인 기대를 가장 앞장서 실천한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진정한 승리자’”라며 “아산은 정직하고 성실하여 당당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를 펼칠 수 있는 자유시장 경제를 지향했다”고 분석했다. 류 교수는 “정주영은 기업의 성장이 경제발전이며, 경제발전은 국민들의 물질적 행복은 물론 도덕적 향상과 사회적 신뢰를 가져온다고 믿었다”며 “정주영의 유교적 도전정신은 제조업, 나아가 중공업을 창업하면서 나라를 선진 강대국 형 산업구조를 갖추는 데 이바지했고 이는 경세제민 자체였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류석춘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정주영의 기업관과 자본주의 정신: 유교와 민족주의
대한민국의 건국과 함께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오늘날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일으킨 인물은 대부분 유교 가치를 체화한 기업인들이었다. 전통사회의 끝자락에서 태어나 물밀듯이 들이닥친 근대적 가치와 문물을 헤쳐 나오면서 이들은 우리나라의 경제를 세계 10위권에 진입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들은 박정희가 내세운 수출주도 산업화라는 국제경쟁에서의 승리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경제발전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경제적 민족주의 기치 아래 이들은 수출의 역군으로 기업보국을 실천했다.
한국의 산업혁명은 구인회, 이병철, 정주영과 같이 유교 가치를 체화한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의 자본주의 정신 즉 한국의 경제적 민족주의의 기저에는 유교가치와 유교문화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배워서 이긴다’는 유교 정신 그리고 국가와 민족에 기여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선공후사’의 유교 가치가 없었다면 후발국인 한국의 산업혁명은 불가능했다.
류석춘 교수는 “정주영은 기업의 성장이 경제발전이며, 경제발전은 국민들의 물질적 행복은 물론 도덕적 향상과 사회적 신뢰를 가져온다고 믿었다”며 “정주영의 유교적 도전정신은 제조업, 나아가 중공업을 창업하면서 나라를 선진 강대국 형 산업구조를 갖추는 데 이바지했고 이는 경세제민 자체였다”고 강조했다. /사진=아산 정주영닷컴 제공
이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아산 정주영이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적 사상과 이념의 축복을 별로 받지 못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서당교육과 일제 강점기의 초등교육이 전부였다. 그러나 정주영은 유교를 통해 지친(至親)이라는 인간과 세계의 근본을 깨달았다. 그래서 고생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다시 말해 남부럽지 않은 효도를 하려고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정주영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이후에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즉 국민과 국가에 경제활동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두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을 일구었다. 그리하여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민족주의를 실천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라(立身行道) (『小學』, 明倫 第二 34; 성백효, 1993: 107)”는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 ‘배워서 이겨’ 세계적인 기업을 만든 기업인이 바로 아산 정주영이다.
유교 문명에는 자부심이 있다. 또한 모든 경제발전에는 ‘모방’ 혹은 ‘경쟁심’이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후발국이 선발국을 따라잡는 과제에 유교전통은 일품(一品)으로 어울렸다. 왜냐하면 유교문화의 담지자는 자기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가 출현했을 때 그냥 정신적으로 굴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면적 항거나 또는 정신적 도피를 하는 것도 아니다. 배워서 이기려고 한다. 이러한 자세야 말로 진정한 자신감이고, 자부심이요, 자존심이다. 개인의 수준 뿐 아니라 국가의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적 수준에서 배워서 이기려는 노력은 열린 민족주의 즉 경제적인 차원의 국제경쟁에 나설 때 가능하다.
이러한 자세는 정주영의 도전정신에서 너무나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제조업 나아가서 중공업을 창업하면서 나라를 선진 강대국형 산업구조를 갖추는 데 이바지했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중후장대한 사업에 전력했고 또 그것을 무기로 해외에 진출했다. 그는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가 넘치는 나라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제조업을 해야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했고, 또한 그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전 세계에 보였다. 백성을 가난에서 구해야 한다는, 공자가 깨닫기는 했지만 실천하지 못한 ‘경세제민’이라는 목표를 정주영은 몸소 이뤄낸 인물이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산 정주영을 “글로벌한 국제경쟁에서 국민적인 기대를 가장 앞장서 실천한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진정한 승리자’”라며 “아산은 정직하고 성실하여 당당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를 펼칠 수 있는 자유시장 경제를 지향했다”고 분석했다./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여 당당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를 펼칠 수 있는 자유시장 경제와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복지사회를 지향했다. 그는 솔직하고 개방적이며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한민족의 자질에 바탕을 두고 기업, 근로자, 소비자가 협동하여 경제활동을 해나가는 “민간 주도 경제”의 구현을 일찍이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정주영, 1999: 290).
따라서 정주영은 국민들이 경제성장을 바라면서도 기업의 성장을 백안시하는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기업의 성장이 경제발전이며, 경제발전은 국민들의 물질적 행복은 물론 도덕적 향상과 사회적 신뢰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는 국민들이 기업을 홀대하거나 경제발전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철회하면 경제성장은 멈추게 되고 국가는 쇠퇴하여 국민들의 물질적 생활수준이 저하됨은 물론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갈등까지도 심화된다고 걱정했다 (정주영, 2011; Greenfeld, 2001; Friedman, 2005).
결국 정주영은 개인과 기업 혹은 국가가 서로 간에 ‘일반화된 호혜성’의 원리에 따라 상대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며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면 구성원들의 물질적 삶의 조건은 물론 사회통합까지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또한 그는 그 믿음을 현실에서 실천했다. 그리하여 그는 글로벌한 국제경쟁에서 국민적인 기대를 가장 앞장서 실천한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일자리를 만들어 민족과 국민을 부유하게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끌어 올리며 강대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류석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