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더불어민주당이 공천 작업을 끝내면서 빠르게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김종인 대표가 호남지역의 선거 지원에 나서는 등 총선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정장선 총선기획단장 등 선대위 실무팀에서 김 대표에게 단독 선대위원장을 건의하고, 김 대표가 이를 받아들여 ‘원톱 체제’를 갖췄다. 당초 문재인 전 대표와 투톱 체제로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던 만큼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정체성 문제를 많이 거론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당의 정체성이 국민이 바라는 쪽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친노 패권주의를 더민주가 가진 병폐로 지적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관념적이고 부질없는 논쟁”이라고 일축하며 “확장을 위해 진보와 민주화운동 세력, 신 운동세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쪽 면만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전·현직 당 대표의 엇갈린 발언을 두고 일단 선거 승리를 위해 김 대표는 호남, 문 전 대표는 수도권과 영남을 공략하는 역할 분담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즉 ‘산토끼와 집토끼’ 모두를 잡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지난 비례대표 셀프공천 논란을 겪으면서 격노한 상황에서 “당에 남을 필요를 못 느낀다. 당내 친노패권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한 이후 유난히 당 정체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문 전 대표의 선거 지원에 대해서도 김 대표는 부정적이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에게 선거와 관련한 공식적인 역할을 맡기지 않은 것은 물론 전국 유세장을 도는 지원사격도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셀프공천 논란에 직면한 김 대표가 사퇴 배수진을 치자 즉각 상경해 김 대표를 만나 설득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사실상 상왕(上王)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대표가 이틀 만에 당무에 복귀하고, 자신이 처음 주장한대로 비례대표 2번을 받아 단독 선대위원장 자리까지 꿰차게 됐으나 김 대표의 리더십은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이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차 중앙위원회의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따라서 이번에 더민주의 두 전현직 대표가 김 대표의 셀프공천을 빌미로 한판 힘겨루기를 끝냈고, 다만 총선 승리를 목표로 억지로 결합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김종인 정체성’과 ‘문재인 정체성’은 수면 아래에서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이다.
단독 선대위원장을 맡은 김 대표는 주말인 26일 1박2일 일정으로 야권의 텃밭인 호남을 찾았다. 야권의 텃밭이자 제3당인 국민의당과 승부를 내야 하는 이 지역에서 김 대표는 “절대로 마치 대통령 후보가 이미 다 정해진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당 소속 후보들을 격려해야 하는 선대위 위원장 신분이면서도 그는 “이번 총선이 끝나고 나면 정치지형도 많이 변할 것”이라며 “여러분들은 호남을 대변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데 제가 호남을 대변하기 위해 절대적 노력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남지역의 반문(반 문재인)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행보라고는 하지만 “제가 더민주에 온 것은 특정인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김 대표의 행보는 시대를 거스르는 ‘오만한 독재자’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거나 이게 아니라면 선거판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희대의 사기극이 될 전망이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이날 경기도에서 당 소속 후보 선거사무소의 개소식에 참석해 “이번 선거는 김종인 대표가 강조하듯 경제선거”라면서도 김 대표를 총선용으로 한정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경제민주화로 소득주도성장, 포용적 성장 경제를 펴야 민생을 살릴 수 있다. (제가) 유능한 경제정당을 강조했던 것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선거 사령탑으로 모신 것도 그 때문”이라는 문 전 대표의 발언은 여전히 상왕으로서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구주류로 분류할 수 있는 정청래 의원도 이날 전남에서 열린 소속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 축사에서 “누구는 ‘셀프공천’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자격도 없다”면서 김 대표를 겨냥했다. 이어 “나는 셀프 임명해 ‘더민주 컷오프 동지회’를 만들었다. 자격은 공천과 경선에서 억울하게 탈락한 사람, 불만 표출하지 않고 당에 헌신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도 이번 공천 결과에 대한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낸 대목이다.
이렇게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의 상상을 초월하는 결합에도 불구하고 더민주 당내에는 여전히 친노패권주의가 살아 있고, 다만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숨죽이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 많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확고한 선거전략을 세운 것에 따른 행보라고 한다면 더민주가 당 정체성과 관련해 국민에게 혼란을 준 것은 기만이다. 선거에 임박해 당명과 당대표를 바꾼 더민주가 유권자들을 혼란시켰다면 총선 이후 더 큰 후폭풍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 대표와 문 전 대표가 수면 아래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이 또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정당의 최대 목표가 선거 승리에 있다지만 그동안 당리당략에 의해서만 움직이던 제1야당이 총선 승리만을 위해 당의 정체성마저 허위로 가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26일 호남지역의 선거 지원에 나선 김종인 대표는 “(저를 두고) ‘누구의 앞잡이가 아니냐’, ‘선거가 끝나면 홀연히 사라지고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데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전남 영광에서 열린 당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축사에서 한 말로 그는 “저는 누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더민주가 가진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대로 치유하겠다는 게 제 각오”라고 말했다. 또 “여러 가지 당의 속성들을 파악하고 이 당을 어떻게 정상화시켜야만 4.13 총선 승리를 이끌고 내년에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날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김 대표는 “그것을 이룩하지 못할 것 같으면 우리가 집권이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한다”며 “호남의 여러가지 바라는 바를 책임지고 실현해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26일 김종인 대표의 호남 방문을 비판하며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 경력, 햇볕정책 수정을 이야기하는 더민주 단독 선거대책위원장 김 대표가 호남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문재인 전 대표가 방문하는 게 도리”라면서 “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90% 이상 지지를 보냈던 호남을 방문해 야권 무능, 야권 분열과 호남소외를 야기한 친노 패권주의를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