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 대선 때 유권자 92%의 지지를 받았던 광주 방문이 지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문 전 대표는 8일 광주를 찾아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를 먼저 찾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당 국민통합위원장이 그를 동행했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문 전 대표를 동행하지 않았다.
광주에서 문 전 대표는 “안 된다는 당을 설득해 이제야 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밝혔다. 김 대표가 그를 동행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가 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은 선거 막판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광주지역에서 반전 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호남을 외면할 수 없다는 뒤늦은 자각에서 나온 행보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사실 당내 친노 패권주의로 인해 호남 출신 현역의원들이 연쇄 탈당한 뒤에도 문 전 대표는 김종인 대표를 영입해 호남 민심을 더욱 분노케 한 바 있다. 김 대표는 과거 전두환 정권에서 국보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으며, 이 때문에 호남에서 반문 정서는 더욱 커졌다.
게다가 지난 공천 과정에서도 호남에 대한 더민주의 전략공천은 찾아볼 수 없었던 만큼 지금에 와서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은 때가 아주 늦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142일만에 광주을 방문, 호남에서 반문 정서가 가실지 주목된다./사진=연합뉴스
이 때문에 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이 현실화된 지금에도 의심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는다. 가령 ‘어떤 일이 있어도 호남은 2번’이라고 오판했던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오만한 행보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있다.
다른 한편,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약진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아차’한 상황에서 김홍걸 위원장을 위시한 호남지역 출마 후보들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문 전 대표가 대권주자가 되려면 호남 방문은 뛰어넘어야 할 숙제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문 전 대표의 이날 광주 방문은 주목을 받았고,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랄 수 있다. 또 9일에는 문 전 대표의 전북지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이곳에서 ‘바람’을 탈지 주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은 여러 면에서 진정성을 의심받을 요소를 안고 있다. 그가 왜 광주지역 행보에 빠지지 않고 김홍걸 위원장을 대동했는지도 아쉬운 대목이다.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을 앞두고 ‘계란세례를 맞으면 오히려 성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진심으로 호남의 반문정서를 씻기를 원했다면 계란세례를 자처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과거 2014년 광주에서 계란 봉변을 맞았던 안철수 대표가 지금 국민의당의 기반을 광주로 삼을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자격으로 서울 여의도에서 ‘우리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얼굴에 계란을 맞았었다. 노 전 대통령은 얼굴에 묻은 계란을 모두 닦은 뒤 연설을 끝까지 마쳤다.
이렇게 볼 때 문 전 대표가 호남 방문을 오랫동안 꺼려온 것이 사실인 데다, 이날 “그동안 당이 호남 방문을 반대했다”며 우회적으로 김종인 대표를 비판했으며, 김홍걸 위원장을 그림자 삼았던 행보는 어떻게 평가받을까.
문 전 대표에게 우호적인 쪽에서도 “이번 선거를 위해 마지막으로 ‘문재인 효과’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김홍걸 위원장과 동행한 것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비판적인 쪽에서는 “호남과 문 전 대표의 마음 사이에 거리감을 느꼈다”고 지적했다. 그가 지난해 4.29 재보선 참패 이후인 5월 광주를 찾았다가 광주공항에 내리자마자 시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귀빈실 뒷문으로 빠져나갔던 일이 있었다. 호남의 반문 정서 못지 않게 문 전 대표의 반 호남 정서가 남아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이번 선거를 앞두고 문 전 대표에 긍정적인 호남 민심도 “정작 찍어줄 더민주 후보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 때문에 더민주가 국민의당을 향해 아무리 “새정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더라도 호남에서 “더민주는 대안이 못된다”라는 여론이 여전하다.
이번 문 전 대표의 ‘광주시민들께 드리는 글’에서도 특유의 말꼬리를 잡는 떳떳하지 못한 발언들이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안된다는 당을 설득하느라 늦었다”거나 “호남의 분열을 바라고 호남을 다시 고립화시키려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아달라” “‘호남홀대’라는 말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다”라고 말한 대목 등이다.
이런 문 전 대표의 발언은 그가 광주 행보 내내 김홍걸 위원장과 동행하면서 함께 무릎 꿇고, 손 잡고, 포옹하는 등 화합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만큼 개운치 않은 대목이다.
특히 이날 문 전 대표는 광주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배수진을 쳤다. 그는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했으나 잠시 후 전남대 후문에서 마주한 청년들이 ‘구체적인 조건’을 묻자 “지금 상황이 아주 엄중한데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겠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민주가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밀린 것을 지지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문 전 대표는 “똑같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어려운 상황이지 않나. 저희가 다시 출발하는 그 심정으로 광주시민에게 호소드리러 온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을 되풀이했다.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과 관련해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8-9일 광주 방문 결정 잘했다. 욕을 듣더라도 심지어 계란을 맞더라도 가야 한다”라며 “문재인 입장에서 할 말이 있을 것이고, 항변할 근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중요한 시기가 아니다. 세세한 것을 떠나 (문재인이) 최종적·총체적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라며 무조건 낮은 자세를 요구했다.
김종인 대표는 “나는 다른 일정 바빠서 내가 거기 갈 수도 없어요”라며 끝내 광주에서 문 전 대표와의 합동 지원유세를 거절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마지막 주말을 앞두고 당시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당 지도부와 전북, 전남, 광주 지역을 돌던 것과 대조적이다. 여전히 문 전 대표의 호남행이 탐탁지 않은 것이다.
당장 총선 승리가 급선무인 당이 문 전 대표의 호남행에 부정적인 데도 끝내 결행한 문 전 대표가 광주에서 대선 불출마 배수진을 친 만큼 기울어진 민심을 돌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