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총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정치 생명까지 걸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8일 제 1야당의 태동지이자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모태인 광주를 142일만에 찾았다. 문 전 대표의 광주방문은 지난해 11월 18일 조선대학교에서 가진 역사 교과서 국정화 특강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첫 일정으로 5·18 국립민주묘지 찾아 무릎을 꿇었다. 방명록에는 “광주 정신이 이기는 역사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광주광역시 충장로에서 ‘광주시민들께 드리는 글’에서 “호남에서 지지를 거두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표는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며 호남의 지지를 조건부로 정치생명을 거는 승부수를 던졌다
문재인 전 대표가 정치 생명을 걸만큼 절박함과는 달리 시민들은 “무슨 염치로 왔냐”며 소리치는가 하면 “늦었지만 잘 왔다”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호남 홀대론에 대해서는 “결단코 호남 홀대는 없었다. 그것만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저에게 덧씌워진 ‘호남 홀대’ 호남 차별‘이라는 오해는 부디 거두어 달라”며 “그 말만큼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김홍걸 광주공동선대위원장과 참배하며 무릎을 꿇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 전 대표의 호남 읍소는 국민의당과의 분당으로 텃밭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호남을 잃는다면 야당의 뿌리를 잃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곳이다. 호남은 광주 8곳을 비롯해 28석이 걸려 있다. 호남지역구 28곳 중 국민의당은 11곳, 더민주는 3곳 절반인 14곳은 혼전양상인 것으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의 광주 방문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광주에서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거둔 것은 오래전 일”이라고 비난했으며 김한길 의원도 “선거를 며칠 앞두고 일회성 방문으로 말 몇 마디 한다고 해서 계파 패권주의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책임, 야권을 분열시킨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 전대표의 호남 사과와 관련해 “광주 시민들이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의미를 일축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정계 은퇴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발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르거린다. DJ는 야당 시절 대선 불출마, 정계 은퇴 선언 등을 번복해 혹자로부터는 거짓말쟁이라는 거친 소리도 들었다. 그럴 때 한 DJ의 대답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약속을 못 지켰을 뿐이다”고 둘러댔다. 그런 DJ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호남은 DJ가 실수하고 실패해도 버리지 않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고 결국 대통령을 만들었다.
DJ에게 어머니 품 같은 존재인 호남의 은혜를 입은 이는 DJ의 정치적 양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도 DJ를 이어 대통령이 됐다. 그 맥을 이어 온 정당이 더민주다. 안철수의 반기 등으로 당이 갈라지자 버티지 못하고 결국 대표직에서 사퇴하며 김종인 대표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더민주의 대표이사는 문재인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을 결코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되는 이유다. 하지만 문재인에게는 DJ와 같은 리더십이 없고 노무현 전 대총령과 같은 충동과 선동적인 바람도 없다.
문재인에게는 친노로 대변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있지만 확장성이 없다. 대안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친노지만 100% 친문에 대한 지지도 불확실하다. 문재인의 사실상 적은 친노의 벽을 넘지 못하지 듯한 처신과 정권교체의 필수 요건이랄 수도 있는 중도적 이슈로 중도 유권자층을 끌어 들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친노를 넘어서지 못하는 문재인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호남의 정서에는 불안한 존재로 비치는 까닭이다.
호남은 지난 총선, 대선, 재·보선에서 90% 전후의 몰표를 줬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진심어린 사과보다는 패권형 친노에 휘둘리다 결국 당이 분열되는 사태로까지 치달았다. 친노패권주의와 부패 청산을 부르짖는 안철수와 끝내 결별했다. 호남 민심은 급랭했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문재인은 다시 호남을 찾아 지지를 읍소했다. 142일만에 찾아와서는 정계 은퇴라는 협박성 조건을 내걸며 표를 호소했다.
광주로 간 문재인은 “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라며 더 강한 야당이 될 것을 외쳤다. 문재인이 잠시 착각한 게 있다. 더민주가 내분과 분열끝에 분당으로 치달은 것은 친노·친문·운동권 세력의 패권주의 때문이었다. 이들은 마지막 비례대표를 놓고 패권주의와 운동권 척결을 내건 김종인 대표와 극한 대립까지 갔다. 파당직전에 가까스로 봉합됐다. 더 이상 강한 야당이란 대체 뭘까?
문재인은 “당의 분열을 막지 못했습니다”라고도 했다. 문재인은 당의 분열을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분을 획책하고 분당으로까지 몰고 간 주범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다 나갔을까? 아니다. 안철수는 당을 박차고 나갔다기보다는 ‘토사구팽’에 가깝다. 부패척결과 패권주의 청산을 부르짖는 안철수가 더민주에 뿌리내릴 자리는 없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분당의 책임을 안철수 대표에게 미루는 문재인 전 대표의 모습은 새삼스럽지 않다. 대선과 총선 그리고 그동안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문재인 대표는 책임 같은 책임을 진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책임지지 않는 문재인의 리더십이 분당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 책임마저 또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있다.
문재인 대표의 호남민심 잡기 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측불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 벽을 넘지 못하는 정치인, 정치 생명을 놓고 거래하는 정치인이란 점은 스스로 각인시켜 줬다. 진심어린 사과를 받기를 원했던 호남은 과연 그의 ‘변명과 협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답을 원했던 호남은 어쩌면 숙제만 떠안은 것이 아닐까. 선택은 오롯이 호남 유권자들의 몫이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