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태양아래는 한 민족의 재앙을 그린 영화이다.”
북한의 8살 소녀 ‘진미’를 통해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억압하는지 실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아래’를 촬영한 러시아 출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고백이다.
태양아래의 촬영은 당초 만스키 감독이 북한당국과 정식 계약을 체결해 북한 주민의 평범한 일상을 담을 의도로 시작됐다. 주인공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의 제작 의도가 바뀐 것은 북한당국이 진미 부모의 직업, 그 가족이 사는 집, 직장생활, 등교 장면 등 모든 것을 철저하게 연출한 것을 파악하면서부터이다.
영화는 진미와 그 부모,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지시하는 북한 측 인사를 화면에 등장시킴으로써 이 다큐멘터리가 거대한 사기극임을 고발한다.
진미는 촬영 전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직업은 기자, 어머니는 음식점 종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버지는 봉제공장 기술자로, 어머니는 콩우유 공장 노동자로 둔갑한다.
진미 가족이 사는 주체사상탑이 내려다보이는 평양의 신식 아파트도 가짜였다. 식탁에 음식이 차려졌지만 부엌 찬장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공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 학교로 가는 학생들의 행렬 모두가 연출됐다. 실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공장과 학교 내 기숙사에서 거주했다. 출근, 등교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평양 주민들이 동원된 것이다.
북한당국의 거짓말을 고발하기로 작정한 만스키 감독은 촬영 전후에 계속 카메라는 켜두는 등의 방법으로 당국이 어떻게 촬영에 개입하는지, 또 주민들의 행동과 생각을 어떻게 통제하고 억압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할 수 있었다.
영화 '태양 아래' 스틸컷./사진=THE픽쳐스 제공
만스키 감독은 “그들이(북한당국) 제 손을 통해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속이기를 원하고 있고, 또 그들이 저로 하여금 그 어떤 북한 실상도 볼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을 느끼고 북한의 실상을 고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 ‘진미’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당시 북한 측 인사는 자리에 없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진미를 본 제작팀은 당황했다. 러시아 측 통역이 진미를 달래기 위해 좋아하는 시를 외워보라고 했다. 그러자 진미는 “나는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께서 세워주시고...”라는 김일성 일가 3대를 찬양하는 시를 줄줄 외운다.
만스키 감독은 “나 역시 구소련 시대에는 북한 주민들처럼 대열에 서서 구호를 외치곤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난 뒤에는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었고, 나의 개인적인 삶이 있었다. 사람들과 소박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고 미래의 자유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만스키 감독은 북한을 “자기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상실된 나라”라고 평가했다. “한 세대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굉장히 큰 연민과 아픔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했다.
그는 또 “북한에서 꽤 오랜 시간 그 사람들을 보고 이해한 결과 저는 확신이 생겼다. 북한 체제 또는 권력에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북한 사회가 ‘감염’돼 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십 년이 필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만스키 감독은 소련이 1953년에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 뒤에도 1991년에 이르러서야 붕괴됐고, 지금까지도 러시아 국민들에게 스탈린이 정서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북한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을 때 그들이 감염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대한민국이 잘 참아가면서 그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 리얼 다큐멘터리는 2013년 말 북한당국의 허가를 받은 뒤 2014년 1년 동안 세 차례 북한을 방문해 촬영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세 번째 촬영 때 별안간 방문을 허가하지 않았고, 두차례의 촬영만으로 이 영화가 나왔다고 한다. 모두 약 20일간동안 북한을 촬영한 것이다.
만스키 감독이 매일 촬영이 끝난 뒤 촬영분을 빼돌리는 과정도 첩보작전 수준이었다. 북한당국은 제작진이 머물던 호텔 내에 특별한 방을 설치해서 매일 모든 촬영분을 검열했다고 한다.
제작팀은 촬영한 것을 지키기 위해 북한 측에 제출하기 전 촬영분을 모두 복사한 뒤 의심을 살 만한 분량은 빼돌리고 나머지를 제출해야 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 중 한 명이 화장실에서 시간을 끈다던가 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촬영분을 반출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만스키 감독은 “그 과정을 영화로 찍을 수도 있을 정도의 모험이었다”면서도 끝내 반출 과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북한판 트루먼쇼’로 불리며 세계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태양아래를 제작한 만스키 감독은 “진미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영화라는 공통된 언어를 통해 같은 감정을 느끼고 함께 안타까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