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지우개를 살 수밖에 없었다
때는 고등학생 시절, 한창 수능공부를 하던 19살의 나의 이야기이다. 공부를 하던 중, 지우개를 사러 친구와 함께 학교 앞 문구점을 들렀고, 나는 평소 자주 쓰던 '펜텔’의 플라스틱 지우개를 골라서 계산대로 갔다. 그러자 친구는 내게 우리네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야, 펜텔에서 버는 돈으로 독도 침탈에 쓴다는데 진짜 그거 살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순간적으로 내 안에서 거부감이 일었지만 결정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같은 가격으로 나의 만족감을 충족시킬만한 '국산’ 제품이 없었다는 것.
그때의 일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충분히 우수한 성능을 지니고 있는 제품을 두고, 더 낮은 품질의 제품을 사는 것이 과연 소비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일까? 물론 아니다. 오히려 대등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산 제품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같은 개념을 배제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굳이 내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비슷한 품질의 지우개를 구입하거나, 같은 가격으로 낮은 품질의 지우개를 살 하등의 이유가 없다. 즉, 펜텔의 플라스틱 지우개가 품질이나 디자인 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면, 경쟁사는 즉시 성공요인을 분석해 자사 제품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가장 우선하는 환경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무엇인지 아는가? 실제로 친구가 말해주었던 이야기는 자세히는 '펜텔의 지우개 판매 수익금이 독도의 국제 명칭을 다케시마로 바꾸는 데에 쓰인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흔히 말하는 '카더라’로, 사실도 아니었다. 오히려, 펜텔이라는 기업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 루머의 진실을 밝히고 해명해 오고 있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으로 인해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옥시의 경쟁력과 위험 부담을 저울질해 옥시 제품을 사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사진=미디어펜
건전한 소비문화를 만드는 데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정보가 우선해야 한다. 자유경제체제에서는 수많은 공급자가 있고, 소비자는 공급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했을 때, 합리적인 소비를 해낼 수 있다. 경제학에서 자주 듣게 되는 '조지 애컬로프’의 「The Market for Lemons : Quality Uncertainty and the Market Mechanism」을 생각해보자. 간단히 말해, 판매자와 구매자가 지닌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역선택이 발생되고, 이것이 반복될 경우 전체 시장이 무너지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이론이다.
자, 다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문구점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이 곳에 지우개는 '펜텔’의 고품질 지우개와, 국내 생산인 다소 질이 떨어지는 지우개만이 있다. 친구는 '펜텔’사가 여전히 독도의 침탈에 자금후원을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역시나 국내산의 저품질 지우개를 살 것이다. 이 경우에도 역시 역선택은 어김없이 발생한다.
루머가 사실이 아니라는 '정보’를 몰랐기에 우수한 제품을 두고도 적절한 가격에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인터넷 보급이 활발해지고 정보에 대한 접근도가 높아진 요즘에도 시장에 제공되는 수많은 제품들을 모두 다 판단해 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은 최대한 필요한 정보를 체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보는 등으로 정보탐색의 기회를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음으로, '보이콧’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정확히는 소비활동에서의 보이콧, 곧 불매운동에 대해서다. 최근에는 '옥시’ 제품의 불매운동이 이슈가 되고 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품이 막대한 인명피해를 주었고, 그에 대한 보상이 미비하다는 데에 소비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옥시’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말고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으로는 2013년의 남앙유업 사태 불매운동, 금년 4월의 미스터피자 불매운동 등이 있다.
시장가격은 단순히 생산에 투입한 노동력의 정도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그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만족도의 가치 정도를 효용가치라고 하는데, 소비자들은 생각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는 제품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사실상 평소에 가격 대비 성능,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에 대해서 '불매’를 하고 있는 셈이다. '불매운동’은 그 의도가 정치적이든 윤리적이든, 단지 가격문제로 인한 것이든 다른 소비자들에게 불매를 촉구하는 운동인 것이다. 여기서도 물론 정보라는 것은 중요하다. 정보의 유무에 따라 상품에 대해 가지는 가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미지나 결함적 문제 등에 의해 같은 상품에 대해 느끼는 가치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롯데가 진출한 업계는 백화점부터 대형마트, 아울렛, 편의점, 슈퍼마켓, 홈쇼핑, 면세점 등 대부분의 유통업계에서 그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던 많은 불매운동이 성공적인 마무리를 맺지 못하는 것도 효용가치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13년 남양유업의 '갑질 사건’으로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의 의식전환을 요구하며 불매운동에 나섰다. 이에 남양유업은 할인전략으로 맞섰고, 2년의 적자기록 끝에 다시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가격의 할인폭이 효용가치의 하락폭보다 높았기에 소비자들은 남양유업 제품을 소비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례로 롯데 불매운동이 있는데, 그 내용은 '대기업의 독과점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논리였다. 물론,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소비행태는 어떤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롯데가 진출한 업계는 백화점부터 대형마트, 아울렛, 편의점, 슈퍼마켓, 홈쇼핑, 면세점 등 대부분의 유통업계에서 그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다.
이런 분야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편의가 판매되는 재화·서비스의 가격에 적합하다고 느끼기에 소비가 계속되고 실제로 불매운동이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는 것이다. 옥시 불매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옥시의 경쟁력과 위험 부담을 저울질해, 옥시의 제품을 사는 소비자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합리적 경제인이라면 소비하는데 있어서 비용과 효익을 비교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중, 개인의 효익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라고 하겠다. 정보의 유무와 그 정확성에 의해 소비자는 역선택을 회피하고 가장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도 정보가 무분별하게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는 무엇보다도 분별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김성헌 중앙대 경영학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제20회 시장경제 칼럼 공모전 '하이에크상(2등)' 수상작으로,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성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