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와 관련해 국민연금이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하면서 관련자들이 바싹 긴장하고 있다. 소송 대상이 대우조선해양에 한정되지 않고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물론, 나아가 KDB산업은행 등에까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준법지원실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손해배상 소송을 본격진행하기 위한 내부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 방향이나 소송대상이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이 사장이 지난 2012년부터 3년간 재임하면서 5조4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3년에 4분기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을 9.11%(1744만1569주)까지 불린 바 있다. 당시 2013년 대우조선해양의 평균 주가는 2만9927원으로 52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후 국민연금은 지난해부터 대우조선해양의 지분을 꾸준히 낮춰 지난해 2분기 4%(766만776)주까지 떨어뜨렸고 지난해 3분기부터는 대량보유 내역도 공시하지 않을 정도로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팔아치웠다. 지난해에 3분기까지 대우조선해양의 평균 주가는 1만4517원으로 국민연금이 2013년 매수한 금액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국민연금이 잘못된 회계 정보에 따라 손실을 입은 만큼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투자손실을 만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대우조선해양 소액주주 400여명이 대우조선해양과 고재호 전 사장,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총 25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도 조만간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국민연금이 소송에 나서더라도 그 대상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외부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 선에서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부행장 출신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내려보내는 등 관리·감독 부실책임 비판을 받고 있는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소송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판단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분식회계 책임을 주주에 묻는 경우는 없다”며 “CFO를 내려보냈다고는 하지만 산업은행 퇴임 절차 후 대우조선해양으로 간 것이고 지분율이 50%가 안 돼 감사권도 없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은행이 국민연금의 소송 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기업인 국민연금이 정부부처인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입증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지난해부터 금융감독원이 대우조선해양의 회계감리를 진행하고 있지만 언제 결과가 나올지도 불확실한데다 민사소송에서 확실한 분식회계의 증거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회계심사국 관계자는 “워낙 내용이 많아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언제 마무리될지 확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재호 전 사장 등 과거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이 형사처벌 여부에 따라 국민연금의 손해배상 소송 승소 가능성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금감원의 회계감리 결과보다 형사처벌이 보다 확실하게 분식회계의 증거로 작용한다”며 “만일 금감원 회계감리 결과만 분식회계가 있던 것으로 나오고 대우조선해양 과거 사장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국민연금의 손해배상 소송 승소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금감원 감리 결과에 따라 검찰에 고발을 하지만 법원이나 검찰의 판단에 따라 분식회계 당사자의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소송 자체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대우조선해양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면 앞으로 분식회계 기업이 나올 때마다 국민연금이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안진회계법인은 국민연금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금감원의 감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연금의 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전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