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홍보만 떠들썩하게 해놓고 결국 생색내기 아니냐는 거죠."
40대 직장인 A씨(개인신용 5등급)는 최근 출시된 '사잇돌 대출'에 기대를 걸었다 도리어 실망만 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 소비자들을 위한 상품이라기에 온라인(비대면) 문의를 해봤지만 대출 부결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득 대비 비중이 큰 카드론이 문제였다.
혹시 몰라 직접 은행 창구로 찾아가 다시 문의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A씨는 "고금리 빚을 대환해 준다는 목적으로 나온 게 사잇돌 대출 아니냐"면서 "이럴 거면 기존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쪽으로 다시 알아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금융당국이 '사잇돌 대출'을 야심차게 출시했지만 벌써부터 회의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저축은행 쪽으로 오히려 대출 수요가 몰린다는 지적도 있다. '사잇돌 대출'은 결국 당국과 시중은행의 '생색내기'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마저 나오고 있다. /미디어펜
금융당국이 '사잇돌 대출'을 야심차게 출시했지만 벌써부터 회의론이 나온다. 사잇돌 대출을 거부 당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수혜를 입는 소비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의 '생색내기'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마저 나오고 있다. 중금리 시장의 '원래 주인'인 저축은행들은 예상된 반응이라는 평가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저축은행을 찾는 대출 소비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1분기에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간 소비자 숫자는 작년 대비 무려 11만 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년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저축은행의 여신 잔액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1분기 잔액은 37조 6641억 원으로 3개월 사이 2조 803억 원이 증가했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융당국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시행해 시중은행들의 대출심사가 까다로워진 결과다.
일각에선 저축은행들의 '공격적 마케팅'도 한몫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업계 생각은 달랐다. B저축은행 관계자는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여파로 아직도 국민들 인식이 좋지 않고 당국도 광고 제한 등 여러 규제를 걸고 있다"며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저축은행으로 몰리는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도출된 '큰 흐름'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잔액은 이미 작년 말에 1200조원을 돌파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나온 것이 중금리 대출상품인 사잇돌 대출이다. 사잇돌 대출은 금융당국과 시중은행, 서울보증보험이 힘을 합쳐 기획한 정책금융상품이다. 시중은행 대출에서 소외된 신용 4~7등급 소비자들에게 중간 금리의 대출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출시됐다. 현재 9개 은행이 참여했으며 올 가을 저축은행도 사잇돌 대출상품을 내놓는다.
지난 5일 출시된 이후 고작 5영업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은행권 사잇돌 대출의 효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A씨처럼 5등급 이하의 신용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에게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간 등급 대출 소비자들에게도 문을 연다는 사잇돌 대출의 취지는 강화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시행과 파열음을 내면서 중금리 대출의 확산을 방해하고 있다. 심사는 심사대로 강화하고 대출은 대출대로 늘린다는 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사잇돌 대출에 대한 시중은행들의 '조용한' 모습에서도 감지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사잇돌 대출의 실적에 대해서는 "아직 지켜봐야 할 단계"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3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출시 때 앞다퉈 호실적을 발표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익명 어플 '블라인드'를 언급하면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이 올린 글을 찾아보면 수십 명의 표본을 돌려봐도 사잇돌 대출 승인이 나는 경우가 손가락에 꼽힌다는 얘기가 있다"면서 "그나마 서울보증보험을 끼고 들어왔는데도 이 정도라면 시중은행의 중금리 시장 진출은 '무리'라는 판단이 든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으로도 5~7등급 대출 소비자들은 저축은행이 소화한다는 게 업계의 상식이기도 하다. 지역경제에 특화돼 있으면서 저신용 소비자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10년 이상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사잇돌 대출과 같은 정책상품이 아니면 시중은행들이 중금리 시장에 진출을 할 방법은 없다"고 단언하면서 "생색내기가 아니라면 의도가 모호한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중금리 상품을 둘러싼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입장 차이는 우리은행-저축은행 연계 대출상품 출시가 계속 지연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당초 우리은행과 저축은행중앙회는 6월말 중금리대출 연계상품을 출시할 예정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연 15% 이하 금리의 상품 출시를 원하는 반면 저축은행들은 10%대 금리상품의 수익성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주요 고객층과 이해관계가 판이한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이 중금리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