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정재영 기자] 뼈아픈 역사 속, 마침내 승리를 거둬 역사에 기록된다 해도 과연 그것이 끝일까. '승리의 기록'인 역사를 들추면 그곳에는 힘없는 이들의 고통이,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비참함은 그대로 남아있곤 한다.
대한민국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그런 시기가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크게는 국가와 영토부터 작게는 개인의 이름까지 모두 뺏긴 아픔의 시대이다. 그런 시대 속 여성들의 고충을 직시하는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가 3일 개봉해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이어갔다.
한 나라의 옹주이지만 결코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행운은 없었던 이덕혜의 일대기를 짚어낸 '덕혜옹주'를 보고 있자면 올해 초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다 못해 눈물샘을 터뜨린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신분의 차이는 있지만 한 가정의 귀한 딸로 자라나 주위 환경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닮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이 여느 사연보다도 애달픈 건 '외압'이란 강력한 힘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운명 앞에서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두 여성은 개인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혹은 도구적인 위치의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살고 싶었던 인생의 모습은 은커녕 상상도 못했을 삶으로 떠밀려진 것이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이들의 삶을 순간순간 맞이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더할 수 없이 먹먹해진다. 젊은 관객들에게는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이들이 고통받음에 마음이 착잡해지고 다소 나이가 있는 관객들이라면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두 영화가 전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속에서 거론되는 문제들은 현재에 와서도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암울했던 시대에 태어난 죄로 많은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은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반목과 실수로 제대로 치유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두 영화는 올해 다른 영화들보다 귀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 스러지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만은 꺾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승자의 기록'을 뒤집어 그 이면을 보여준 '덕혜옹주'와 '귀향'이 관객들에게 오래토록 기억될 이유는 그것이다.
[미디어펜=정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