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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의 치명적 덫…특정집단 특혜·특권만 대변

2016-08-08 08:5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적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양립 가능한가? 자본주의란 경제 체제가 궁극적으로 진화한 것이고 민주주의란 정치 체제가 궁극적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보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시각에서 보면 두 제도는 양립 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법하다.

그러나 두 제도 사이에는 근본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처리해야 할 일에 대해 누가 결정하느냐 라는 관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내 일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지만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제도는 양립 불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항상 내 일을 내가 결정하는 자본주의를 택하면 될 성싶지만 업무 중에는 나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타인의 침해로부터 나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와 같이 민주주의가 순조로운 자본주의 작동을 위해서 필요할지 모른다. 활발한 시장 거래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나의 재산권 행사와 거래의 체결을 안심 놓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제에 민주주의, 정부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양립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로 결정하는 것이 좋고 민주주의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은 문제들을 민주주의로 결정한다는 점에 있다.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뽑는 데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주의는 정부 권력을 가지는 사람들을 평화적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부가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에 개입한다면 이러한 무제한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정부의 경제 개입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자본주의, 더 나아가서 경제적 번영의 저해로 나타날 것이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게 되면 지대 추구와 규제적 포획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소수 특수 이익 집단들이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로비하여 특권을 얻으려고 한다. 소비자와 일반 대중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부와 국회는 사실상 특수 이익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실시한다./사진=연합뉴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결정하는 제도로서 다수의 의사가 소수에게 강요된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의 경제적 표현으로서, 여기서는 양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문제가 해결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여러 각도에서 대비해 볼 수 있지만, 자본주의는 국민들이 자기 자신의 결정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들이 국민들을 대신해서 결정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능하면 자본주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집합적 수단이 필요할 때도 있어서, 민주주의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정부가, 예를 들면 언론의 자유와 같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 국한해서 민주주의를 사용할 때는 문제가 없다. 국민의 권리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국민의 권리는 양도 불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포기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정될 수도 없다.

이러한 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것을 존중할 의무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 정부가 이러한 권리의 보호에 국한해서 민주주의로 결정할 때는 누구도 피해보는 사람이 없고 불만을 가지지 않으며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국민들은 열심히 시장 경제 활동에 종사한다. 그 결과 사회는 번영한다.

이러한 권리는 특권이나 특혜와 다르다. 최저 임금은 권리가 아니다. 유급 휴가도 권리가 아니다. 동등한 보수도 권리가 아니다. 무료 교육도 권리가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특권이나 특혜일 뿐이다. 보편적이지도 않고 포기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희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 임금제가 실시될 때 기업주는 원하지 않는 임금을 주도록 강요된다. 최저 임금제는 기성 근로자에 대한 특혜일 뿐 그의 권리가 아니다.

반복하자면, 정부의 역할이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 보호에 국한된 작은 정부였을 때는 문제가 없었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발달했으며 국가가 부유해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19세기 후기 진보주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정부의 역할을 국민들의 자유,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민들의 이익, 경제적 복지도 돌보는 것으로 확대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였다. 경제적 진보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민주화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 민주화를 통해 국민들의 이익, 경제적 복지를 돌볼 것이 기대되고 있지만 이것은 특정 집단에 대한 특권과 특혜를 의미한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에 개입한다면 이러한 무제한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정치인, 공무원들의 경제 개입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자본주의-경제적 번영의 저해로 나타날 것이다./사진=미디어펜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게 되면 일반 공익보다 특수 이익이 지배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다수파가 소수파를 지배하지만, 크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주로 사용되는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소수파가 다수파를 지배한다.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도록 강렬한 이익을 가진 소수파들이 로그롤링을 함으로써 소수파가 다수파를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소수 특수 이익은 주로 생산자 이익으로서 일반 이익인 소비자 이익을 지배한다. 정부는 소수 특수 이익의 영향력에 의해 산업 정책이나 경제 민주화 정책과 같은 것을 실시하게 된다. 그 결과는 경제적 진보의 둔화이다.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게 되면 지대 추구와 규제적 포획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소수 특수 이익 집단들이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로비하여 특권을 얻으려고 한다. 이러한 지대 추구로 사회의 유능한 사람들이 생산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대신 특권과 특혜를 얻는 활동에 귀중한 시간, 돈, 자원을 낭비한다.

그 결과 사회의 부가 낭비되고 파괴된다. 국민들이 가난해지게 된다. 또 소비자와 일반 대중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부와 국회는 사실상 특수 이익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실시한다. 특수 이익 집단의 주도로 규제가 실시될 뿐만 아니라 실시되는 규제도 특수 이익 집단에 이롭게, 잠재적 생산자들에게 불리하게, 일반 소비 대중에 해롭게 이루어진다. 그 결과는 경제적 진보의 저해다.

이러한 무제한적 민주주의의 결과 자본주의 발전이 저해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장된 재산권 아래에서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무제한적 민주주의 제도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들이 침해된다. 반면, 헌법적으로 제한된 정부의 결과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번영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정부 권력에 대해 헌법적 제약을 두는 입헌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 정부가 국민들의 의지를 수행하는 것, 복지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으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도 번영도 저해한다. 민주주의가 입헌 민주주의라면 자본주의와 양립 가능하나 무제한적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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