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대국 미국이 최첨단무기 사드를, 그것도 공짜로 주겠다는데 한국인들은 결단코 배치 못한다고 생떼를 부립니다. 이게 뭡니까? 제 표현이 좀 거칠지만 죽지 못해 안달이고, 노예로 살지 못해 환장한 수준 아닙니까? 이런 대한민국을 지켜보면, 성경 속 하나님이 인내가 많으시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 듯도 한데, 정말 지금 상황은 큰 걱정입니다."
지난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선일보 사태와 한국언론의 추락, 희망은 있는가?'를 주제로 한 바른언론연대 주최 토론회 때 발제자 조영환(올인코리아 대표)의 즉석 발언이다. 준비한 발제문을 잠시 접어둔 채 털어놓은 속내가 대한민국에 대한 우려와 경고였던 건 우연이 아니다.
같은 발제자였던 내가 듣기에도 속이 후련했다.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그의 당당한 발언은 위력적이었는데, 그날 분위기도 좋았다. 조영환의 발언은 결국 국가자살을 결심한 듯 아무 생각 없이 굴러가는 이 나라, 그리고 이런 구조적 문제에 눈감은 '죽은 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올인코리아 조영환의 가슴 철렁한 경고
"이런 대한민국 종족은 벌을 받아야 정상 아닙니까? 우리가 풍족하게 먹고 마시는 고기와 음료수는 아프리카인이 먹어야 옳고, 우리 배를 주려야 합니다. 대체 왜 우리는 자기운명을 개척하지 않으려는 겁니까? 국가생존보다 더 큰 가치는 없는데 조중동까지 마이동풍이잖아요. 그들마저 좌익이념에 오염됐습니다. 이런 풍토를 경고해온 고영주 같은 애국자에겐 언론-법원이 벌금을 때리고 박해합니다. 입을 틀어막는 겁니다."
드디어 그의 입에서 요즘 쟁점인 서울중앙지법 김진환 판사가 내린 3000만 원 손해배상 판결 문제가 등장했다. 야당 정치인 문재인에게 "그가 공산주의자임을 확신한다"고 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건이다. 이 판결을 둘러싼 공방이야말로 대한민국 명운이 바꿔놓을 수 있다고 나 역시 판단한다.
좌편향 법조계 문제를 지적하고, 한국사회 전체가 좌익이념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걸 제대로 짚어줄 수 있다면 좋은 반전의 계기일 수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가능성도 높다. 지금 사회 분위기는 "문재인이 그래도 대선 때 48% 지지를 받았는데, 공산주의자란 규정은 좀 지나치다"는 쪽의 유화적 정서가 없지 않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기울어진 판결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고영주 이사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건 이념적 중도(中道)를 선호하는 이들이 빠지는 무책임한 태도이고, 문재인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에 나온 거대한 오판이다. 바른언론연대 토론회에서 조영환이 그 점을 지적했는데, 무엇보다 조중동마도 대한민국 헌법 제4조가 명문화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
"조중동의 핵심마저 민주팔이-민중팔이로 장악된 지 오랩니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 성공을 담보했던 게 언론이고 핵심에는 반공이란 가치가 있었는데, 지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식민지 노예국가를 성공국가로 만든 이승만-박정희를 독재자로 때립니다. 대신 김대중-노무현이 영웅이죠. 한국사회가 말기암 퍼지듯 민주팔이-민중팔이로 온통 오염된 것입니다."
어떠신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경우 이 글이 괜한 평지풍파의 이념적 억지라고 불편한 감정이 드는지가 궁금하다. 뜻밖에도 이번 판결을 내린 판사가 그쪽이었다. 피고 고영주를 한국의 매카시로 내심 규정하고 있다는 게 판결문에서 암시된다.
공정하게 재판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 판사가 적대감을 피고에게 표출한 셈인데 판결문 4면 2)'발언 이후의 경과'가 그러하다. 인용하면 이렇다. "피고(고영주)는 2015년 10월 2016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으로서 위 신년하례회 발언과 관련하여 '사법부 좌경화 발언 등' 여러 가지 화제가 되는 말을 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판사 김진환의 황당한 원님재판
이게 왜 문제인가? 사법부 좌경화 발언은 이번 소송과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데 엉뚱한 대목을 느닷없이 등장시켰다. 판사는 평소 피고 고영주하면 이 대목부터 떠올랐다는 뜻이다. 기회에 콕 찍어서 그동안 불편했던 자신의 감정표현을 판결문에 해버린 셈이다.
즉 문재인의 경우 "그는 공산주의자"라는 발언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면, 자기 자신과 재판부 역시 사법부 좌경화라는 발언의 피해자이므로 원고와 자신은 결국 동병상련의 처지다. 즉 원고와 자신을 동일시(同一視)하기 때문에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는 피고의 발언이 정당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질 리 만무였다.
이번 재판이 좌편향화된 최악의 케이스라는 비판은 그 때문이다. 다만 이 글은 재판을 둘러싼 그런 디테일을 다루기 보다는 "죽지 못해 안달이고, 노예로 살지 못해 환장한" 한국사회 풍토 전반에 대한 지적이다. 밝히지만 1년 전 나는 고영주 이사장을 "우리시대의 의인(義人)"이라고 했다.
그 바람에 엄청난 정치사회적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전혀 후회 없다. 당시 미디어펜에 올린 글에서 나는 "무너지는 대한민국 이념의 방파제를 온몸을 던져 막아내고 있는 사람(고영주)을 공격하는 사악한 움직임이란 한국사회의 좌편향화가 얼마나 위험수위인가를 보여주는 증거일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잘 안 바뀐다. 이제 매년 국회 국감은 '고영주 사냥터'로 변질된 듯 하다. 지난해 MBC 국감에서 야당의원들은 작심한 고영주 때리기에 몰두해 그를 가리켜 "수구꼴통"이라고 공격을 감행했지만, 올해도 그랬다.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는 으름장도 서슴없었다.
이건 아니다. 고영주 이사장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리를 꼭 지키겠다. 직을 잘 수행하라는 말로 알겠다"고 일축한 것은 의연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이 왜 자격이 없는지 납득할 수 없다. 북한의 대남 전략·전술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하는 게 나의 애국"이라고 소신답변을 한 것도 당당했지만, 그가 안쓰럽고 위태로워보인다.
바른언론연대(최창섭 대표)는 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조선일보 사태와 한국 언론 구하기'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사진 중앙)./사진=미디어펜
언론-법조-교육, 모두가 亡兆 들었다
자리 걱정이 아니고 대한민국이 문제다. 균형 잡힌 시민의식과 애국심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은 너무 드물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안보를 말하면 수구골통의 냉전주의자로 분류되며, 평화와 공존 그리고 화합 따위를 들먹여야 개념있는 사람이다. 애국을 말하는 사람은 숫제 팔불출로 분류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념의 낙동강 전선에 서있다." 올해 초 역사교과서 전쟁 당시 장신대 김철홍 교수의 진단은 그래서 더욱 가슴 철렁한 경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상황을 반전시킬 동력은 태부족하다. 건국 이후 1970년대까지 정부의 보호 아래 자유주의 전통을 유지해오던 반공주의 세력은 와해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통 세력은 매일같이 무력감을 경험한다. 경제학자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경우 이렇게 속내를 비췄다.
"자유주의를 강의하기 위해서는 꼴통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속으로 자유주의자이면서 입까지 자유주의자인 교수는 대학에서 희귀한 존재다. 지적 풍토가 이러해서는 이 사회를 얽어매는 역사의 굴레를 벗기면서 또 하나의 비약을 이끌 리더십이 생겨나기 힘들지 않을까?" (<통합,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 39쪽)
지금은 그 책을 쓴 2~3년 전과 달리 국가사회의 비약을 이끌 리더십을 논할 때가 아니라 국가존망의 위기 국면이라서 더욱 아찔하다. 조영환 얘기로 시작했으니 그의 발언으로 마무리를 짓자. 한 달 전 인터넷신문 올인코리아에 실렸던 그 매체의 발행인 조영환의 칼럼 '정부만 맹비난하면 고상한 언론이 되나?'(9월21일)의 앞대목인데, 좌편향 언론과 법조 문제에 대한 구조가 잘 드러나 있다. '망조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두루 음미해볼만하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유해(有害)기관은 친북좌익세력과 웰빙 중도 세력의 소굴처럼 되어버린 국회, 공허한 명분주의에 함몰되어 정치적 현실주의가 결핍된 언론, 종북적 자학사관을 세뇌시키는 교육계 그리고 좌편향적 기소와 판결로 종북 좌익세력이 활개 치게 하는 법조계이다. 대한민국은 입법·판결·정보·지식 부문이 모두 망조 들었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