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나는 낚시다>저자, 문학평론가 |
문향(文香)과 스토리가 있는 하응백의 낚시여행(4)-완도 열기낚시
갈치낚시나 우럭낚시가 주춤해지는 1월에서 4월 정도까지 배낚시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낚시가 바로 열기낚시다. 열기는 학명으로는 ‘불볼락’이라고 하며 서해 남부, 남해 전역, 동해 남부에서 주로 잡힌다. 어초나 암초 지대에 군집하는 어종이라 때를 만나면 다수확이 가능해 인기 배낚시 대상어로 자리 잡았다. 동해 남부권은 마릿수는 좋으나 씨앗이 비교적 잘고, 통영 일대의 남해 동부권은 워낙 낚싯배들이 많아 자원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 최근에는 여수, 마량, 완도, 진도 등지에서 출조하여 남해 한 가운데 있는 거문도, 사수도, 여서도 권까지 낚시하는 배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마량이나 완도까지 서울에서 차를 몰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 그래서 낚시점에서 버스를 마련하고 낚싯배까지 알선하는 형태의 출조가 많아졌다.
2월 15일 완도로 출조했지만 조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마도 사리물 때 다음날인 7물 때라 물때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바다낚시에서 좋은 조황을 올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 중 첫째는 바다 날씨. 바람이 없어야 한다. 둘째는 물때. 셋째는 선장의 실력. 그 다음이 낚시꾼의 실력이다. 물론 좋은 날씨에 좋은 물때에 실력있는 선장을 선택하는 것도 낚시꾼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가령 실력있는 선장의 배는 적어도 보름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는데, 그날 마침 날씨가 좋지 않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따지고 보면 낚시는 요행수를 바라거나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월 25일 재도전하기로 했다. 날씨도 좋았고 물때도 2물이라 최적이다. 평일이라 할 일이 있었지만, 나에게도 하루 휴가를 주자, 하는 마음으로 출조하기로 했다.
전날 밤, 부천 상동 호수공원 주차장에 밤 10시까지 집결. 어디선가 대형 아이스박스를 끌고 한 둘씩 나타난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좀 의아한 풍경이리라. 밤 10시에 낚시복 차림의 아저씨들이 중무장에 아이스박스를 끌고 도심의 공원에 수십 명이 모이다니. 플래시몹이라도 하나? 버스 세 대에 분승하여 이날 이 장소에서 출발한 아저씨들만 약 60명이었다.
버스는 밤새 달려 완도항에 새벽 3시쯤에 도착한다. 아침들을 먹고 미끼를 준비하고 4시 30분에 배를 탄다. 오늘 탈 배는 완도 오렌지호. 배 이름이 특이하다.
배 타기 직전의 낚시꾼들. 일단은 설렘과 조과에 대한 부푼 꿈으로 배를 기다린다. |
▲열 마리가 한꺼번에. 사실은 두 사람의 채비가 엉켜 함께 올라온 것이다. 고기는 둘이 양심껏 갈라야 한다. |
아침부터 이 정도면 대박 조황임을 예감한다. 사실 열기 낚시는 두어 시간만 줄을 태우면 한 쿨러 채우기는 쉽다. 계속 줄을 태운다면 말이다. 그런데 옆 사람 혹은 뒷 사람과 줄이 엉켜 채비를 잘라내고 다시 미끼를 달고 하면 그 황금 시간이 흘러가 버린다. 때문에 낚시꾼끼리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같은 호수의 봉돌을 사용하고 선장의 신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줄을 내리고 올려야 한다. 베테랑 조사 중에서도 자신만의 낚시 방법을 고집하여 남들과 자주 줄이 엉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남을 보고 자신의 방법을 맞추어야 하는데 남들에게 바꾸기를 강요하다가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까지 있다. 다행히 이날 오렌지호를 탄 꾼들은 대부분 영리하게 잘 한다. 뭔가 입질이 강하게 온다. 열기 입질로서는 매우 강력하다. 올리고 보니 그야말로 신발짝만한 열기다. 열기 낚시도 여러 번 다녀보았지만 이만한 싸이즈는 처음이다. 기념으로 한 장 찰깍.
▲신발짝보다 조금 큰 왕열기. 이 정도면 대물이다. 발은 필자의 발. 265cm의 신발 |
고기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도 중요하다. 때문에 잡은 고기를 잘 보관해야 한다. 나는 고기를 잡은 즉시 아가미에 칼을 넣어 피를 빼고 얼음이 있는 아이스박스에 바로 담는다. 이날 보니 대부분의 조사들은 바닷물을 길어 물에 담가 피를 뺐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게 하면 회가 물러지는 듯하여 물에 담가 피를 빼지 않는데, 무엇이 옳은지는 모를 일이다. 여하간에 고기를 박스에 담고 배에 준비된 얼음을 박스에 넣으려니까 사무장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다 잡고 나서 오후 철수할 때 위에 얼음을 부으라는 것이다. 얼음이 민물이니까 민물이 미리 닿으면 회가 맛이 없다면서.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이날 기온이 10도를 상회하는데 얼음없이 상온에 방치하면 회가 맛이 없어진다. 완도 사람이야 그날 오후나 저녁에 회를 먹기에 상관이 없지만, 수도권 사람들은 대개 그 다음 날 저녁 회를 먹게 되니 보관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사무장이 뭐라고 해도 나는 박스에 얼음을 조금씩 넣는다. 나에게 “참 말 안 듣는다”고 한소리 한다. 졸지에 나는 뭘 모르는 고집쟁이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오전 9시 경 쿨러 70%까지 고기가 찼다. 다들 비슷한 조과다. 그때부터 뜨문뜨문 고기가 올라오더니, 11시 경이 되자 입질이 거의 없다. 물이 서버린 것이다. 간조와 만조 사이 물이 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입질이 도통 없다. 점심을 먹고 선장이 1시간 가량을 이동한단다. 어초낚시를 하니 우럭채비로 바꾸라고 한다. 선장은 열기는 충분히 잡았으니 우럭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수동릴로 교체한다. 배는 소안도 옆 어초에 도착한다. 하지만 입질이 없다. 다시 이동. 청산도 앞바다로 간다. 청산도. 이름만 들어도 기분 좋은 섬이다. 몇 년 전 청산도의 진면목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낚시를 했지만 노래미와 학꽁치 몇 마리에 만족했었다. 낮잠도 자고 천천히 즐기며 낚시를 한 기억이 난다. 마음만 비우면 몇 마리 고기에도 즐거우나 배낚시는 생리상 마음을 비울 수가 없다. 갤리선의 노젓는 노예처럼 낚시들을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에서 맛있게 먹어줄 사람들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3m 높이의 어초라는데 정작 3m를 띄우니 입질이 없다. 조금 더 내리려는데 ‘와당탕탕’ 입질이 온다. 재빨리 빼들고 수동릴을 천천히 감는다. 쿡쿡 처박는 대형 우럭 특유의 입질이 온다. 즐기면서 올리니 4짜 우럭 쌍걸이다. 입이 귀에 가서 걸린다.
▲청산도 앞바다 어초에서 올린 4짜 우럭 쌍걸이 |
우측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청산도.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흐렸다. |
▲이날 최종 조과. 우럭, 붉은 쏨뱅이, 열기 등이 보인다. |
▲이게 무엇일까요? 낚시 도중 올라온 정체불명의 생명체. 선장은 불가사리의 일종이라고 했다.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나는 낚시다>저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