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되면서 이미 교권추락의 서막은 올랐었다. 그런데 이젠 학생의 이름 말고 번호를 부르는 것이 학생의 인권 침해라서 '이름 대신 번호로 학생을 부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발의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하도 어이가 없고 믿기지 않아 난생 처음 국회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부르고 싶지도 않은 이름을 검색창에 치고 찾아보았다. 슬프게도 보도된 내용과 같았다. 아뿔사! '그랬으면 좋겠네’는 이제 교육법에도 손을 뻗쳤구나!
이 법안은 이미 2013년 9월 15일에 당시 민주당 홍종학 의원이 학교에서 이름 대신 번호를 사용해 학생을 지칭할 수 없는 법을 내용으로 하는 '초중등 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던 것을 다시 발의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또 등장하였다.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부르던 번호를 부르던 그것은 말 그대로 교사의 재량이다. 그럼에도 번호를 부르면 규제하겠다는 것은 모든 수업의 내용과 절차, 교사와 학생간의 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내용을 감시하고 규제겠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이름 대신 번호를 사용해 학생을 지칭할 수 없는 '법’에 담긴 오류를 생각하며 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님들께 공개적 질문을 드린다.
이젠 학생의 이름 말고 번호를 부르는 것이 학생의 인권 침해라서 '이름 대신 번호로 학생을 부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발의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사진=국회입법예고시스템
첫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OECD 주요 선진국들은 학생을 대상으로 고유 식별(識別) 번호를 부여하지 않거나, 부여하더라도 수업 시간에 이름을 대신해 번호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모든 국가가 그러한가? 그렇게 일반화 할 수 있는가? 설사 서양의 정서상 숫자로 사람을 인지하는 것에 예민하고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해도 그들 역시 많은 사람을 분류하고 업무상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들도 숫자와 문자 등으로 이루어진 ID 번호를 사용한다. 그것은 인권침해가 아닌가? 얼굴을 보면서도 이름대신 숫자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인권침해라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둘째, 과연 번호를 부르는 것은 인권침해인가? 학교에서 학생들의 출석 번호는 여러 용도로 쓰이는 것이지 인권을 침해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과제를 걷을 때, 신속하게 교실 안에서 학생 상황을 파악하고 좀 더 알차게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편리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며, 정해진 수업시간 50분 혹은 40분 동안 분초를 아껴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가 효율적으로 시간을 아끼고 집중력을 높여 밀도 있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수단의 역할도 한다는 것은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교실의 수업장면에 번호를 부르는 교사가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혹은 교무실에서 학생을 마주쳤을 때, 23번 학생아! 이렇게 부른다고 생각하시는가? 사람의 이름 대신 번호가 사용되는 곳은 그 곳이 교실이기 때문이다. 특수한 공간에서 특수한 상황에 이루어지는 일을 다른 잣대로 분류하고 평가하려는 것. 역시 논리적 오류다.
들어는 보셨는지 모르겠다. '선언지 긍정의 오류’라고! 어느 전제의 대상이 A일수도 있고 B일수도 있는데, A라고 해서 B가 아니라고 단정을 짓는 오류를 이른다.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 인권 존중이다.’ 맞다. 그러니 이름이 아닌 번호를 부르는 것은 인권 침해라니! 공부를 좀 하시는 것이 좋겠다.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부르던 번호를 부르던 그것은 말 그대로 교사의 재량이다. 그럼에도 번호를 부르면 규제하겠다는 것은 모든 수업의 내용과 절차, 교사와 학생간의 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내용을 감시하고 규제겠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사진=미디어펜
셋째, 교사는 학생을 침해하고 억압하며 관리감독만 하는 '갑’이고, 번호를 부르는 것이 권력행사인가? 대체 그간 당신들 의원나리들은 어떤 교사만 만나본 것인지 묻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어우러져 학습과 성장과 성숙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계급투쟁의 장인 것처럼 이간질하는 인간들에게 다시 한 번 준엄하게 묻고 싶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숫자 따위’로 이어지면 '침해와 억압의 관계’로 설정하는 것. 이것은 계급투쟁론적 발상이 아닌지.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적게는 1년, 많게는 3년 혹은 6년을 함께 한 울타리에서 서로 부대끼고 사랑하고 울고 웃으며 격려하고 보듬고 때로 엄하게 꾸짖고 훈육의 가르침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신뢰가 싹트는 곳이다. 힘을 가진 자와 억눌린 자의 '갈등’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건만 이간질 좀 그만 하라 충고해드리고 싶다. 교사와 학생관의 관계, 그리고 교실에 대한 오해는 제발 거기까지!
넷째, 교실에서 존중받을 권리는 학생에게만 있는가? 교실은 교사와 학생이 공존하는 곳이고 모든 인간에게는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행복 추구권을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은 교육법보다 상위법이다. 더욱이 상위법이 우선한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적으로 학생이라는 국민에게만 적용하는 하위법이 더 중요하다고 배운 적이 없다. 이런 법 같지도 않은 법이 만들어 질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매우 불행해져버렸다! 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얄팍한 꼼수로 교사를 참담하고 불행하게 만들면서 하위법으로 상위법을 능멸하려 하다니! 법 공부는 하셨는지 또 한 번 묻고 싶다.
다섯째, 교육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인성 교육이 무엇인지 원론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학생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립해가도록 지켜주며 인내하면서 길러주는 것. 그것이 참다운 교육이고 바른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이 아닐까싶다.
그러나 교사가 일방적인 정치 주장을 펼치며 학생들을 선동하여 자신의 사상과 가치를 주입한다면, 성장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성향을 정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자율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데 이야말로 심각한 인권 침해는 아닌가! 이런 교사가 있는 교실이라면 학생의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는 것보다 천 배 만 배는 고약하고 교묘하게 인권침해가 이루어지는 현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교실에서는 선동가가 참교사로 둔갑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말 따위로 자기자식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짓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위험한 곳으로 내모는 행위마저도 교육으로 포장하는 일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의 인권은 지금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교실의 자율과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굳이 있어야 한다면 어떤 법이 더 시급한지 묻고 싶을 뿐이다.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과연 번호를 부르는 것은 인권침해인가? 학교에서 학생들의 출석 번호는 여러 용도로 쓰이는 것이지 인권을 침해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과제를 걷을 때, 신속하게 교실 안에서 학생 상황을 파악하고 좀 더 알차게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편리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목소리 '교육고발'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