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tvN에서 지난 11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안투라지'가 어느덧 7부 능선을 넘어 종영을 향하고 있다. 시청률은 1.0% 안팎. 시력이었다면 안경을 권유받을 숫자다. 시청자들에게도 이 드라마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조진웅, 서강준, 이광수, 박정민, 이동휘 등 배우들의 화려한 이름도 멋쩍어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미국 HBO에서 2004년~2011년 방영(2015년에는 영화도 개봉)된 원작 '안투라지(Entourage)'를 다시 보며 이유를 찾아봤다. 원작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게 분명해 보였다.
이 드라마는 제멋대로지만 주관 있는 무비스타 빈스와 그 '측근들'이 쾌락과 배신으로 가득 찬 할리우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망했다고 생각했을 때 다가오는 기회, 성공을 확신했을 때 찾아오는 실패의 아찔함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문제점1 - 에릭을 놓치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착시에 빠지면 안 되는 사항이 있다. 원작 드라마의 중심인물이 결코 빈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잘생긴 건 빈스지만 이 드라마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인 에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에릭은 사방이 적인 연예계에서 빈스의 '눈'이 되어준다. 험악한 상황들을 대신 겪어주고 빈스를 보호하면서 그 자신도 유능한 매니저로 성장해간다. 그는 스타의 친구라는 이유로 업계에 들어온 '비주류'지만 어떻게든 고군분투 해가며 좋은 영화가 있는 곳으로 빈스를 인도한다.
한국판의 패착은 바로 이 에릭의 역할을 놓쳤다는 데 있다. 한국판 에릭인 호진(박정민)은 그저 영빈(서강준)의 투정과 응석을 받아주는 '월급 받는 친구'로 그려질 뿐이다.
심지어 최근 방송분에서는 영빈이 호진보다 더 적극적으로 새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장면이 나왔다. 이건 원작에선 존재하지 않는 설정이자 한국판이 호진의 캐릭터를 놓치고 있음을 들켜버린 장면이었다. 빈스는 (시즌 5가 되기 전까지는) 시나리오를 검토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판단은 에릭이 한다. 그는 빈스와 '안투라지' 전체를 성공으로 이끈다.
원작의 시즌1에서 빈스는 클럽에서 만난 어느 여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노력 같은 거 하기 싫어서 이 바닥에 들어온 거야."
이토록 철없고 얄미운 사고방식을 가진 빈스가 할리우드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오직 에릭 덕분이다. 한국판에선 이 중요한 역할을 놓쳐버렸고, 호진(박정민)의 역할이 붕 뜨면서 드라마는 중심축을 상실했다.
문제점2 - 아리를 놓치다
'안투라지'에서 친구 4명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가 하나 있다. 처음으로 빈스를 발견하고 그를 스타로 키워낸 에이전트 아리 골드다. 이 역할은 한국판에서 '기획사 사장 김은갑'으로 변환됐고 배역은 조진웅에게 돌아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원작과는 또 다른, 한국적인 뭔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 골드의 매력은 '양면성' 에 있다. 아리는 직원들을 해고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매수나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비서이자 게이인 로이드를 수시로 성희롱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실제로 만났다면 그 자체로 악몽이었을 인물이고 드라마 안에서도 인품에 대한 평판은 최악이다. 하지만 유능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무엇보다 가족과 빈스 앞에서는 한없이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양면성은 그가 가진 모든 악(惡)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그의 편에 서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리 골드를 연기한 배우 제레미 피번은 이 드라마로 에미상을 3번이나 탔다.
'김은갑' 캐릭터의 문제는 양면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착하게 설정돼 버렸다. 그러다 보니 박력을 잃어버렸다. 한국판 '안투라지' 속에는 아리 같은 입체적인 인물이 없다. 쉽게 정에 이끌리고, 유능함마저 다소 의심스러운 '마음 약한 아재'가 있을 뿐이다.
강옥자(최명길)의 음모에 의해 옥&갑 엔터테인먼트에서 방출당한 은갑이 단지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잠시나마 옛 사무실에 들어가 업무를 보는 장면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 장면에선 "옥&갑 엔터테인먼트 방향으론 오줌도 안 싸겠다"는 결기를 보여주며 강 대표에게 똥이라도 배달시켰어야 맞는 거였다.
문제점3 - 시기를 놓치다
물론 이런 비판은 전부 결과론이다. 한국판 '안투라지'에서 아리 골드를 비롯한 다섯 남자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주길 바라는 건 사실 무리다.
미국에서 2015년 개봉한 영화 버전의 '안투라지'는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했다. /영화 'Entourage' 공식 포스터
이들 다섯은 전부 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인물'들이다. 이른바 '혐오성 발언'을 너무 많이, 그것도 고의로 해댄다. 그들의 언행을 그대로 옮겨왔다면 아마 시청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특히 요즘 시대에 이런 캐릭터는 우군보다 안티를 부르기 쉽다. 그걸 증명한 게 미국에서 2015년 개봉한 영화 버전의 '안투라지'다. 이 작품은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했다. 이미 나올 얘기가 다 나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미국 사회 역시 이 드라마가 처음 시작된 2004년에 비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가 많이 활성화 됐다는 게 근본적인 이유 아닐까 싶다.
음담패설, 동성애자 비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라면 '끝판왕'에 해당하는 이 드라마가 지금 시작됐대도 2004년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추측건대 아니었을 것이다. 더욱이 현재 한국에서도 비슷한 담론이 가장 핫한 논쟁주제로 부상하지 않았던가. 민감한 부분들을 가위질 하는 리메이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원작의 특성도 휘발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결과론이지만 이 드라마를 지금 리메이크한다는 자체가 그다지 좋은 판단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시기의 '레전드'로 회자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무기력하게 리메이크된 이 작품을 보는 기분이란 재미없는 농담처럼 그저 씁쓸할 뿐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