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
이케아의 한국 상륙을 두고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가구공룡’인 이케아가 한국 가구시장을 집어삼킬 거라는 주장이 먼저 나왔다. 반면 경쟁력 강화로 한국 가구업계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라는 반론도 있다. 담장을 허물어 세계시장과 경쟁하는 추세다. 이를 감안하면 아무래도 후자가 더 설득력 있다.
한국은 이케아 해외 진출의 43번째 나라이다. 이케아는 이미 중국에 10년 전, 일본에도 7년 전 발을 들였다. 이케아가 언젠가는 한국시장을 겨냥할 거란 예측은 충분히 짐작돼왔다. 올해가 아니더라도 머잖아 닥칠 일이다. 또한 한국은 1인 가구 비율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유럽풍의 강점인 심플하고 부피가 작은 가구가 점점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그럼 이케아를 두려워할 만큼 국내 가구산업은 취약한가. 현실은 ‘경쟁 해볼만하다’는 수준이다. 지난해 여름,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가구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지역의 유명 가구단지, 가구브랜드 아울렛 매장, 온라인쇼핑몰 등을 누볐다.
▲ 세계 최대 가구공룡 스웨덴 이케아의 국내상륙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토종가구업체를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 상륙을 계기로 국내 가구업체들이 품질및 마케팅을 강화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올해말에 입점예정인 이케아 광명점 조감도 |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케아의 강점인 싼 가격, 심플한 디자인을 국내 가구들도 이미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책상과 책장 세트, 드레스룸 구성 가구, 붙박이장 그리고 이와 어울리는 틈새가구 및 소품들은 가격과 디자인 면에서 놀랄 정도다. 한 회사만이 아니다. 한샘, 까사미아, 리바트, 에넥스 등 국내 가구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업체들이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요즘 소비자는 예전처럼 평생 지닐 가구를 원하지 않는다. 이동이 편한 가구, 공간미를 살리도록 자리를 적게 차지하는 가구, 내구성보다 실용성 있는 가구가 뜨고 있다. 심플하면서도 세련미를 갖춘 것이 요즘의 가구트렌드다.
그러니 이런 국내 가구업계의 변화는 해외업체의 국내 진출에 대비한 결과만은 아니다. 가구시장에서 공급자가 수요자의 마음을 읽어 자연스레 방향을 옮긴 것이다. 해외업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한국 가구시장을 잘 분석하고 끊임없이 수요자의 마음을 두들긴 기업만이 국내진출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
실제로 이케아는 아시아시장에서 전략을 수정했다.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DIY식 이케아 가구는 일본에서 쓴 맛을 봤다. 그 후 기존보다 배송-설치-조립 서비스를 강화해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됐다. 이케아는 이번엔 깐깐하기로 소문난 한국 고객을 잡고자 구입부터 배송, 조립까지 책임지는 만반의 서비스를 준비하는 듯하다.
이쯤되면 이케아가 한국시장을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라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자 분주히 애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장에서 경쟁은 시장에 흩어져 있는 수요자의 니즈 정보를 하나씩 취합하고 맞춰나가는 퍼즐과도 같다. 이 퍼즐게임의 부적응자는 제아무리 세계적 공룡기업이라 불린들 소용없다. 영국의 비엔큐 가구업체는 DIY식만 고집하다가 몇 년전 국내에서 손 털고 나갔다.
소비자의 수요가 가구시장의 트렌드를 바꾸고, 이는 다시 다른 산업을 움직이고 고용을 창출한다. 이사할 때 한샘의 붙박이장은 전화 한통으로 분리-이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샘은 여기에 착안해 이사짐센터 업계로 사업확장을 했다. 집안에 한샘가구가 많은 가정이 타깃층이다. 이케아의 국내 진출도 새로운 사업-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이케아는 배송-설치-조립을 대신해주는 대행서비스와 연계한다고 한다. 또한 이케아의 물품을 사서 온라인으로 다시 파는 리셀러 사업도 등장할 것이다.
유통시장의 혁명이 가져다 준 변화도 소비자의 구매패턴과 가구시장의 공급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IT기술이 발달함으로써 온라인-홈 쇼핑과 해외직구, 병행수입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이 만들어졌다. 돈-시간을 절약하려는 소비자와 만난 유통-가구 시장은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즉 한국 가구업계는 IT기술, 유통시장, 세대구성, 수요자의 요구 등 다양한 환경 변화에 맞춰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해외 거대 가구업체의 국내 진출은 그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이케아의 국내진출을 두고 처음에 강력 반발했던 분위기는 이러한 산업의 흐름을 잘못 읽은 탓인 듯하다.
요즘 잘나가는 쇼핑몰은 외식, 영화관, 레저, 카페, 아이놀이터가 함께 있는 복합 문화관이다. 가구점도 예외가 아니다. 가구와 관련된 모든 인테리어 소품까지 원스톱으로 구매하도록 꾸며야 인기를 얻는다. 이케아가 그런 강점으로 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한국도 이미 그러한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 파주 헤이리마을 근처에 자리잡은 까사미아 아울렛이 그러하고, 지난 6일 문을 연 한샘의 플래그샵 목동점은 평형대별 주방-거실-침실-서재-공부방 등 종합 인테리어로 셋팅됐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거대 상점을 꾸민 셈이다. 이런 스타일이 더 이상 이케아만의 장점은 아니다.
이케아의 진출에 겁먹을 이유는 없을 듯하다. 이케아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 일본의 1위 가구기업 닛토리는 이케아 진출 이후 오히려 2배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한샘이나 까사미아도 이케아 전략을 벤치마킹해 현재보다 발전할 가능성이 더 크다. 반대로 이케아도 한국 소비자 마음을 더 잘 읽은 한국 가구업체로부터 배울 것이다. 서로 ‘윈-윈’이다. 소비자에도 ‘윈’이다.
가구시장에 빈틈이 생기는 한 이케아 뿐 아니라 언제든지 경쟁자는 발을 들여놓을 것이다. 수요자의 퍼즐조각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회사가 외국 대기업일 수도 있고 한국 중소기업일 수도 있다. 한국 소비자는 더 깐깐해질 준비, 더 다양한 조건 중에서 선택할 준비만 하면 된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