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
경기에 규칙이 필요한 까닭은 경기를 더욱 활기차고 재미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경제활동에도 규칙(규제)은 필요하다. 운동 경기와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도 개인이든 기업이든 경제주체들의 창의적·생산적 역량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은 이와 달라서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넘쳐나는 규제, 불량규제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잘못된 경기 규칙이 해당 경기를 고사시키듯이 과도한 규제가 한국 경제의 활력을 질식시키고 있다.
규제가 본연의 기능에서 벗어나 자기 증식을 하는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규제의 정치방정식을 돌아보면 덧셈의 법칙만 강하고 일관되게 작용해왔다. 뺄셈의 법칙은 주변부적인 사건에 머물었을 뿐이다. 그 결과 규제총량은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것만 따져도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6%가 넘게 고도성장 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중 경제는 연평균 성장률이 3%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저조했다.
경제 침체의 와중에 규제는 꾸준히 자기 증식을 하며 성장해왔던 셈이다. 규제 환경이 이렇다보니 작년에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조사한 정부규제부담 순위도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48개국 중 95위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나라를 빼면, 한국이 사실상 꼴찌라는 의미이다.
▲ 한국경제의 정부규제 부담수준은 사실상 세계 꼴찌수준이다. 최악의 규제국가로 전락하면서 한국경제가 질식당할 위기에 직면했다. 박근혜대통령이 규제를 '쳐부셔야 할 원수', '죽여야 할 암덩어리'라며 강한 관심을 갖는 것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규제개혁은 박근혜대통령 혼자만으론 안된다. 정부 여야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익집단의 저항에 대해 정부와 국민이 인내심을 갖고 규제혁파에 힘써야 한다. 박대통령이 최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규제가 이미 많은데다 새로운 규제가 언제 어떤 명분으로 어떻게 도입될지 불확실성이 넘치는 나라에서는 그 어떤 기업도 대규모 장기투자를 꺼리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FDI 금액은 2008년 112억 달러(UNCTAD 기준)로 최고점에 이른 이후 매년 100억 달러 내외에서 지지부진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 기업이 외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2008년 202억 달러에서 2012년 330억 달러로 급증하였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외국에 나가 투자하게 되면 그 만큼이라도 외국인 직접투자가 유입되어야 일자리에 누수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터인데 규제를 비롯한 제도 경쟁력의 비교열위로 인해 그렇지 못한 게 작금의 상황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 재도약의 전기를 만들려면 더 늦기 전에 잘못된 규제 시스템과 과도한 규제 내용을 고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집권 2년차를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바람직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대통령은 규제에 대하여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고 까지 비유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치열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규제개혁은 대통령 혼자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행정부 공무원은 물론, 국회의 여야 정치인, 그리고 이익집단에 속해서 규제의 혜택을 보는 국민들까지 자기 양보를 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 설령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개혁 과정에서 이익집단이 저항하고 이로 인해 국민 불편이 생겨도 인내심을 갖고 대통령의 개혁추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규제혁신을 통해 한국경제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