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20일 "통진당은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세력이며,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다면 당연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양교수는 이어 "통진당이 이념적으로 표방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으며, 민주적이지도 않다"면서 "반진보 반민주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양교수는 이날 자유민주연구학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비정상의 정상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세미나에서 '사회주의 혁명세력을 정확히 인식하자'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다음은 양교수의 발표문 전문이다.
I. 머리말
우리나라에는 여러 분야에 비정상적인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정치와 사상 분야에도 비정상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 정치·사상 분야에서의 중요한 비정상적 요소의 하나는 사회주의혁명세력을 진보세력 또는 민주세력으로 인정·대우해준다는 점이다.
사회주의혁명세력을 진보세력·민주세력으로 착각한 탓으로, 사상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의 일부는 그들을 ‘사회상황을 보다 좋게 개선하려는 좋은 사람들’,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착각하여 지지한다. 일부 법집행자들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하려는 그들의 활동을 일반 민주세력의 정치활동과 동일하게 자유를 보장해주려 한다.
사회주의혁명세력을 진보세력·민주세력으로 착각한 탓으로 인해, 심지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면적 파괴를 위해 투쟁했던 그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하여 많은 액수의 금전적 보상을 제공했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인들 중의 일부는 그들을 국민통합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통한논의에 끌어들이려 했다.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사상혼란과 정치혼란을 겪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유경쟁시장 경제체제는 안정되고 효율적으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군사적 안전도 제대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이념으로 표방하고, 진보세력·민주세력임을 자처하고 있는 통진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혁명세력을 진보세력·민주세력으로 인정·대우하는 비정상을 설명하고 그런 비정상을 정상화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다.
통상 통진당은 종북성향과 관련해서만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통진당이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정당일 것이라는 혐의를 가지고 통진당에 관한 논란이 전개된 일은 별로 없다. 통진당이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정당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통진당 당원들의 해설들을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Ⅱ. 진보적 민주주의가 통진당 강령으로 채택된 경위
통진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혁명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통진당의 이념으로 진보적 민주주의가 채택된 경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통진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남한 내 좌익운동권의 다수파인 NL계는 2001년경부터 반미-통일투쟁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민노당을 접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민노당을 접수하고 나면 그 당을 광범한 계급·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통일전선적 정당으로 변신시키기로 작정했다. NL계는 장차 접수할 민노당을 통일전선적 정당으로 변신시키기 위해서는 강령에서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빼고 보다 부드러운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민노당을 접수한 NL계는 민노당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삽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강령으로 내걸 새로운 용어를 1980-90년대에 사용하던 민중민주주의로 하지 않고 진보적 민주주의로 정한 까닭으로는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민중민주주의는 북한에서 말하는 인민민주주의와 같다는 사실이 남한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어서 민중민주주의를 강령으로 내걸면 광범한 반미(혹은 진보)통일전선 구축에 지장이 초래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둘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중(인민)민주주의보다 사회주의 지향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비사회주의세력을 반미통일전선에 흡인하는데 민중민주주의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셋째, 1990년대 초반 이후 남한 운동권이 스스로를 ‘진보세력’으로 자칭해왔고, 남한 사회에서 ‘진보’ 및 ‘진보적’이라는 용어가 관용적 내지 호의적으로 수용되어 온 사실을 이용하려는 책략이다.
NL계는 2003년부터 민노당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로 대체하려고 몇 차례 기도했으나 PD계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했다. 민노당의 분당으로 PD계가 대거 탈당한 후인 2011년 6월 NL계는 강령개정을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 강령으로 내세우는 일에 성공했다.
당시 강령에 삽입된 진보적 민주주의는 1944~47년 기간 중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진보적 민주주의와 동일한 의미의 것이었다. 그러한 점은 진보적 민주주의 채택에 앞장섰던 최규엽(민노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으며, 2012년의 19대 총선에서 서울 금천구의 통진당 후보로 입후보한 인물)이 강령개정안의 제안 설명과 찬성토론에서 행한 다음과 같은 발언에 의해 확인된다.
▲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는 20일 통진당을 진보세력이나 민주세력으로 인정하고 대우한다는 것은 비정상의 극치라고 강조했다. 양교수는 이어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해산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인식과 대응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당원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은 충분히 토론이 안 됐다.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하면서 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개정안에는 인간해방이라는 문구가 있으며 인간해방은 모든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는 것이다.…인간해방에는 공산주의가 들어가 있다.…이 강령에는 결국 공산주의도 담겨있다.…진보적 민주주의가 바로 해방 정국 때 선배들이 주장했던 것이고 반제국주의다.”<『민중언론 참세상』(인터넷판), 2011년 6년 19일자와 『레프트21』(인터넷판) 59호, 2011년 6월 20일자 종합.>
위의 인용문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선배들’이란 다름 아닌 김일성과 박헌영이다.
김일성은 1945년 10월 3일 평양 노농정치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이 나아갈 길은 참다운 민주주의인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입니다.…우리나라에 민권 민주의 허울 좋은 보자기에 감싸인 부르주아공화국을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당장 우리나라에 사회주의제도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당장 우리나라에 소비에트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선의 구체적 현실을 똑똑히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입니다.…우리는 건국사업에서 역사발전 단계에 뒤떨어진 요구를 내세워도 안 되며 또한 그것을 뛰어넘은 요구를 내세워도 안 됩니다”. <김일성,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하여」, 『김일성저작집 1』(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282-283쪽.>
박헌영은 1945년 10월 20일 발표한 「조선민족통일전선 결성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라파에서는 파시즘의 아성이 파괴된 후로 소련군이 들어간 여러 나라, 파란, 유고슬라비아, 핀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공화국이 건설되고 민족의 자기 주권이 수립되고 있으며, 영·미군이 진주되고 있는 몇 나라에서는 아직 민주주의가 안서고 있으나, 물론 이러한 나라의 인민들은 자기 주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진보적 민주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축소도가 희미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금일 조선의 정세라고 보아서 잘못 아닐 것이다. 북부조선과 남부조선과의 형편은 대개 이러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니, 물론 이 차이점은 앞으로 소멸될 것이요, 또한 소멸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미군정이 국제적 약속을 그대로 완수함에서 실현될 것이다. 즉, 조선에 있어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완전히 구축함으로써, 또한 친일파 등용주의를 용감하게 포기함으로써, 국내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감으로써, 남북조선은 비로소 정치적 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박헌영, 『조선인민에게 드림』(범우, 2008), 17-18쪽.>
최규엽의 말에 따르면, 민노당 강령 속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과 박헌영이 말했던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은 것이다. 최규엽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이 채택된 후 당에서 발행된 진보적 민주주의에 관한 해설서에서도 자기 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국제 공산주의 조직인 코민테른의 전략의 일환으로 제시된 진보적 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에 관한 최규엽의 서술은 다음과 같다.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 정당들이 모인 코민테른에서는 ‘반파쇼인민전선’을 전술단위가 아닌 중간단계의 전략적 위치로 자리매김한다.…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는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진보세력의 변혁운동의 당면 전략적 과제를 제국주의로부터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과 인민들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으로 선언한다. 이러한 전략은 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나라들에서 미국과 서구유럽의 자유민주주의를 극복하는 것으로서 ‘진보적 민주주의’로 시도되었다. 우리가 주장하는 21세기 진보민주주의가 당시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을 수는 없으나 자주적인 나라를 세우고, 민중이 주인되는 정치를 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하겠다.” <최규엽,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21세기 진보 민주주의 사회로」,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대안체제로』(민주노동당부설 새세상연구소, 2011), 17쪽>
민노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채택했지만, 막상 민노당과 국참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가 통합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하면서 채택한 ‘과도강령’에서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포함되지 않았다. 통진당은 2012년 5월 ‘과도강령’을 개정하여 정식 강령으로 만들면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 속에 다시 삽입했다. 민노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통진당이 계승한 것이다. 통진당은 분당으로 국참당계와 진보신당계가 탈당한 후인 2013년 6월 정책당대회를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자기 당의 ‘이념과 지향’으로 격상시켰다.
통진당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이념으로 채택하게 된 경위로 보거나, 통진당의 현 당권파가 통합 직전의 민노당 당권파와 동일한 사람들이라는 점으로 볼 때, 통진당이 자기당의 이념이라고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민노당이 강령에 포함시켰던 진보적 민주주의와 동일하다. 민노당 강령 속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최규엽의 해설은 통진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최규엽은 자기들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해방정국의 선배들(김일성, 박헌영 등 공산주의자들)과 코민테른의 구성원들(공산주의자들)이 말했던 진보적 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만으로도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한 통진당은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정당이라고 추정할만 하다. 왜냐하면, 해방정국의 공산주의자나 코민테른의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여건상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실행할 수 없을 때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했기 때문이다.
통진당계통의 사람들은 해방정국에서 공산주의자 아닌 사람들도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했다는 사실을 논거로 제시하며 위와 같은 추론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해방정국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한 사례로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여운형이다. 해방정국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원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비공산주의자로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사례는 이들 두 경우뿐이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1945년 8월 28일 건준선언을 발표했으며, 그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진보적 민주주의에 관해 언급했다. “우리의 당면 임무는 완전한 독립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하여 노력하는 데 있다.…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자유발전의 길을 열기 위한 모든 진보적 투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있고, 국내의 진보적 민주주의적 여러 세력은 통일전선의 결성을 갈망하고 있나니,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의하여 우리의 건국준비위원회는 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 준비위원회는 우리 민족을 진정한 민주주의적 정권에로 재조직하기로 한 새 국가 건설의 준비기관인 동시에 모든 진보적 민주주의적 세력을 집결하기 위하여 각층 각계에 완전히 개방된 통일기관이요 결코 혼잡된 협동기관은 아니다.” 천관우, 『자료로 본 대한민국 건국사』(지식산업사, 2007), 64쪽.
여운형이 위원장으로 있던 건준은 이 선언을 발표한 시점에는 조선공산당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던 조직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위원장 여운형도 당시는 ‘공산당과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이었고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건준 선언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언급한 것은 공산주의자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언급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여운형은 1945년 12월 8일 한 신문에 게재된 「인민당의 신념」이란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8월 15일 이후 건국동맹이 흙을 털고 이러나게 되자 이에 향응하는 각층 각계의 좋은 동지는 날로 달로 부러가 마츰내 진보적 민주주의의 대중정당으로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조선인민당이올시다.…국내의 모든 정당이 그 강령에 민주주의를 내걸지 않은 당이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말로 표현된 민주주의지만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그 내용과 구체적 실현방법에 있어서 의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그 전제로 하는 정치형태를 말함이니 즉 국민의 대다수의 근로층의 경제적 해방을 위하야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정치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몽양여운형선생전집발간위원회 편, 『몽양여운형전집 1』(한울, 1991), 246-247쪽.>
위 인용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그 전제로 하는 정치형태를 말함’이라는 구절을 보면, 여운형이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의 정치형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여운형은 그 시점에서 자기의 입으로 자기를 공산당과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이고, 마르크스주의자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여운형은 앞서 인용한 「인민당의 신념」을 발표하기 전날인 1945년 12월 7일 한 신문에 발표한 「통일전선 낙관」이란 제목의 글에서 “인민당은 그 정치적 이념에 있어서는 공산당과 일치하고 있으나 현 단계에 있어서의 전략상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위의 책, 251쪽.> 여운형은 1946년 2월 13일 미국 신문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귀하의 정치적 견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이다. 나는 사회주의 조선을 믿는다.”라고 답변했다. <이 기자회견 내용은 U.S. Arm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rmed Forces in Korea 2(국내 복사판), 106쪽(Part Ⅱ, Chapter Ⅱ의 14쪽)에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시기의 여운형은 공산주의자와 동일하게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며, 그러한 여운형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은 비공산주의자도 사회주의혁명 추구와 무관하게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다는 통진당계통 사람들의 주장을 밑받침해줄 논거가 되지 못한다.
Ⅲ.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혁명 간의 관계
통진당의 이론가들은 민노당 시절부터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혁명 간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왔다. 먼저,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의 내용으로 채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자.
민노당 사무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통진당의 정책기획실장으로 있는 최기영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사회는 계급문제와 민족문제가 겹쳐서 나타난다. 또한 민족문제가 선차적으로 해결되면서 계급문제가 해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반미자주화 없이는 한반도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도 불가능하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다.”<최기영, 『나의 사랑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10년의 기록』(민주노동당, 2009), 290-291쪽>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과 통일전선적 성격의 정립, 이것이 당이 변혁적 집권으로 가는 길이다. ‘사회주의 정체성론’과 ‘노동계급 중심성론’은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성격과 대중적 성격을 강화하는 데 하등의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다.”<위의 책, 293쪽.>
계급문제와 민족문제가 겹쳐 있는 한국 사회의 성격상 ‘변혁적 집권’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의 진보적 성격과 대중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문구를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규엽은 2011년 6월 민노당 정책당대회에서 ‘사회주의’ 관련 문구를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 문구를 삽입하는 강령개정이 단행될 때 강령개정안 제안 설명과 토론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나도 사회주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사회주의가 이상으로는 유효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사회주의 문구가 있으면 우파가 공격할 것이다.…수권정당이 되려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민중언론 참세상』(인터넷판), 2011년 6년 19일자와 『레프트21』(인터넷판) 59호, 2011년 6월 20일자 종합.>
사회주의는 이상이지만 ‘우파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강령에서 사회주의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혁명 간의 관계에 대한 통진당 당원들의 직접적 설명을 들어보자.
민노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고 통진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있는 박경순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관계에 대해 매우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그에 대한 박경순의 언급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신자유주의의 대안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의 복원의 길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회발전단계를 뛰어넘는 사회주의의 길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길이 있는가?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의 길이 있다.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 철폐와 사회주의적 소유관계 수립을 당면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다.” <박경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대안체제로』(민주노동당부설 새세상연구소, 2011), 115쪽>
“자본주의 제도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민중의 이익을 선차적으로 내세우며, 민중에 복무하는 민주주의 제도가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이러한 제도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이러한 제도가 일시적 과도적으로 존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기간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위의 책, 116쪽>
“사회주의는 평등을 가장 핵심적 가치로 내세우고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절해 실질적 평등세상을 구현하자는 이념이었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 진보적 민중의 희망의 푯대로 되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주객관적 조건에서…사회주의적 평등만을 앞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주의 문제는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는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고 접근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중심적 주요한 모순과 과제는 자본주의이냐 사회주의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분단체제의 현실에서 광범한 대중들이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정서적 이념적 거부감이 상존하고 있는데 사회주의이념을 앞세우는 것은 진보운동의 대중적 지반을 약화시킬 뿐이다.…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하고 사회주의 체제로 나가는 방식으로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것은 아니다. 일단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당면 긴급하게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고 절박하다.”<위의 책, 142-143쪽.>
최기영은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혁명 간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설명한다. 그에 관한 최기영의 언급들은 다음과 같다.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지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당면한 진보적 민주주의 변혁단계를 무시하고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 정치노선을 바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좌편향이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 통일전선적·대중적 성격을 상실하는 좁은 길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만의 계급정당이 아니라 노동계급을 비롯한 광범한 민중을 총망라하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이 되어야 한다.…민주노동당이 계급정당으로 변질되면 변혁적 집권을 바라볼 수 없으며 결국 왜소한 진보라는 이름을 단 군소정당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최기영, 『나의 사랑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10년의 기록』(민주노동당, 2009), 292-293쪽>
“진보적 민주주의 개혁은…자본주의를 정상 운영하지만 ‘주요산업의 국유화’ 등 자본 자체를 소멸시키는 부분적 개혁 과정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의 개조과정은 자본의 소멸이 중심이 아니라…일반 민주주의 개혁에 방향과 초점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생산력이 이미 높은 수준에서 변화를 요구하지만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준비정도가 높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위의 책, 291쪽>
“진보적 민주주의는 역사적 수정주의로서의 사민주의는 배격하지만 복지국가 모델이 가진 일부 장점을 수용한다.…일각에서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념은 우리사회, 변혁의 성격에 비해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는 좌편향이다. 그뿐 아니라 민주적 사회주의론도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대자본과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고 노동계급을 주체가 아닌 사업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우편향이다. 반면에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족의 자주성과 민중 복지의 견지에서 사회의 전 부분에 대한 공공성을 확대 강화하는 변혁적 진보이론이다.”<위의 책, 291-292쪽>
민노당 미국동부지역위원장을 역임했고, 통진당의 해외당원일 것으로 추정되는 재미 한인 한호석은 그의 인터넷 블로그 『변혁과 진보』에 게재한 글들을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혁명 간의 관계를 매우 노골적인 표현으로 설명한다. 그에 관한 한호석의 언급들은 다음과 같다.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개량에 안주하는 비변혁적 사민주의도 아니고,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 사회변혁을 꿈꾸는 좌파적 사회주의도 아니고, 오직 이 땅의 현실에 부합되는 과학적 사회변혁사상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의 정치이념으로 채택한 것은 거대한 정치적 의의를 가진다.…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우경적 정치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실현해가는 긴 노정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규정한 정치이념이다.” < 한호석, 「어떤 성격의 당이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하는가?」, 『변혁과 진보』(50) (2011년 10월 15일).>
“진보적 민주주의는…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행단계의 민주주의다.”<한호석, 「민주주의 본질, 코뮌주의 이상, 사회주의 미래」, 『변혁과 진보』 (59) (2011년 12월 16일)>
“통합진보당에게는 다른 정당이 갖지 못한 설계도가 있다. 진보정치 설계도가 그것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자체가 진보정치 설계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진보정치 설계도…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함으로써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우는 집권과정을 설계한 것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자주적 진보정권이 세워진 이후 더 높은 단계의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을 설계한 설계도는 진보정치 설계도보다 더 복잡해서 앞으로 별도로 연구하고 작성해야 할 것이다.”<한호석, 「설계도를 움켜쥐고 다시 일어서라」, 『변혁과 진보』 (81) (2012년 6월 8일)>
“진보적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변혁과 경제체제의 변혁을 동반하는 두 단계 사회변혁의 발전과정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로 일어서는 저 눈부시게 새롭고 멋진 세상에 당당히 내걸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 이름이다.”<한호석, 「세 가지 강령이 서로 엮어지는 결합방식」, 『변혁과 진보』(98) (2012년 10월 19일)>
위에서 인용·소개한 통진당원들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혁명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변혁(혁명)과 경제체제의 변혁을 동반하는 두 단계 사회변혁 과정의 제1단계 변혁 강령이며, 그 1단계 변혁이 성공하면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둘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우경적 정치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긴 노정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규정하는 정치이념이다.
셋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실현을 목표로 삼되 주객관적 조건이 즉각적인 사회주의실현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회주의실현을 당면 목표로 삼지 않고,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유지하고 부분적으로 폐지하면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체제이다.
넷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존재하는 것이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장기간 존속할 수도 있다.
다섯째,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를 배격한다.
Ⅳ. 결어
통진당이 이념으로 표방한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통진당 당원들의 이상과 같은 해설들에 비추어볼 때, 통진당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한 해설들이 들어 있는 문서들이 당의 공식 문서가 아니라는 점이나, 그러한 해설들을 전개한 사람들이 당의 대표나 고위간부가 아니라는 점들을 근거로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그러한 해설들을 근거로 통진당을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한 반박은 통진당이 그러한 해설을 잘못된 해설이라고 천명하거나 그런 해설의 오류를 비판한 사실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해설을 한 사람들이 그 당의 당원이자 이론·정책 분야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타당성을 상실한다.
만일 그러한 해설들이 통진당의 본심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통진당은 그런 ‘잘못된 해설’들에 대해 비판해야 하고, 그런 해설들을 한 사람들을 제명해야 한다. 그러나 통진당은 그런 ‘잘못된 해설들’을 비판한 일도 없고 그런 해설을 한 사람들을 제명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위에 소개한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통진당 당원들의 해설이 통진당의 본심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그런 해설들을 근거로 통진당을 사회주의혁명 추구자들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준다.
통진당이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 정당이라는 이론적 판단의 타당성이 현실적 및 실천적 자료들(현실적 및 실천적 자료들은 당국의 수사에 의해서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에 의해 보다 분명하게 밑받침된다면, 통진당은 그 당의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 속에 들어 있는 ‘진보’ 및 ‘민주’라는 용어와는 반대로 전혀 진보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는 정당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란 사물이 보다 좋은 상태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20세기 역사는 사회주의 실천이 인간사회에 재난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공산국가)들은 붕괴되었고, 잔존한 사회주의국가들은 그 존립과 경제성장을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를 대폭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물을 보다 좋은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쁜 상태로 변화’시키는 행위이다.
민주주의란 치자와 피치자가 범주적으로 동일한 조건에서 통치의사를 상이한 의견들이 자유 경쟁하는 가운데 다수결로 결정하는 통치형태이다.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러한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이며, 사회주의혁명 후에 초래되는 독재는 더더욱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사회주의혁명과 그 후에 초래되는 독재는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통진당이 이념으로 표방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전혀 진보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것이라는 사실에 더하여, 통진당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보유, 북한 독재 통치권의 3대세습, 북한정권의 인권탄압 등에 대해 무비판 내지 두호적 입장을 취해온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종북 내란 예비음모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가 통진당의 극히 영향력 있는 당원이라는 점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통진당은 非진보와 非민주에 그치지 않고 反진보 反민주의 정당으로 인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한 통진당을 진보세력 혹은 민주세력으로 인정하고 대우한다는 것은 비정상의 극치이다. 그런 비정상은 조속히 정상화되어야 한다.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 통진당을 사회주의혁명 추구 세력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합당하게 대처하는 것이 정상화이다.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해산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그것은 통진당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인식과 대응을 바로잡는 것인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회주의혁명세력을 사회주의혁명세력으로 올바로 인식·대응하는 큰 범위의 정상화의 중요한 부분이 성취된 것을 의미할 것이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