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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 방자 '곽노현키즈'에 지친 교사들에게...

2014-03-23 09:4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나는 샌드백 같다, 학부모도 무섭다“
“교사도 감정노동자다.”
“교사 때리는 학부모… 지난해 敎權침해 상담 394건”
“학생에 얻어맞고 욕설 듣는 교사 4년새 4배로...”

끝도 없다. 교사의 사기(권위란 말이 현장에서 사라진 지는 꽤 오래된듯하다.)가 땅에 떨어진 기사는 넘치고 넘친다. 무너진 교실과 사제 간, 힘들다 못해 참혹한 학교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목소리는 이미 홍수다. 분명 교사들은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터널 속에 있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사를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도는 이야기가 한 두 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교직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시간(방학)이 남아돌고 출퇴근 시간도 '좋은' 철밥통이라고만 생각한다. 방학마다 쉴 수 있으면서 무슨 불만이 많냐고. 하지만 보도 기사대로 날마다 전쟁이 치러지는 교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교사의 노고, 하소연 할 수도 없고 구차하기까지 해 보이는 변명 따위 할 수도 없는 현실은 보지 못한 탓이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결과다. 원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 1월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던 현장을 기억해보자. 예의는 고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망각한 아이들이 점령했던 토론장. 그 토론장의 아이들이 모인 공간이 지금 우리들의 학교 교실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이 아이들만의 탓일까? 이러한 원인은 또 무엇 때문에 빚어진 결과일까.
 

‘곽노현 키즈’ 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이 아이들.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가르치지 않고 권리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의 어쭙잖은 교육 탓에 아이들은 즉각적, 말초적으로 반응하게 되었고 무개념으로 키워졌다. 스스로도 ‘멘붕’을 입에 달고 사는 이 아이들에게 ‘멘탈’이 실종된 지는 꽤나 오래된 듯하다. 야박하고 냉정한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무례하고 오만한 것을 자신의 권리를 찾는 똑똑함이라고 잘못배운 아이들. 물론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만의 독창적 창조물일 리가 없다. 몰지각한 부모들이 가세한 합작품일테고 그 부모에 그 아이들이 교실 안의 교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가르침을 거부하며, 인내를 배우지 않고, 감사를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누구 한 사람이 선두에서 ‘헛 짓’을 하면 그 선택의 잘잘못을 따져볼 새도 없이 멋져 ‘보이는’ 대로 우르륵 따라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 참담한 토론회장의 기가 막힌 아이들 기사를 보며, 아무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 결국은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아프리카의 영양 스프링벅을 떠올린 것은 나만의 지난친 생각이었을까. 스프링벅은 죽음이 기다리는 벼랑이 있어도 선두만 보고 냅다 질주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영양떼가 집단으로 추락해 몰살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탓이다. 과연 우리의 아이들이 ‘멋’에 취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질주하는 중은 아닐까. 이것은 또한 원인일까 결과일까.
 

또한 교사들을 믿어주는 신뢰와 자율, 자유는 외면한 채 학교 안에서 빚어지는 온갖 난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땜빵식’ 해결을 위한 온갖 간섭과 규제를 쏟아놓는 정부가 있다. 이러한 간섭및 규제들은 언제까지 현실과 엇박자로 나가려는지 알 수가 없다. 문서함을 열기가 겁날 정도로 쏟아지는 공문들은 교사를 위해 공문이 있는 것인지, 공문을 위해 교사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 착각이 들 지경으로 교사들을 몰아가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니 명령이라도 해서 움직이게 만들자는 듯, 폭풍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보고하라는 명령, 그 명령대로 했는지 보자고 덧붙여지는 또 다른 명령. 명령을 위한 법규, 안, 방침. 그것도 모자란 최종보고. 끝도 없이 이어진다. 보고하다 볼 일 다 본다. 미덥지 못한 탓일테다. 피부로 느껴지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고. 물론 교육이 언제나 측량 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고, 일정부분 보이지 않는 암묵적 영역이 때로 더 큰 의미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 교사들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 개인의 경험을 잠시 소개하자면 거의 20여년의 방학동안 손 놓고 놀기만 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5년차 이내의 초보교사 시절 이후로는 늘 연수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중학생을 가르칠 땐 콘텐츠보다 전달방법에 더 골몰해야했으므로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을 위해 오쏘웨어는 말할 것도 없고 패스2000 등 교육공학 쪽으로 배우러 쫒아 다녔다. 홈페이지를 직접 제작하기 위해 php, html을 배우고, 그래픽을 위해 포토샵, 페인트샵은 물론 플래쉬도 배웠다. 내 구미에 맞게 수업도구를 개발하고 만들기 위해서였다. 물론 중학생은 교수학습 방법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도 대단히 중요했으므로 학급경영과 인성교육 쪽으로도 고민해야했다.
 

고등학교로 옮겨와선 콘텐츠가 '승부처'였다. 경제, 논술, NIE…연수, 또 연수. 그러나 교직경력이 쌓여갈수록 아이들을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기르기 위해 바람직한 가치를 일깨우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고민이 함께 깊어만 갔다. 그 무렵 내 스스로 ‘자유’라는 가치를 알아갔고 그 때문에 자유주의, 시장경제 공부를 위한 '배움 시즌2'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들은 교사인 내게도 절실한 것이니 게으를 수 없었다. 배우고 익힌 것을 다른 동료교사들에게 전달할 기회도 늘어갔다. 물론 강의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상담공부도 병행하는 중이다. 틈틈이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아이들의 '코드'인 힙합을 배웠다든지, 아이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담기위해 사진도 찍고 전자앨범을 만들어온 작업은 별도로 치더라도 교사로서 내가 할 일, 배울 일은 끊임없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들은 아니었지만 몸부림치며 애쓴 결과들이 시나브로 쌓여갔고 남들에게 보여지기도 했다. 열심히 학생들과 소통하고 아이들 앞에 서는 힘겨운 노력은 멈춘 적 없었고 물론 언제나 진행형이다. 당연히 공문과 지시에 부응해온 일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쏟아지는 교육부, 교육청의 숨막히는 간섭. 이것은 또한 원인일까 결과일까.
 

목불인견의 학생들이 교사를 절벽으로 내몬 원인이었는지 혹은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 탓에 만들어진 결과였는지, 허망하게 무너진 우리들의 모습은 꺾인 사기를 핑계로 복지부동에 기대려 한 우리의 나약함의 결과인지 교육청의 불필요한 간섭을 자초한 원인이었는지. 원인이 결과이고, 결과가 원인인 매우 복잡한 총체적 난국이다.
 

인권에 눈뜨게 하고 똑똑하게 기르겠다면서 가정과 합작으로 우리 아이들을 ‘멘탈붕괴’로 길러낸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 자칫 무책임하고 게을러 보이는 교사들에게 독려라는 이름으로 끝도 없이 규제하고 간섭하려는 당국. 신뢰를 잃은 채 꺽인 사기로 의욕이 모두 휘발된 교사들. 그 틈바구니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개념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절벽으로 치닫는 아이들. 복잡하게 얽힌 학교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단단히 얽힌 ‘고르디우스 매듭’같다. 갈수록 꼬여가는 학교 현장. 어쩜 지금이야말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과감히 끊어내야 할 때가 아닐런지. 스프링벅의 추락을 더는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외람되지만 매듭을 끊어내고 새로 써가는 ‘교육의 장’이야기는 우리교사들이 먼저 환골탈태하는 노력에서 출발하면 어떨까한다. 세상은 이미 변했고 ‘옛날 아이들’을 추억하며 교실에 들어갈 수는 없다. 스마트한 아이들에게 스마트한 교사가 되려면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무너져가는 학교에서 희망을 길어 올릴 힘은 우리 스스로가 길어 올려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힘과 경쟁력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리라. 학교의 희망, 교단의 희망을 국가가, 교육부가, 사회가 만들어 주리라 기대는 것은 비겁하기조차 하다.

희망을 꿈꾸며 단단하게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교사들이 모일 때, 어쭙잖은 집단의 힘에나 기대어 정치논리로 교단과 아이들의 여린 생각을 오염시키는 집단들로부터도 우리 사랑스런 제자들을 지켜낼 수 있지않을까.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은 깊다. 지금 우리 교사들이 지나는 터널의 어둠이 깊음은 곧 벗어날 터널의 출구가 가까웠다는 신호일 것이다. 곧 밝아올 새벽이 멀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매듭을 자르고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자. 교사가 간절히 갈고 닦을수록, 부지런히 배우고 익힐수록 내 아이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말자. 아직은 3월. 새벽 공기가 차가워도 바람결 속에 봄이 묻어온다. 봄이 멀지않았다.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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