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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의 유럽 톡톡]-막대 초콜릿 하나에 무너진 스웨덴 정치 권력

2017-03-21 10:0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이석원 언론인

"권력이란 마약과도 같아서 일단 그 속에 들어가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이런 말을 했었나보다. 권력의 속성을 얘기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권력을 쥐고 있거나 권력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 그 권력을 가벼이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조 최고의 정승이면서 청백리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황희도 "권력이란 쥐기도 쉽지 않지만 놓기는 더 쉽지 않다"고 얘기했으니 더 말해 뭐할까?

그런데 그렇지 않은 얘기도 있다. 스웨덴의 얘기다.

입헌군주국인 스웨덴은 1973년 왕위에 오른 칼 구스타브 16세 국왕이 있지만 실제 정치는 총리가 주도한다.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국왕을 대신한 총리는 스웨덴 정치 권력의 꼭짓점이다. 1995년 스웨덴의 총리인 잉바르 칼손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1986년부터 1991년, 그리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스웨덴 정치를 이끌었던 권력의 핵이었다.

그런 그가 물러나겠다고 하자 당시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에서는 그의 뒤를 이을 총리 후보를 뽑아야 했다. 당내 권력 구도나 내각의 공헌도, 그리고 국민들의 인기 등을 감안했을 때 대략 5명의 후보가 추려졌다.

특권이 주어지지 않은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권력이라기 보다 '정치'라는 분야의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사진은 스웨덴 국회의사당 전경.


굳이 순서를 둔다면 당시 정무장관이던 얀 뉘그렌이 가장 유력했고, 그 뒤를 부총리 마가레타 빈베리, 문화부 장관 마르고트 발스트룀, 사회부 장관 잉엘라 탈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무부 장관인 요란 페르손이 이었다.

그런데 사민당도 그렇지만 스웨덴 의회가 당혹해하는 일이 생겼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뉘그렌이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 스벤스카 더그블라데트와 인터뷰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아빠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정치를 할 때가 아니라 딸과 함께 있어야 할 때라며 총리직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는 이후 정계에서 잠시 모습을 감추고 아내를 대신해 딸의 육아에 몰두했다.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은 다음 타자인 빈베리에게 갔다. 여성 부총리였던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은 부총리까지였다"며 총리 후보로 거론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미모로 특히 남성 유권자들의 인기가 높았더 발스트룀도 자신의 총리를 맡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며 총리 후보를 사양했고, 또 다른 여성 정치인인 탈렌은 "정치에 입문해 목표했던 바를 다 이뤘다.

총리직은 또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이 하는 게 맞다"고 고사했다. 결국 거론된 다섯 명의 후보 중 5순위였던 요란 페르손이 잉바르 칼손의 뒤를 이어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인 스웨덴을 이끄는 총리가 된 것이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대표적인 3D 직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 번 국회의원을 한 사람이 다음 총선에서 또 하려는 일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공천을 통해 '강제'로 국회의원의 교체비율을 올리지만, 스웨덴은 자발적인 교체 비율이 60%에 이른다. 스웨덴 최대 정당인 사민당을 비롯해 보수당, 자유당, 중앙당, 좌파당 등은 매 총선 때마다 국회의원 후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참고로 스웨덴은 지역 선거가 없는 정당명부제다.)

권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 권력의 실행 행위인 정치는 대체로 그 사회가 보유한 가장 강력하고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선거는 세상 모든 시험의 최고봉이다. 절대 평가는 철저히 배제된 상대 평가의 절정이다.

그런 선거를 통해 선택받은 한 사람은, 그래서 그 권력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죽자 사자 그 권력을 품에 안는 것이고, 때로는 그게 지나쳐서 추한 모습까지 연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유지된다면 그 어떤 치욕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흔한 권력의 속성이다.

그럼 왜 스웨덴의 정치인들은 그런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나중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우선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 권력이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에 국한되는 권력이고, 또 결정적으로 그다지 '폼'이 안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회의 본회의장. 스웨덴은 총 349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국회의원으로 4년을 재임하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법안을 만들고 또 정책을 입안하지만, 그게 잘 실현돼서 국민 생활에 좋은 일이 생겨도 국민들은 "자기가 할 일을 했으니까" 정도로 소소한 박수를 쳐주는데 그친다. 물론 잘못된 정책이나 법안을 만들어서 비난을 받는 경우는 있지만.

앞서 언급한 잉바르 칼손 총리 후임 얘기 때 언급됐던 마가레타 빈베리 부총리 전임 부총리로 모나 살린이라는 여성 부총리가 있었다. 그 또한 잉바르 칼손의 후계자로 손꼽히던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잉바르 칼손이 사임을 선언했을 때 이 사람은 왜 총리 후보에 없었을까?

그는 그 논의 전에 부총리에서 '잘렸다'. 이유는 업무용 신용카드로 토블론이라는 초콜릿을 산 게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수많은 법안과 정책 입안으로 명망을 높이고 권력의 정점 턱밑에까지 갔지만 막대 초콜릿이 그를 국민들로부터 냉정하게 버려지게 만든 것이다.

총리 목전에 가 있던 부총리도 이럴진대, 하물며 그저 국회의원 정도야 더 말해 무얼 할까? 그러니 국회의원이라는 권력도, 또 총리라는 절대 권력도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그저 삶의 한 모습일 뿐 특별하지 않은 셈이다.

권력욕이 없다는 것은 순수할 수는 있어도 책임 의식도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평소에는 근사한 정치인처럼, 사리사욕이 없는 청백리처럼 보일 수 있는 권력욕 없는 정치인이 정치 현실 속에서는 무책임이나 무능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지나친 것이 지금 우리 정치 현실이다. '나 아니면 안돼'는 이미 욕심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의 본질이 돼 있다.

그러기에 스웨덴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할 일도 아니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 우리의 정치 권력 속성 속에 맛있는 버터처럼 조금 씩 녹여 넣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맛있는 크로와상 하나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석원 언론인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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