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미국 정부가 1988년 9월 서울 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기 위한 '시거 구상'을 1986년 11월 제안하고 적극 추진했으나, 1987년 11월 북한이 대한항공(KAL) 여객기를 폭파시키는 테러 사건을 저질러 결국 1988년 1월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개최된 평창 동계올림픽과 같이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외교적 노력이 북한의 테러 도발로 수포로 돌아간 것이 30일 외교부가 공개한 당시 외교문서를 통해 알려졌다.
다만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정부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시거 구상'에 적극적이었고 한국 정부는 소극적으로 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시거 구상'의 시작은 1986년 11월7일 방한해 당시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난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다.
시거 차관보는 해당 제안에 대해 "88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초조한 나머지 무력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을 줄이고 북한을 남북대화의 장으로 유도해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4일 뒤인 11월11일 최 장관이 주미대사에게 보낸 전문에 따르면, '시거 구상'은 북한이 남북대화 재개로 화답하면 인도적 교역 등 추가조치를 고려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당시 외교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의 북한 관리와의 인사 교환을 허용'하는 것으로 완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87년 2월 모든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고, 3월 당시 중공(중국)을 통해 북한에도 이를 전했다.
북한은 이에 1987년 3월19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우리는 미국 측의 이런 조치를 긍정적인 것으로 주목한다"며 "우리는 장소와 형식, 급수의 구애됨 없이 미측 공식인사들과 접촉해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화답다.
외무부가 작성한 '시거구상 북한반응 비교' 문건에 따르면, 북한은 대변인 성명을 내고 나흘 뒤인 3월23일 중공을 통해 북미 2자회담 혹은 남북미 3자회담 희망, 5월중 북미 외교당국자 회담 개최,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를 미국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남북한 당사자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방안'이라며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도록 했고, 미국도 이에 발맞추어 북측의 제안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중공을 통해 전했다.
또한 한국 정부는 북미 직접교섭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시거 구상'에 따라 우리측 우방국들이 북한과 접촉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데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한국보다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원하는 북한 입장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의 긴장 완화 계기가 마련되지는 못했고, 이후 북한이 1987년 11월29일 KAL 858기 폭파 테러를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1988년 1월 '시거 구상'을 공식 철회했다.
미국 정부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기 위한 '시거 구상'을 추진했던 것으로 30일 알려졌다./자료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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