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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한겨례 사는 법, 라이프 글로벌, 게임, VOD 소셜을 전면에

2014-06-02 09:4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언제까지 청춘의 고뇌는 당연하며 해결책은 열정이라는 무료한 레퍼토리를 반복할 것인지...”
미디어를 향한 질타다. 너희들은 왜 신문 하나 매일 볼 줄도 모르냐는 다그침에 튕겨 나온 외침이다. 취업이며 성공이며 멋진 결혼, 가정은 본래 무한 경쟁이니 그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는 타박에 대한 저항이다. 징징대지 말고 현실에 순응해 잘 맞춰 살라는 모진 충고에 부릅뜬 쌍심지들이다.
 

이렇게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청춘들 마음을 신문 미디어 평가 과업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선거를 치르지만 기호 1번이다 2번이다, 여다 야다 나누는 표심마저도 가늠하지 못할 흔들리는 기둥, 흐느끼는 대한민국 수호신이 있다. 이들 20대 청년들이 억눌러 왔던 민심에 귀 기울여보자.
 

성난 20대들은 미디어 전문성부터 꼬집었다. “대중문화 지면에서 세월호 사건을 녹인 것은 좋았으나 그에 비해 콘텐츠 질이 낮아 불만족”이라고 했다. 보도하는 사실 나열이 아니라 사람들 의견이나 전문가 해석이 들어가야 한다는 독자 생각이기도 하다. 기사 작성 방식도 기자의 사적 취재기 같아 보여 정보습득으로서 신문 기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지면 안에 너무 다양한 것을 넣으려다보니까 골라보는 재미는 있으나 전문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비슷한 대답도 평가 대상으로 삼은 일간지 명치를 내리쳤다. 기자가 직접 맡아 하는 심층 분석이나 전문가 의견 활용이 죄다 시원찮다는 평가다. 진짜 전문가도 아니면서 기자들이나 선배, 선생, 리더나 기성세대들은 더 이상 개혁이자 개조, 일자리나 미래를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일침으로 따갑게 와 꽂혔다.
 

타는 갑갑함으로 20대들은 전문성에 이어 기본기를 말한다. 신문 기사에 들어간 인용문 사용이 괴이하다고 발견한다. 누구 발언인지 화자를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부분이 몇 차례 반복되어 글을 이해하기 위해 2번을 읽어야 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기사 제목하고 다르지 않는 통일성 있는 내용을 다루어 줘야 할 것이라는 건의도 여럿 등장했다.

지면 전체 구조에서 편중이 심해 사실기사에는 사실나열만이 의견기사에는 의견만이 들어 있어 어색했다고도 한다. 2차적인 의미 생산을 하기보다 단순한 정보제공에 그치고 있어 독자로서는 충족되지 않는 허전함에 몸을 떤다는 반응이다. 문장 제대로 쓰고 뉴스에 더해 정보와 의미라는 가치도 부가하는 기본조차 무너뜨리는 무능하고 무심한 이들이 무슨 엘리트 행세를 하려 드느냐는 빈축인 셈이다.
 

미디어 이용자라는 존재나 공익정신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사적 유희, 개인감정 방출도 딱 걸렸다. 너무 개인적인 생각이 두드러진 기사가 많았다는 비아냥거림이다. 한쪽 의견만 써낸 느낌이 강하고 독자 입장에서 기대하는 여러 측면 의견이나 생각들은 꼬리 잘린 듯 정작 톱기사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는 불만이다. 영화나 드라마 비평에서 번득이는 사감, 사심은 물론이고 인터뷰 기사에서도 화제성이나 객관적 뉴스 가치에 역주행하는 개인 취향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다는 아픈 지적이다.
 

관피아를 능가할만한 탐욕적 상업주의도 극단적인 수준이라며 까발려졌다. 가뜩이나 대중문화의 경우 바둑이나 순수 문학, 미술 등과 마구 섞어 지면이 귀한 상태인데 절반씩이나 차지하는 광고 색감이 너무 강해 기사 읽기를 방해했다는 직언도 나왔다. 문화를 다루는 지면 광고에 문화 관련 광고를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무구 한 평도 있었고. 아예 기사에서 돌출하는 자사 홍보, 친해 보이는 특정 인물과 기관 기업 띄우기를 접한 경우 응답은 송충이 본 듯 했을 정도다.
 

미디어 자신도 모르게 씩 드러내 보이는 올드보이 누런 이빨도 참 대책 없다. 오디션 현장을 취재한 기사에서 “경남 창원 같은 도시까지...”라고 활자화한 부분이 어느 맑은 영혼을 다치게 했다. 지방을 낮춰 얘기하는 듯 한 뉘앙스를 받게 되어 불쾌했다는 독자 고객의 반응이다.

참을 수 없는 미디어의 독선 또는 가벼움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기사 한 가운데 ‘.. 인터넷 용어로 이른바 ’선 병맛 후 중독‘......’ 이라고 나온 예가 어느 20대 청춘 하나를 후딱 앵그리 영(Angry Young)으로 돌려 세웠다. 인터넷은 그래도 되지만 신문은 달라야 한다는 믿음이 무너진 사태였다. 인터넷, 모바일에서 뜨는 신조어라도 클래식 언론이라면 최소한 문맥에서 튀지 않게 풀어써 알아듣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믿음이 소중했던 학생 아이들이다.
 

이렇게 뉴스 기사를 체크해보는 미디어 평가 과업 하나에서 반사되어 분출해 나온 우리 아이들 20대 청춘들 속마음은 솔직하였다. 지금 미디어가 젊은 층들이 읽기엔 그다지 흥미롭지 않고 진부하다는 얘기다. 기성세대나 기득권이 본체로서 누리는 특권을 죄다 거머쥐면서 우리 청년들은 찌질하고 쓸모없는 잉여로 찍어 누르지 말라는 저항이기도 했다.
 

주장대로 우리 미디어들이 청년의 고난을 은근히 부추기고 경직된 70~80, 386세대 낭만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올드 미디어들부터 속히 대중문화 광장 로열석 점거한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신문이라면 뉴스 편집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가지 말고 새 틀로 바꿔야 한다. 라이프, 글로벌, 게임, VOD (video on demand : 주문형 동영상서비스), 소셜 등이 대안이 될 만하다. 디지털 원주민인 90년대 생들에게는 심지어 네이버 뉴스가 하는 속보 생활/문화 웹툰 IT/과학 연예 포토 TV 같은 분류도 약간 짜증나는 구태일 수 있다.
 

한국의 신문, 방송, 네이버 다음도 잘 헤아려주지 않는 이들 90년대 이후 출생 청년층은 정말 수식이 필요 없는 이 땅의 주인공들이다. 그럼에도 고령화에 밀리고 세대 권력을 쥔 기성 선배들에게는 경쟁자로 오인 받아 볼품없는 잉여로 취급받아 왔다. 잉여라면 배려되고 응원 받는 멘티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경쟁자 또는 적이라 뒤집어씌우는 잉여라는 껍질을 미디어가 맨 먼저 깨트려야 옳다.

40~50대가 20~30대와 더불어 멘토와 멘티로 결합할 수 있도록 미디어가 기획하고 캠페인을 펼쳐야 할 때다. 그래야 집 떠난 미디어 가출 청년층, 그네들 싱싱한 메아리를 담을 수 있다. 그냥 이대로 20~30대를 다가갈 수 없는 차세대 독자층쯤으로 여기는 현실에서는 세대 공감도 독자 확충도 사회 통합도 미디어 기업 회생도 모두 공염불이 되고 만다.
 

미디어 평가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대 청년이 그 위를 우러러보는 윗사랑은 없다. 편집자, 일선 기자, 전문가 그룹들이 손 내미는 내리사랑만이 가능할 뿐이다. 앵그리 영, 20대한국 청년들이 미디어를 보면서 신랄하게 지적한 대로 뉴스로 분석력, 판단력까지 싣도록 전문성부터 어서 끌어올려야 한다. 돈 벌이 광고, 홍보나 세태 꽁무니나 좇는 경박함도 씻어내 자꾸만 맑고 순수한 영혼들을 제작에 끌어들여야 한다.

그렇게 딱딱한 삼성그룹도 창조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위해 <영삼성>을 만들어 글로벌 가상세계 환경에서 청년들과 신나게 뛰고 있지 않은가. 우리 뉴스 산업도 저마다 개성 넘치는 <영미디어>로 탈바꿈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잉여 따위라고 무시했다가 그 잉여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딱한 노령 잉여매체로 속절없이 주저앉지 말고.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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