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그루밍 갱(grooming gang)"이 만행을 저질러왔다. 그루밍 갱은 일종의 성매매 조직폭력단인데 보통 성매매 조직보다 사악하다. 그루밍 갱 조직원은 십대 소녀를 일단 여자 친구로 사귀어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그는 소녀의 이름도 바꾸고 다른 사람들과 소녀의 관계를 단절시켜 '자발적인 피해자(willing victim)'로 만든 다음 성매매를 시켜 돈을 벌어들인다.
가해자의 90퍼센트 이상이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남성(주로 18세에서 25세)이고, 피해자의 90퍼센트 이상이 백인 십대 소녀다(주로 13세에서 15세). 그것도 집안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거나 부모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양육권을 나라에 빼앗겨 아동보호소나 고아원에 거주하는 어려운 가정 출신으로 정붙일 곳이 없어 방황하는 십대 소녀들이다.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이다.
인구 25만의 도시 로더럼(Rotherham, 백인 92%,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3%) 내의 한 지역(인구 8만6천)에서만 피해자가 1400명이 나왔다. 로더럼 전체로 볼 때, 또 무슬림 인구비율이 훨씬 높은 영국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로더럼 시 전체에서 피해자가 1400명이라고 쳐도 전국적으로 피해자가 적게는 30만 명에서 많게는 50만 명에 이른다.
피해자 한 명이 여러 명의 '고객'을 상대한다고 보면 이는 극소수 무슬림이 관여한 범죄라고 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직접 범행을 한 가해자뿐만 아니라 소녀들을 실어 나르면서 가해자를 간접적으로 돕거나 협조한 택시회사, 성매매로 벌어들인 돈세탁 담당자, 이들의 행동을 묵인한 무슬림 지역사회까지 고려하면 이 사태에서 자유로운 무슬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린 이교도에 대한 경멸과 여성에 대한 비하가 이러한 만행을 가능케 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아주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테러집단 ISIS가 비무슬림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는 관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가해자들은 쿠란에 그런 가르침이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내에서 이런 문제와 관련해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분노해야할 여성단체들/페미니스트들은 침묵했다.
수십 년 동안 경찰, 사회복지사, 해당지역 정치인, 언론인들도 모두 쉬쉬해왔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소리 듣는 게 무서워서다. 무슬림은 특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지 인종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무슬림이 집단으로 난동을 피우는 게 두려워서 몸을 사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사회적 계급이 중요한 영국에서 대부분의 피해자가 정치적 권력이 없는 노동자 계층 가정의 자녀라는 점도 이 사태를 덮는 데 한 몫 했다.
2013년 런던의 중앙 형사 재판소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도 있었다. 약물로 정신을 잃고 강간당한 소녀들이 가까스로 탈출해 택시를 타고 자기가 사는 아동보호소로 갔다. 그런데 아동보호소 직원이 택시비를 내지 않겠다고 하자 택시운전사가 그 소녀를 도로 그녀가 탈출한 곳으로 데려갔고 그 소녀는 거기서 또 강간을 당했다.
최근에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제발 날 보내줘요(Please Let Me Go)>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케이틀린 스펜서(Caitlin Spencer·가명)라는 여성은 그루밍 갱 밑에서 열네 살 때부터 15년에 걸쳐 수천 명에게 강간을 당했다. 일곱 번 낙태하고, 두 번 유산하고 출산도 두 번 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금까지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스펜서가 처음 경찰에 신고했을 때 경찰은 스펜서에게 보호받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했고 그 후로 자포자기하고 더 이상 신고하지 않았다. 경찰은 스펜서의 어머니에게 딸은 매춘부이고 그냥 내버려두면 제풀에 지쳐 돌아온다고 말했다.
영국 주류 언론은 하나 같이 범죄자들을 "아시아인(Asian)"이라고 지칭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고 결과적으로 사건의 수습을 방해했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 정서가 생길까봐 국민을 오도한 것이다. 준법시민인 시크교도, 힌두교도,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등 아시아인들을 강간범 집단과 싸잡아 하나로 엮어버렸다. 정치인들은 그루밍 갱 범죄가 "아시아 문화"이며 이슬람이나 무슬림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비판은 허락되지 않는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일부국가를 제외한 유럽(Europe) 전체가 서구문명과 공존 불가능한 이슬람과 로맨스에 빠져 유라비아(Eurabia)로 변해가고 있다.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대상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유럽을 휩쓸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그루밍 갱의 만행을 알리는 데 앞장서온 인물이 있다. 바로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이다. 그가 결성한 영국방어연맹(English Defense League, EDL)은 그루밍 갱의 만행을 영국 전역에 널리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조직의 성격이 변질되면서 영국방어연맹을 탈퇴한 로빈슨은 캐나다 대안언론 <레블 미디어(The Rebel Media)>의 영국현지 취재기자로 일해 왔다.
2017년 5월 10일, 16세 백인소녀를 집단 강간한 무슬림 네 명의 재판이 열리는 캔터베리 법원 밖에서 취재하던 로빈슨은 피고의 신변보호라는 명분으로 경찰에게 저지당했다. 그런데 이틀 후 경찰이 새벽 4시에 로빈슨의 자택에 들이닥쳐 부인과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빈슨을 체포해 끌고 나갔다. 새벽에 기습으로 들이닥쳐 민간인을 체포하는 수법은 독일 나치나 소련 스탈린 같은 전체주의 정권이 써먹은 수법이다. 법원 밖에서 취재하던 로빈슨은 법정모독죄라는 황당한 죄목으로 기소되었고 시민들이 모금한 2만 파운드로 변호사를 선임했고 징역 3월 집행유예 18월 선고를 받고 가까스로 풀려나왔다.
2018년 5월 25일 그루밍 갱 재판이 열리는 또 다른 법원 바깥에서 페이스 북으로 실시간 방송을 하던 토미 로빈슨을 경찰이 체포했다. 죄목은 치안 방해였다. 경찰은 그를 판사 앞으로 끌고 갔고, 변호인도 입회하지 않은 채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그리고 재판부는 집행유예 조건을 위반했다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죄목을 치안방해에서 법정모독죄로 바꿔 로빈슨에게 징역 13월형을 선고한 다음 곧바로 헐(Hull) 교도소에 수감했다. 로빈슨의 신변에 위해를 가할 무슬림이 득실거리는 교도소다.
설상가상으로 토미 로빈슨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는 영국 언론매체에게 그의 사건에 대해 보도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고 언론은 이에 고분고분 따랐다. 이미 올린 기사도 모두 내렸다. 그나마 올린 기사도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민간인을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즉결 심판해 교도소에 처넣은 사법당국의 만행을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모두 로빈슨을 "극우"라고 매도하고 과거에 그가 행한 사소한 잘못을 들춰내 인격살인하고 당해도 싸다는 기사들 천지였다. 이게 모두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다.
로빈슨은 이미 과거에 비슷한 이유로 수감되었을 때 무슬림 수감자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적이 있다. 최근 유튜브는 지난 3월 로빈슨이 업로드 한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I won’t be around much longer)"라는 제목의 2분 남짓한 길이의 동영상을 삭제했다. 이 동영상에서 로빈슨은 그루밍 갱에 대해 확인된 사실을 트윗 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트위터에서 퇴출당했고 자신의 입을 막으려는 세력들이 점점 자기를 옥죄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빈슨은 최근 무슬림 인구가 더 많은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이미 무슬림 수감자들이 감방 철창문을 흔들면서 밤새 로빈슨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고 로빈슨의 목숨에 현상금도 걸렸다고 한다.
로빈슨이 체포된 일련의 과정을 보면 권력의 상층부에서부터 실무진에 이르기까지 일사분란하게 각본을 짠 흔적이 역력하다. 로빈슨을 심판할 법정이 이미 마련되고 판사가 대기하고 있었고 그의 이름으로 교도소에 자리도 예약되어 있었다. 이는 전체주의 국가나 하는 짓이다. 이렇게 마치 사전에 각본이라도 짠 듯이 일사천리로 구속이 진행된 것은 권력의 정점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정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영국정부는 무슬림의 만행에 대해 비판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로빈슨을 본보기로 삼아 국민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로 간주되는 무슬림은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사법당국은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 한 이맘(Imam)은 11살 여아를 강간하고도 여섯 자녀를 부양해야하고 신장병이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무슬림 강간범들은 철저하게 공정한 재판을 누린다.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와 변호 준비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재판이 열리지 않는 동안에는 보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간다.
그루밍 갱 재판이 열릴 때면 가해자의 가족친지와 친구들이 법원 밖에서 법정으로 들어가는 피해자와 그 가족과 지지자들을 협박하고 위협한다. 검찰 측 증인은 법원 안에서 화장실에 갈 때도 경찰의 경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증인을 협박하는 등 불법을 저지르는 무슬림들의 만행은 보도되지도 않고 처벌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 사법당국은 무슬림 그루밍 갱을 비판하는 영국 시민들에게는 가차 없다. 자신의 신변 안전과 자유를 빼앗길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한 토미 로빈슨 같은 시민에게 말이다. 영국 좌익과 좌우 기득권층에게 그는 눈엣가시였다. 그들은 로빈슨을 국가의 적(Enemy of the State)라고 부르고 "축구에 미친 난봉꾼(football hooligan)"이라고 빈정거린다. 노동자 계층 출신인 그에 대한 경멸이 묻어난다. 그러나 수천만 영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얘기를 해주는 그를 마음 깊이 존중한다. 로빈슨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국가의 적(Enemy of the State)>도 펴냈다.
로빈슨이 구속 수감된 후 수천 명의 시민이 런던 거리를 메우고 로빈슨을 석방하라고 시위를 했지만 언론은 이들을 "극우"로 매도하고 이들을 모욕하는 극좌세력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미화해 보도했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은 무슬림 그루밍 갱의 만행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매도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다. 영국정부는 이슬람을 비판하고 무슬림의 만행을 알리려는 외국인은 입국을 금지하고 이교도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이슬람 성직자들은 무사통과시킨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제정하고 의회민주주의의 본보기를 세계에 선물해준 나라. 영국이 없었다면 미국의 헌법도, 독립선언문도, 권리장전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영국이 지난 수십 년 간 지속적으로 이슬람 화 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 무슬림은 인구의 6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중범죄자 교도소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복지의존도는 70퍼센트에 달한다. 영국에는 서구 법체계와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쿠란을 바탕으로 한 샤리아 법정(Sharia Court)이 130개 이상이다. 영국 공립학교에 급식용으로 납품되는 육류는 100퍼센트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한 할랄(Halal) 육류다.
지금 대한민국은 김정은을 찬양하는 극좌는 진보로 포장되고 전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재판에 항의하는 우익은 극우로 매도당한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들은 중국과 북한에서 자행되는 북한여성의 인권유린에 침묵한다. 한국에서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사진=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
로빈슨의 사건에서 한국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피고가 종북주의자인 재판은 철저하게 적법절차에 따라 증거법정주의를 준수하며 진행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권에 몸담았던 이들과 우익운동가들에 대한 재판은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부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경찰은 각목을 휘두르고 경찰차를 불태우는 극좌 시위자들에 대해 미온하게 대처하고 몸을 사리면서 우익 시민의 시위에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김정은을 찬양하는 극좌는 진보로 포장되고 전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재판에 항의하는 우익은 극우로 매도당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주류 언론은 그런 우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아무리 대규모 시위가 열려도 보도하지 않는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들은 중국과 북한에서 자행되는 북한여성의 인권유린에 침묵한다.
온갖 거짓말과 천박한 욕을 밥 먹듯이 한 좌익 인간들은 지상파 프로그램 진행자 자리를 꿰차 출연료로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어들이고, 원칙을 지키고 진실을 알리려 한 이들은 연금을 깨 변호사 비용을 대고 직장을 잃을 걱정을 해야 하거나 모조리 구속당해 자신을 제대로 방어할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영국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비판은 허락되지 않는다. 아서 왕의 궁전 캐멀롯(Camelot)이 낙타 농장 캐멀 롯(Camel Lot)으로 변하고 있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일부국가를 제외한 유럽(Europe) 전체가 서구문명과 공존 불가능한 이슬람과 로맨스에 빠져 유라비아(Eurabia)로 변해가고 있다.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대상에게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유럽을 휩쓸고 있다. 볼테르(Voltaire)는 누가 당신을 지배하는지 알려면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대상이 누군지 알아내면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대상은 누구인가. /홍지수 칼럼니스트·<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저자
[홍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