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KB국민은행 사태와 관련해 짜맞추기식 제재를 추진중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감원은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에 대한 특별검사를 마친 데 26일 제재심의위를 열어 경영진에 대한 징계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임영록 KB금융지주회장과 이건호KB국민은행장에 대해 문책경고등의 중징계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금감원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감독당국의 징계방침이 형평성을 잃은데다, 현 경영진을 무리하게 옭아매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최수현 금감원장이 자리보전을 위해 책임 소재도 가리지 않은채 다짜고짜 물타기 징계수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금감원은 이를 특정 언론에 흘려서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려는 것도 감지된다.
가장 큰 의혹은 금감원의 억지 제재. 금감원이 한 메이저 언론에 흘린 내용에 따르면 임영록회장의 경우 연임을 못하게 문책경고가 통보될 예정이라는 점. 이유는 KB카드고객 정보 유출, KB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주택채권 위조 등 사건이 일어나고, 은행과 카드의 주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해 이건호 행장과의 갈등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드유출의 경우 임회장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금감원은 당시 임회장이 지주사 사장으로 고객정보관리인을 맡고 있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는 임회장이 3월 2일 카드 분사 때 고객정보관리인이 아니었다는 점을 애써 무시한 것이다. 어윤대 당시 지주사 회장이 고객정보관리인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회장은 지주사 사장 시절 단 3건만 보고받았을 정도로 해당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카드고객정보 유출 책임은 국민은행에게 있었다. 그런데도 임회장이 고객정보관리인에 있었다고 하는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징계를 하려 하고 있다.
▲ 국민은행 주전산망 교체작업을 둘러싼 갈등의 중심에 있는 이건호 KB국민은행장. 지난해 11월 은행 이사회에서 결의한 전산망 교체 작업에 대해 뒤늦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금감원의 특검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금감원은 당사자인 은행경영진은 물론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지주사 경영진까지 과잉 제재를 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문제는 정병기 KB은행 감사가 이를 침소봉대해서 보고서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부풀리고, 이를 금감원에 특검을 요청하는 유례없이 황당한 행태를 벌인 점. 내부에서 투명하게 진행되는 전산망 교체사업에 대해 무슨 중대한 의혹이 있는 것처럼 감독당국에 ‘고자질(?)’내지 '의혹부풀리기 투서'를 한 것이다.
금감원은 은행이사회결의 등 정당한 절차를 도외시한채 정감사의 일방적 주장에만 혹해서 특검을 진행하고, 제재까지 하려는 편향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분란과 갈등의 당사자인 은행경영진은 문제점을 일러 바쳤다는 점에서 별 문제가 안되는 것처럼 판단하고 있다. 이는 지주사 경영진을 제재하기위해 과잉 특검과 징계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공명정대해야 할 금감원이 ‘시류특검’과 특정인물을 겨냥한 징계에 급급해 '근육질식'의 감독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산망 교체 작업갈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주사가 아닌 은행에 있다. 이건호행장과 은행 이사진들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걸 지주사 경영진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것은 다분히 감독당국이 미리 뭔가 짜맞춰놓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안을 은행 경영진이 무력화시키는 것은 내부의 분란이지, 그룹 지주사 경영진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전산망 교체가 지연되면서 계열사인 카드의 전산망 교체작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은행이 지주사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감독당국은 지주사의 이런 문제점과 애로사항을 살펴서 은행이 조속히 이사회중심으로 정상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국민은행 전산망 교체작업이 차질이 빚게 된데는 4월14일 한국IBM대표가 국민은행 경영진에게 사적 이메일을 보내면서부터다. 공식 경로가 아닌 방식을 통해 이 문제가 커지면서 지주사와 은행이 쑥대밭이 됐다는 점이다.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자충수였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사적 이메일을 통한 이사회결정 무력화 문제는 감독당국이 심각하게 조사해야 할 사안이다. 국내 최대 리딩뱅크가 한국IBM에 놀아난 사건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IBM은 지난해 11월 유닉스 기종 변경을 위한 사전테스트에 참가해서 전산망을 교체해도 문제가 없다고 시인한 바 있다. 국민은행은 교체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없애기위해 유닉스시스템 참여 희망업체들로부터 벤치마크테스트를 실시해왔다. 하지만 IBM은 주전산망은 자신들이 해야 한다며 뒤늦게 KB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입학시험이 끝난 상황에서 탈락한 학생이 자신만 특별시험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IBM은 한국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국내은행들이 IBM의 고압적 자세와 과도한 유지보수비에 신물을 내고 유닉스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도 비용절감과 ‘IBM포로’에서 벗어나기위해 유닉스체제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은행도 민영화되는 즉시 IBM에서 ‘탈출’하게 된다.
국내 은행들은 ‘IBM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IBM은 그동안 한국금융기관들을 봉으로 알고 과도한 유지보수비를 청구해왔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IBM 전산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한국금융산업의 비용절감과 투명한 경쟁입찰을 위해서도 당연하다.
국민은행의 전산망교체작업은 이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 이를 무슨 리베이트 의혹으로 몰아가는 일부 행내 시각은 비이성적이다. 금감원이 명예와 신뢰를 먹고 사는 지주사 및 은행 최고경영진, 이사진들의 본인 및 가족들의 계좌까지 뒤진 것은 심각한 상처를 주는 것이다.
금감원은 정병기 감사와 은행경영진의 뒤늦은 문제제기가 명백한 ‘고자질’인지, 아니면 의도적 인 은행 이사진 및 지주사 경영진 흠집내기인지를 분간해야 한다. 이것이 이사회중심의 경영을 근본적으로 교란시키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제재를 한다면 이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감독당국은 KB금융지주와 은행특검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뭔가 의도를 갖고 무리한 징계조치를 내린다면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사심을 버려야 한다. 자리보전과 면피를 위한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논란을 초래해선 안된다.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 최수현 원장은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이 내부갈등을 봉합하고 국내 리딩뱅크로서의 위상을 갖고 순항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미디어펜=이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