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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적합업종제 질나쁜 규제...노무현도 없앴는데

2014-06-14 09:1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가 본격 시행된 지 만 3년이 되어간다. 늦기 전에 이제는 단계적 폐지, 즉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자면 우선 금년 말까지 3년 일몰의 시한이 다가오는 제조업 분야 82개 품목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하는 것을 그만두고,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적합업종 제도는 중소사업자에게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분야에서 국내 대기업의 사업을 제한하고, 심지어는 대기업의 사업 이양과 사업 철수를 권고하는 제도이다. 다시 말하면 공공구매 시장에서 중소기업 경쟁제품 지정제도라는 이름으로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제도가 이미 있는데, 여기에 더해 민간시장도 필요한 경우 중소사업자에게 나눠주겠다는 게 적합업종 제도이다.

제3자에 의한 시장 나눠주기 게임인 셈이다. 그러나 제3자의 판단으로 중소기업에게 적합한 업종을 정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무모한 일이었다. 중소기업이 강점이 있는 분야라면 굳이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여 정부가 억지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시작부터 모순이었다. 부작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쟁압력이 낮아져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계 기업들에게 안방 시장을 내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누군들 피 말리는 경쟁이 달갑겠는가. 일찍이 경제학자 힉스(J.R. Hicks)는 독점의 가장 좋은 점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the best of all monopoly profits is a quiet life.)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독점까지는 결코 아니지만 대기업의 사업 제한으로 경쟁압력이 크게 감소하면 해당 분야의 중소기업으로서는 이익이 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적합업종 제도는 한번 맛보면 포기할 수 없는 선택지일 것이다.

금년 초, 중소기업 단체에서 적합업종 지정의 효과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그랬다. 이에 따르면, 동 제도로 인해 이익 또는 매출이 증가했다는 의견은 9%에 불과하고,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이 66%로 가장 높았다. 그리고 재무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다시 적합업종으로 재지정되기를 원한다는 의견은 96%에 이렀다.

시장을 나눠달라, 경쟁압력을 줄여달라는 요구가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제도를 계속 운영할수록 더 많은 중소기업 단체들이 더 많은 업종·품목에서 신규로 지정·보호 받기 위해 로비 활동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게 뻔하다. 이렇게 적합업종 제도는 소비자를 상대로 벌여야 하는 시장 게임을 정치 게임으로 변질, 왜곡시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난 11일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기적합업종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중기업종제는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의에 의해 무리한 규제를 낳을 뿐이다. 이는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퇴보시킬 뿐이다. 중기업종제는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진보 노무현대통령도 중기업종제도를 없앴다. 오히려 보수 작은정부와 비즈니스프렌들리를 표방했던 이명박대통령이 이를 부활시키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돌이켜보면 적합업종 제도는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동 제도는 2010년 9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했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전략회의'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2006년에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한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영성과에서 양극화가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힘입은 것이지만, 이는 일부 수출 대기업의 엄청난 호조로 인한 착시일 뿐, 통계적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에서 작성하는 기업경영분석 통계를 보면, 제조업 분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평균 3.16%p(대기업 7.51%, 중소기업 4.35%)였으나 이명박 정부 기간에는 평균 1.98%p(대기업 6.45%, 중소기업 4.47%)로 큰 폭 감소하였다. 항간에 떠도는 주장과 달리 대·중소기업 간 영업이익률 격차는 오히려 감소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노무현 정부는 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했는가? 대·중소기업 양극화는 이미 참여정부 출범 당시에도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상태였다. 사실 대·중소기업 양극화를 말하자면 2004년 통계만한 게 없을 정도로 그 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9.43%)은 중소기업의 성과(4.11%)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노무현 정부도 이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보호 정책이 가짓수는 많아도 중소기업의 경쟁 역량과 체질을 강화하는 '질적 성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판단 하에 과감하게 개혁하였다. 특히 중소기업 3대 보호제도로 알려진 고유업종 제도, 지정계열화제도는 폐지하고, 일부 중소기업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단체수의계약 제도는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지정제도’로 바꾼 것은 의미가 컸다.

당연히 반발이 따랐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중소기업정책 자체를 혁신하겠다. 과거의 단순한 보호·육성 차원을 넘어 기술과 사업성을 철저하게 평가해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꿔가겠다.”라고 하는 한편 “아무리 저항이 있더라도 좀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며 개혁을 추진하였다.

중소기업 정책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의 방향 설정이 옳았다.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노무현 정부에서 반발을 무릅쓰고 어렵게 바로잡은 정책 방향을, 이명박 정부가 인기영합 차원에서 그릇된 방향으로 되돌린 격이다. 적합업종은 정부가 아닌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서 대·중소기업 이해관계자들이 자율합의 형태로 일을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나 그 본질은 사실상 규제이다. 어떤 면에서 적합업종 제도는 과거의 고유업종 제도에 비해 더 질이 나쁜 불량규제이다. 사실상 규제이나 법령에 명시적인 기준과 절차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분야가 어떤 이유로 적합업종으로 지정될지 불확실성은 높고 예측성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무역대표부에서는 지난 3월, '2014년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의 적합업종 제도가 한국 정부와 무관하지 않다며 앞으로 동반성장위원회의 활동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힌 바도 있다.

정리하면,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은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적합업종을 어떤 기준으로 지정하든 이는 정치적 힘겨루기의 결과일 뿐이다. 이렇게 시장의 문제를 정치 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지적했듯이 중소기업의 체질 및 역량 강화에 도움은 주지 못하고, 불필요한 사회 갈등만 증폭시키는 등 부작용이 많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이 인위적 시장 나눠주기 제도에 더 길들여지기 전에 적합업종 제도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비중과 밀도가 높기 때문에 중소기업계로서는 고충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인구 10만 명당 종업원 50인 미만의 소기업의 수를 헤아려보면 우리나라는 97개로, 일본의 58개에 비해서 매우 많은 편이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기업인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정부 또는 제3자에게 사업영역의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가 정신의 발로(發露)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기업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의 문제를 탓하면서 중소기업 제품의 구매에 나서달라고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편이 더 기업가다울 것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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