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 경영정상화를 위해 재시동을 건 한국지엠이 정상화를 위한 시작도 못하고 또 다시 멈춰서 있다.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지엠에 자금을 투자하고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글로벌 개발거점으로 삶기로 하는 등의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시작은 또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멈춰 서게 생겼다. 이 작업의 진행중 발생하는 절차에 노조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재시동을 건 한국지엠이 정상화를 위한 시작도 못하고 또 다시 멈춰서 있다. /사진=미디어펜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지난 20일 GM본사가 5000만달러, 한화로 약 550억원을 신규투자해 글로벌 베스트셀링모델인 소형SUV 제품의 차세대 디자인과 차량을 개발하는 거점으로 삶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GM대우시절 완성시켜 이미 글로벌시장에서 에퀴녹스(국내명:이쿼녹스)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소형SUV 모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변 결정에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한국지엠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갖춰진 셈이다. 새로운 모델의 연구개발비용이 꾸준히 추가 될 것이고 핵심거점으로 신제품이 생산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걷어지는 디자인 인센티브 또한 운영자금으로 수혈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 것이다.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GM International) 사장은 "이번 발표를 통해 한국사업에 대한 GM 본사 차원의 장기적 약속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한 것"이라며 "GM 본사가 한국에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관장하는 지역본사를 설립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엥글 사장의 설명대로라면 한국지엠은 연구개발 투자의 일환으로 연말까지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집중 전담할 신설 법인을 마련하게 될 예정이다.
이어 카허 카젬(Kaher Kazem) 한국지엠 사장은 "세계적 수준의 한국지엠 연구개발 역량을 확대해 글로벌 신차 개발을 뒷받침하게 돼 기쁘다"며 "신규 투자 조치가 한국지엠이 추진 중인 수익성 확보와 장기 성장 계획에 확고한 진전을 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노조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지엠 노조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에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집중 전담할 신설 법인'을 마련한다는 GM의 계획은 "또 다른 구조조정 음모"라고 반발하며 결사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R&D법인 설립은 배리 엥글 사장이 얼마 전 내놓은 한국지엠 경영정상화 계획 몇 가지 중 하나로 나름 한국에 제시한 '선물 보따리' 중 일부이다. 하지만 노조는 시작 전부터 반대를 하고 나섰다.
앞선 일련의 상황들이 노조의 불안한 심리를 부추긴 것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감이 절실한 한국지엠에게 이번 노조의 행동은 대중들에게 납득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시켰다.
앞서 GM은 지난 2월13일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나 노조와 사전 협의는커녕 미리 언질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른 노조의 반발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한국지엠 말리부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차량을 검수하고 있다. /사진=한국지엠
노조의 주장대로 생산부문과 R&D 부문을 분리해 놓으면 향후 GM이 한국 철수를 결정할 경우 후속 절차가 훨씬 간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GM이 해외 공장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이 브랜드와 차량 설계 등 지적재산권 분야를 따로 떼 내는 일이었는데 R&D 부문이 분리돼 있으면 신속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구조를 만든다는 게 반드시 GM이 한국 철수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GM이 결코 철수할 수 없는 시장인 중국의 경우 생산법인인 상하이지엠과 R&D 법인인 PATAC이 별도로 존재한다.
반대로 GM이 기어코 한국에서 철수할 생각이라면 생산과 R&D가 붙어 있다고 한들 계획을 바꿀 리 없다. GM은 과거 스웨덴 사브와 독일 오펠 매각 과정에서 원매자에게 브랜드와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을 내건 바 있다. 철수가 불가피하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R&D로 근근이 생산부문의 수혈받는 것이 아닌 생산부문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GM이 진심으로 철수를 마음먹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한국을 떠났을 것이고 방법 또한 다양하게 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에 R&D법인 불리가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노조의 이 같은 행동은 자신들의 가치자체를 떨어뜨리는 행위에 불과하다. 분리법인을 반대하면 자신들의 알맹이가 R&D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미 GM이 떠날 수 없는 중국시장역시 분리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즉 '분리법인=철수준비'라는 노조의 주장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지엠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를 모기업으로 하는 르노삼성자동차는 현재 닛산으로부터 중형SUV '로그'의 미국 수출물량을 위탁받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르노삼성이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 로그는 12만3202대에 달한다.
이는 르노삼성의 전체 판매량(27만6808대)의 절반에 육박한다. 내수판매 부진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정상 가동될 수 있는 것도 로그 수출물량 덕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미국 판매용 로그 생산을 르노삼성 부산공장에 맡긴 것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한 관세 혜택도 있었겠지만 높은 품질과 안정적 물량 공급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생산기지를 둔 지역들은 공장간 또는 나라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자국에서 또는 자기 공장에서 더 많은 공장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경쟁에서 본사의 사업방향에 반기를 드는 노조가 있다는 것은 글로벌 완성차 생산시장에서 치명적인 악재일 수 밖에 없다.
이번 한국지엠 노조의 본사에 대한 반기가 환영받을 수 없는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생산기지가 많은 상황에서 한국시장에 자급을 투자하고 경쟁력 있는 새로운 일감을 배치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행동이다"며 "노조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우려로 본사의 지원에 반기를 드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미래를 불확실성으로 몰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