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이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오는 18일 평양에서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최근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추동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특사단을 만난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재차 밝혔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때라며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은 비핵화 후속조치의 첫걸음인 핵 신고 리스트 작성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자신들의 핵‧미사일 실험장 폐기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동시행동 원칙’을 주장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의 3분의 2가 완전히 붕괴됐고 유일한 미사일 실험장인 동창리 실험장 폐기는 향후 장거리미사일 실험의 완전 중지를 의미한다’고 강조하고, 이런 의미 있는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인색한 데 따른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약 2주 이후 김 위원장을 만나기 이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이 원하는 상응하는 조치를 이끌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선언 약속과 김 위원장의 비핵화 시간표 제시가 맞교환될 수 있는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분수령을 맞은 셈됐다.
김 위원장이 말한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의 핵심은 종전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특사단장으로 김 위원장을 만난 정 실장은 6일 방북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은 이미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실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며 “정부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관련국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필요한 첫번째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고, 북측도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정 실장은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메시지가 있다”고 말하며 “김 위원장이 자신의 비핵화 결정을 옳은 판단이라고 여겨질 여건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방북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 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청와대 제공
김 위원장이 전해달라고 한 메시지는 바로 이날 저녁8시 정 실장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전달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그저께 밤에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당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메시지가 있었다. 그 메시지를 정 실장이 김 위원장에게 어제 전달했고,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비핵화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던 김 위원장에게 전달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남측 특사단을 만난 김 위원장이 ‘북미 동시행동’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문 대통령도 종전선언 관철에 ‘올 인’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미국과 남한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론하며 ‘종전선언과 전혀 상관없는 거 아니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서 미국 정치권의 불안감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달 중순 유엔총회를 계기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풀어야 하는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특히 청와대는 이번 특사단을 만난 김 위원장의 발언 중에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북미간 70년의 적대적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해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에 방점을 두고 싶어했다.
김 대변인은 “사실 정 실장님이 그 말에 제일 중요한 의미가 담겼다고 보고 계신다”며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도 2021년 1월까지 비핵화 실현이라는 시간표를 제시한 적이 있는데 김 위원장이 미국의 요구에 화답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해석해달라”면서도 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말한 비핵화 실현은 평화협정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종전선언이라고 하는 게 한반도 비핵화의 입구에 해당되는 것이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시점에 평화협정을 맺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완전한 비핵화라고 할 때에는 비핵화의 검증 단계까지 다 마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평양에서 대북특사단과 김 위원장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의지를 다지면서 2020년까지 비핵화 실현이라는 시간표의 초안을 만든 셈이다. 청와대는 이날 “특사단이 올라갔을 때 경협의 ‘ㄱ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말로 비핵화 협상에 공을 들인 점을 강조했다.
이제 이달 18~20일 김 위원장과 3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23~27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미정상회담을 가질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치라는 북미 동시행동의 밑그림을 만들어내야 할 차례이다.
다만 그동안 종전선언을 ‘비핵화의 선 조치’로 주장해온 북한과 ‘비핵화의 후 조치’로 주장해온 미국의 주장이 팽팽했던 만큼 북미 동시행동이 실현될 문 대통령의 ‘회심의 카드’가 필요해보인다. 청와대가 밝힌 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원하는 ‘치프 네고시에이터’(Chief Negotiator) 역할이 어떻게 펼쳐질지 가장 주목되는 시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