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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는 왜 인촌의 친일파 누명조차 못 벗기나

2018-09-10 10:1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매체비평 '한 신문의 추락에 관한 보고서'를 상하 편으로 나눠 게재한다. 우선 동아일보 사건팀장 신광영 기자가 며칠 전에 쓴 칼럼 '알츠하이머라는 전두환… 기억에서 탈출할 자격 있나'가 문제다. 맹랑하게도 그 글은 현대사의 분수령인 1980년대에 대한 운동권적 인식으로 온통 오염돼 있어 우릴 놀라게 했다. 더 큰 문제는 왕년의 동아일보가 신문의 근본까지 잊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월 그 신문의 창업주(인촌 김성수)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했는데, 당시는 물론 지금껏 사실보도를 누락한 데에 이어 관련사설-칼럼을 내보낸 바 없다. 신문 정체성을 흔드는 폭거에 대한 완전 침묵 내지 굴종적 지면제작이 그저 놀랍다. 때문에 이 매체비평은 특정신문 아닌 언론 죽음에 대한 문제제기다. [편집자 주]

[매체비평 연속칼럼]'한 신문의 추락에 관한 보고서'-下 
 

조우석 언론인

'동아일보의 침묵 6개월'은 실로 미스터리다. 지난 2월 그 신문의 창업주 인촌(仁村) 김성수(1891~1955)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한 국무회의 결정을 놓고 사실보도부터 외면한데 이어 관련 사설-칼럼 단 한 꼭지를 지금껏 내보낸 바 없다. 신문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좌파정부의 폭거에 대한 굴종적 지면제작이라서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동아일보는 2년 뒤 창간 100주년을 맞는데, 자기 역사와 존재 이유를 내걸 걸고 싸웠어야 했다. 그런 동아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인촌 서훈 취소란 특정매체를 떠나 한국언론 전체의 명예와 직결됐다. 더구나 이 나라를 파탄내온 친일파 논쟁이 핵심이다.

때문에 이 사안에 나 몰라라 해온 언론계 전체의 직무유기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어쨌거나 상반기 언론계 최대 참사가 분명한 이 사안의 발단은 노무현 시절 과거사위의 하나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다. 진상규명위가 2009년에 조사활동을 마감하며 펴낸 최종보고서에 인촌을 친일파 1005명의 한 명으로 분류한 것이 문제의 씨앗이다.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4000여 명을 담은 <친일인명사전> 펴냈지만, 대통령 직속기구 진상규명위의 결론은 무게가 또 달랐다. 이 기구가 친일파로 분류한 인사에 대한 서훈 취소도 그 여파다. 실제로 독립유공자이면서 친일경력이 있다는 장지연 등 18명의 서훈이 취소됐다.

본래는 19명이었는데, 인촌만 잠시 빠졌다. 주무부처 장관을 상대로 인촌기념회가 소송을 걸었기에 보류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1,2심 패소에 이어 대법원이 '인촌=친일파'로 확정 판결한 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난해 4월이다. 그게 국무회의에 올라와 서훈 취소로 마무리된 게 지난 2월이다. 이 어수선한 와중에 동아일보가 할 일은 자명했다.

사실보도는 기본이고 이 취소 결정의 부당성을 알리는 사설-기명칼럼으로 지면을 도배했어야 옳았다. 대법원 판결, 국무회의 상정 전후 대대적 캠페인이 필수였다. 사운(社運)을 건 정면대결인데, 인촌 방어만이 아니고 좌파 정부의 난동에 맞선 현대사 지키기가 핵심 아니던가?

그런데도 동아는 한 줄 보도 없이 침묵을 선택했는데, 그게 뭘 의미할까? 동아는 창업주에 대한 확신이 없어 몸을 사리는 걸까? 아니면 바보 신문이거나…. 천하의 동아가 이러면 안 된다. 대법원 판결이야 사법적 진실일뿐 역사적 진실의 몫은 따로 있다. 판결 자체가 '법률 꽁생원들'의 단견이라고 치고 나오는 공세적 지면제작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사실 건국 70년이 다 돼 친일파 타령을 반복하는 한국사회의 퇴행성에 질린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또 인촌이 누구던가? 일제하 언론인-교육자요, 대한민국 건국의 핵심 정치인이 아니던가? 당대 최대의 지주(地主)로 출발해 근대적 자본가로 몸을 일으켰으니 그 자체로 신화다.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고려대) 경영에 이어 '일제시대의 삼성전자'인 경성방직도 일으켰다.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건국도 인촌 없인 설명 안 된다. 제2대 부통령 역임보다 중요한 건 우남 이승만, 해공 신익희와 함께 그가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다. 무엇보다 한민당의 오너였다. 즉 지금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민주당 계열 정당의 뿌리가 인촌이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 3월 8일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고 인촌기념관·인촌로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7년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적이 인정된 인촌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사진=연합뉴스


때문에 친일 시비란 거대한 삶의 공과 과 양면성일 뿐이다. 그런 인촌 방어에 동아일보가 실패했다는 건 근현대 언론-교육-제조업의 신화에 먹칠한 건 물론 건국사를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부끄러운 역사로 만든 꼴이다. ‘대한민국=친일파의 나라’라는 좌익 논리에 대한 굴종이다.

때문에 동아는 따져 물었어야 했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 활동 때 왜 인촌의 이름은 거론된 바 없고, 조사대상자도 아니었던가? 왜 인촌이 친일의 거두로 키워진 건 1990년대 이후부터인가? 즉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친일파 시비가 정신병 수준으로 고질화되는 계기였고, 이후 친북-반일-반미 움직임과 연계해 대한민국 해체 촉진 쪽으로 줄달음질쳤다.

인촌에 대한 친일 시비는 이 과정에서 더욱 고약해졌고,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동아의 침묵을 이렇게 비유한 분이 있다. "부모가 총칼을 든 깡패에게 겁박-능욕 당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오불관언 외면하는 자식….' 동아의 200명 편집국 기자와 편집간부-경영진은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동아만이 문제인가? 고려대 출신 수십 만 졸업생과 교직원은 또 뭔가? 훗날 세월이  좋아져 서훈 재추서를 할 수도 있는데, 명분 축적을 위해서라도 동아일보-고려대는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어쨌거나 동아의 침묵은 특정 매체를 떠나 한국언론의 죽음이며, 대한민국 국가 해체의 징후인데, 신문업계에선 동아의 침묵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 그 신문 사장을 역임했던 김학준을 비롯한 2000년대 초반 경영진-편집 간부진이 문제였다. 그들은 친일파 시비와 관련해 지면제작을 통한 정면승부 대신 조용한 해결방식을 선호했다. 그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동아가 쥔 무기는 명분과 지면뿐인데 그걸 포기하다니….

둘째 그래서 문제인데, 더 큰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한국사회에 구조적 변화가 시작되고 좌익 운동권이 날뛰던 1980년대 이후 상황에 대응할 능력과 용기를 동아일보가 잃었다는 게 결정적 문제가 아닐까? 사실 그 신문은 80년대 이후 길을 잃었다. 동아일보는 1950년대 반 이승만 캠페인으로 재미보고, 60~70년대 야당지 컨셉에 매달렸던 게 전부다.

그게 일제하 민족지라는 후광(後光) 덕에 한때 그럴싸하고 커보였지만, 실체는 대단한 게 아니었으며 그것마저 8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소멸해갔다. 좌익 운동권이 발호하며 일제하 일간지 발행 자체를 친일로 몰고 가려는데, 그에 대한 방어조차 못한다는 건 그 신문의 죽음을 뜻한다. 

'동아의 침묵'에 필자인 내가 흥분하는 이유가 짐작이 되시는가? 나는 언론인 신분일 뿐 동아일보에서 밥 먹은 바 없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데, 오늘 결정적 지적을 마저 하려 한다. 오래 전 신문시장에서 3위로 밀려난 동아를 두고 사람들은 말해왔다. 그 신문은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오너가 무능했다고…. 모두 맞는 말인데, 더 큰 맹점이 하나 더 있다.

동아일보가 내세워온 반 이승만, 반 박정희로 대표되는 반독재 민주주의가 다분히 허상이라는 것, 그게 포인트다. 즉 그건 위선적이고, 취약하기 짝이 없는 리버럴리즘에 불과하다는 게 내 오랜 판단이다. 그런 납작한 리버럴리즘 따위론 운동권 논리를 돌파하지 못한다.

또 현대사를 좌익논리로 물들인 수정주의 사관 앞에 삽시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80년대 이후 동아가 걸어온 길이 그랬고, 현 편집국 구성원도 그 논리에 함몰됐다. 서울 성북구에 이어 전북 고창의 '인촌로'가 개명을 추진 중이라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거듭 밝히지만 동아의 죽음은  국가해체 위기 국면의 대한민국 현주소를 재확인해준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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