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개신교-가톨릭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전했다. 신앙공동체를 넘어 근현대사의 뼈대인 기독교가 개혁세력으로 위장한 종북좌파에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개신교의 경우 교회 세습이나 운영상의 비리 등으로 약점이 잡혔고, 좌빨과 넘나드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교체됐다.
개신교가 앓는 몸살에 비해 가톨릭은 조직 전체가 망가졌고, 배경엔 무기력한 염수정 추기경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설명이 미진한 대목이 없지 않았다. 한국가톨릭의 문제를 그가 모두 뒤집어쓸 순 없고, 혹시 근본적 문제는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추기경이 중심 못 잡으니까 주교회의도 흔들리고, 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이 날뛰게 된 진짜 배경은 뭘까?
그 배경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있다고 나는 감히 판단한다. 그는 가톨릭의 상징을 떠나 현대사의 구심점으로 추앙 받고 있고 그래서 비판 자체가 금기에 속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김수환 신화'의 빛과 그늘을 온전히 살펴야 가톨릭 문제가 보이고 한국사회도 눈에 들어온다.
저번 언급대로 가톨릭은 등록 신자는 574만 명으로 외형상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김수환 신화에 힘은 빅뱅이다. 놀랍게도 지난 10~20년 그중 80% 전후한 463만 명이 냉담자로 성당에 나가지 않고 있다. 좌익 사제들의 언동에 질린 탓이지만 이런 가톨릭의 좌경화의 뿌리엔 김수환 신화의 그늘이 갖고 있는 부작용의 측면을 무시 못한다.
다시 묻자. 정구사가 왜 저렇게 날뛰는가? 가톨릭 내 사적 모임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오래 전부터 좌편향 행보를 밟고 있다. 가짜 김현희 만들기, 천안함 음모설에서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시위 주도 등 끝이 없고, 80년 광주사태 때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런 그들의 1970년대 출범 과정을 추적하면 김 추기경과 만나는 지점이 보인다.
당장 정구사는 언터처블이다. 오만방자한 탓에 김수환-정진석-염수정 등 역대 추기경 셋과 대립각을 세우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일테면 김수환 추기경이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 시위 자제를 요청하자 정구사가 발끈했다. 정구사 소속 함세웅이 "그 분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받아친 것이다.
현재 가톨릭의 좌경화의 이면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있다. 사진은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지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 /사진=연합뉴스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정구사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자 "서울교구장을 용퇴하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그런 언행이 사제 임면권을 가진 교황에 대한 항명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얼마 전 염 추기경이 사제의 정치 개입을 우려했을 때도 그랬다. "그건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다시 함세웅이 나서서 "성서적 기초도 없는 소리"라고 대들었다.
물론 저들은 그런 활동에 사목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게 바로 1960년대 열렸던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린 교회 정신'이라는 얘기다. 공의회 이후 교회의 현실참여가 권장됐으며, 교회가 세상을 열려있어야 한다는 사목 원칙이 만들어졌다는 걸 정구사는 강조한다. 이게 문제다.
그럼 정구사만 그러한가? 아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은 생전 김수환 추기경의 사목 원칙이기도 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일테면 한국가톨릭이 첫 사회적 발언을 한 건 1968년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인데, 당시 이 사건의 배경에 김 추기경이 있었다. 당시 그는 가농(가톨릭노동청년회) 총재 주교의 직함으로 "노동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그 사건에 개입했다.
그 얘기를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2004년)에서 밝혔다. 김 추기경과 정구사 사이엔 공감대가 없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 추기경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자부심이 많다. "교회는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악과 불의에 저항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한 일이라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재삼 강조했다.
그런 원칙이야 좋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그 회고록엔 박정희 한강의 기적이 "막강한 권력에 의한 강요된 희생"이라고 단정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참 공감하기 어렵다. 김 추기경의 현대사 인식이 의외로 뾰족하며, 전체를 보는 너른 시야는 크게 부족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
박정희 시절은 연평균 9%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국민총생산은 27배, 1인당 국민소득은 19배 증가했다. 성장속도만이 아니고 질과 양을 함께 달성했는데, 박정희 시절은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됐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변신했고,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게 진실이다. 그래서 위대한 동반성장의 시대였다는 걸 김 추기경은 잘 몰랐다.
그런데도 한강의 기적이 "권력에 의한 강요된 희생"이라고 단정하다니…. 그러니까 오해가 생긴다. 김 추기경이 초기 정구사의 대부라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다만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직후 정구사 결성됐을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건 분명하다.
당시 벌써 정구사가 가져올 악영향에 대한 경계가 있었다. 김 추기경의 가톨릭대 동기로 생존해 있는 정하권(93) 몬시뇰이 경고음을 낸 사람이다. 그는 당시 김 추기경에게 "정구사를 허락할 경우 교회 공식조직을 흔들 수 있고, 후회할 날이 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도 김 추기경의 가장 큰 과오가 그것이라고 지적하는데, 필자인 나도 공감한다.
또 있다. 공의회 정신의 한국적 적용은 신중해야 하는데 그것도 문제이고 무엇보다 정구사와 좌익 사제들는 선악 이분법에 빠져있다. '우파 권력=악', '좌파 권력=선'의 구도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면 종북으로 줄달음친다. 위선적 리버럴리스트들이 빠지는 함정에 그들도 빠지는 셈이다.
이걸 방조 내지 묵인한 것은 결국 김 추기경의 책임이다. 단순 실수가 아니고, 현대사에 대한 온전한 이해 부족에 따른 행보였다는 점에서 문제다. 예나제나 우린 정구사의 좌익 놀음을 선한 그 무엇으로 착각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말이 있다. 국가가 있어야 교회도 있다, 바로 그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수환 신화' 깨기에 이어 다음엔 '함석헌 신화' 깨기의 글을 싣는다. 마치 불세출의 선지자인양 떠받들어지고, 좌파의 정신적 기둥인 그 함석헌의 빛과 그늘을 함께 살펴보면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재점검해보자는 뜻이다. 관심 바란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