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남북의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하는 착공식이 유엔제재 면제 승인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26일 개최됐다. 착공사가 발표되고 침목 서명식, 궤도 체결식, 도로표지판 제막식에 북측 취주악단의 기념공연으로 구색을 맞췄지만 행사는 25분만에 끝났고, 남북의 참석자들은 곧바로 헤어져 점심식사도 따로 했다.
이날 행사가 실제 ‘착공’ 없는 ‘착공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시속 20~60km의 북한 철도를 현대화해서 남한의 철도와 연결하는 공사는 어렵기도 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을 생각할 때 한국의 능력만으로는 할 수 없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원조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없는 상황에서 철도연결 착공식은 상징적인 이벤트로 그칠 뿐이고 얼마나 진전될지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언론들도 남북 철도연결 착공식을 앞두고 미국 중심의 대북제재가 완화·해제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하지만 실제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존에도 유사한 기공식이 2000년과 2002년 열렸지만 결국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남북 정상이 약속한 대로 연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을 개최하는 데 성공했지만 과연 내년에도 남북 교류와 북미 비핵화 협상이 선순환적으로 진전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이 받아든 북한의 비핵화 성적표가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재인정부는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대화가 선순환하면서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데 자신감을 보여왔다. 올해 6.12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하기까지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 한해 모두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세기의 만남’이라고 불린 북미 정상회담이 한차례 열렸지만 북한의 비핵화의 불확실성은 그대로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는 것을 놓고 전문가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센토사 북미 정상회담 때 약속한 종전선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미 간 신뢰구축이 안된 상태에서 북한이 먼저 정권을 지킬 최후의 보루인 핵을 제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전문가 일각에서는 그동안 북한이 취해온 비핵화 조치란 것을 볼 때 핵신고 리스트 제출 등 상식적인 로드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노후화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엔진시험장 폐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북한이 미국의 종전선언 등 상응조치에 따라 폐기할 수 있다고 호언한 영변 핵실험장조차 방사능 노출이 심해 어차피 폐기 수순을 밟아야 할 지경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통일부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동결’ 단계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인정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최근에도 ‘북한의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하면서 야당으로부터 ‘현실감이 떨어진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강도 높은 비판을 불러온 것이 사실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1일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판단 근거에 대해 정 실장은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육성으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것을 들었다.
하지만 정 실장의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인 20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미국의 전술핵 제거라고 정의내린 바 있다. 통신은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며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도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그릇된 인식 탓”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미국의 제재 완화야말로 비핵화 협상의 진정성을 판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북한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 달성까지 제재 이행을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미국이 벌이는 기싸움은 앞으로 언제까지 전개될지 알 수가 없다.
내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적으로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낼 때 북한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 정부가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경우도 대비할 시점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내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싱가포르 통신정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