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최저임금제도 시행 31년 만에 정부가 결정 구조를 기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구간설정위와 결정위로 이원화하고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가 '상하한선'을 정하기로 했으나,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해법이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7일 정부 발표 후 즉각 성명을 내고 구간설정위를 통한 상하한선 결정이 '당사자를 배제한 불균형 구조'라면서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기업 지불능력과 고용수준 등 경제상황을 추가한 것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당장 생계유지가 불확실한 영세기업에 대해 검토하기로 한 구분적용이 언급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평가했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역별 최저임금 적용 방안을 결정하기 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기업 지급 능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정당성을 수용하기 힘들다"며 "새로 설치하는 구간설정위원회가 현 공익위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마련하면서 놓친 점은 크게 3가지로 좁혀진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29% 급격하게 올라 한계기업들이 늘어났고, 올해부터 정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주휴수당을 포함시켜 일부 기업의 경우 새해 인상률이 33%에 달해 인건비 부담이 급증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내년 얼마나 최저임금을 올릴지' 결정하는 논의과정에서 인상을 전제한 자체가 잘못됐고 (마이너스) 인하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사문화된 정부의 '재심의' 권한을 활용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의제기에 따른 재심의는 최저임금제도에서 보장된 장치이지만 1988년 시행 후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유명무실해진 재심의 권한을 정부가 적극 행사해 정책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모두 전문가들의 잠정결정이나 노사 의견을 수렴한 후 정부가 최종결정을 해서 책임성을 강화하는 형태다.
새로운 결정 기준도 회의적…근본해법 외면
정부가 이번 최저임금 결정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두번째로 놓친 대목은 '결정 기준·근거'의 문제다.
정부는 결정기준에 고용수준·기업 지불능력·경제성장률을 포함한 경제상황 등을 추가하기로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최저임금의 가장 중요한 기준 지표인 노동생산성의 경우 지난해 결정 과정에서 근거로 고려되지 않았고, 결국 노사간 정치적 교섭·줄다리기 형태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노동생산성·근로자 생계비·소득분배율·유사근로자 임금 등 4가지 기준을 근거로 정하게 되어있지만, 지난해 7월 최저임금위원회는 인상률 10.9%을 결정하면서 산입 범위 확대에 따른 보전분 1%·협상배려분 1.2%·임금인상률 전망치 3.8% 등을 근거로 들어 빈축을 샀다.
최저임금은 정부가 기업측에게 인건비 하한선을 강제하는 제도다.
향상된 노동생산성만큼 인건비를 올려줄 수 있고 이 또한 기업별로 감당 여력이 있어야 지불 가능하다.
생존과 성장, 시장지배 및 이윤을 유일무이한 목적으로 삼는 기업이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018년 11월28일 부산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해 '고용서비스 기능강화를 위한 고용센터 현장간담회'를 갖는 모습이다./자료사진=고용노동부 제공
마지막으로 업종·지역별 차등적용 및 법정 주휴수당 폐지, 대표성 괴리 등에 대한 근본해법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 8350원을 적용받는 국내 전체 임금근로자 중 98%인 284만명이 중소기업·소상공인 사업장에서 근무하지만, 인건비를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목소리 비중은 최저임금 결정구조에서 극히 적다.
현실과 결정 구조가 괴리되어 있어 대표성이 왜곡된 상황이다.
지역별·업종별로 수익성과 인건비 비중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야 한다는 경영계 입장도 정부 개편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선진국에 존재하지 않는 법정 주휴수당을 폐지해야 한다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2018년 국내 설비투자는 1% 마이너스 성장에 건설투자 2.8%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자영업자 체감경기는 곤두박질쳤다.
현장 곳곳에서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실업과 일자리 쪼개기가 빗발치고 있다.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과 현실을 외면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