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 7개월간 이어져온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마지막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11일 오전 9시30분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에 들어갔다.
소위 '사법농단' 프레임에 놓인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은 검찰과의 수싸움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그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 앞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여러 사람이 수사당국으로부터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서 참으로 참담한 마음"이라며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고 따라서 그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했고 저는 그 말을 믿고 있다"며 "조사과정에서 구체적 사실관계를 기억나는 대로 답변하고 오해가 있으면 이를 풀도록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사건이 소명되기 바란다"고 말해 선긋기에 나섰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주된 혐의인 직권남용 19건을 비롯해 공무상비밀누설,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및 특가법상 국고 등 손실, 공전자기록 등 위작·행사, 허위공문서작성·행사 등 총 26개에 달한다.
그동안 검찰이 접수한 고발장은 17건에 이르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해 박병대 전 대법관·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직권남용 혐의가 주요 수사대상이다.
이번 검찰조사의 관건은 검찰의 공세에 양 전 대법원장측 변호인단이 어떤 방어 논리를 내세울 것인가다.
법조계에서는 정황만 확인됐을뿐 결정적 증거(스모킹건)가 사실상 나오지 않아 혐의를 확정하려는 검찰이 불리하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특히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는 그 자체로 다른 혐의보다 충족해야 하는 요건이 상당해 검찰측이 곤혹스럽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현직판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판사들이라면 다 알텐데 형사고발해 재판에 세우자는 주장은 무의미하다"며 "판결 성향을 사후 검토한 수준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고 행정처가 재판에 관여한다는 것은 법원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8년 6월1일 성남시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연합뉴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이에 대해 "검찰이 들이밀은 직권남용은 대법원장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야만 인정된다"며 "하지만 권리를 남용했는지 그 부적절함을 따지기 전에, 검찰이 제시하고 있는 범죄사실이 대법원장 직권에 속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권은 당사자의 일반적 직무권한인데, 이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당 업무지시 등이 당사자 직권에 속하지 않는지 속하는지 여부가 정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1991년과 1994년 대법원은 각각 "직권남용의 구성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안본부장과 대통령 경호실장의 직권남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 출신의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업무수첩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검찰 진술이 물증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구두 지시의 존재와 인과관계 입증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모킹건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며 "관련판사들이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면 무혐의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다만 이는 양승태 당시 대법원이 재판 개입을 실제로 시도했고 이것이 대법원장 직권으로 인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지시가 있었고 이로 인해 위법한 행위가 있었더라도 이것이 대법원장 혐의로 잇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법원이 지난달 검찰이 청구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그 이유로 "임 전 차장과의 공모 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고 밝혀,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고 관측했다.
그러나 앞서 검찰은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44개 범죄사실에 대해 임 전 차장과 범행을 공모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이날 조사에서 송곳 질문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유의미한 진술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1일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재판에 부당하게 간섭·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며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나 재판에 성향을 나타낸 당해 법관에게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면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