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응급의료 개척자'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눈물 속에 엄수됐다.
윤한덕 센터장의 장남 형찬 군은 "위로해준 많은 분께 감사하다"며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꿈이 이뤄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는 나라 만들기'에 매진했던 윤 센터장의 희생이 의료계에 남긴 과제는 하나로 좁혀진다.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전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열악한 시스템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돈(재원 투자)의 문제다.
환자이송 골든타임의 가장 정확한 지표로 꼽히는 '119구급차 병원 재이송'의 경우,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2016년 4만5352건 중 사유 1위가 '전문의 부재'였고 '진료과 없음'·'병상 부족' 순이었다.
'전문의 부재'는 의료진에 대한 낮은 처우→인력 확충 미비→업무 강도 악화→근무 기피라는 악순환이 구조적으로 자리잡아 손 쓸 수 없는 지경이다. 의료진 확충은 고사하고 떠나는 사람을 잡기 어렵다.
이는 지난 2016년 10월 교통사고를 당한 2살배기 남자아이가 13군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이송을 거듭하다 사망했던 사건과 일맥상통한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중한 상황이었지만 이에 대응할 의료체계가 전무해 의사도 자기 가족의 생명이 위급할 때 보낼 병원이 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금방 죽을 것 같은 환자의 경우 맡지 않고 전원시키는 게 이익이다. 치료하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살려봤자 적자고 죽게 되면 온갖 법적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다.
환자이송 골든타임의 지표로 꼽히는 '119구급차 병원 재이송'의 경우,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2016년 4만5352건 중 사유 1위가 '전문의 부재'였다./사진=연합뉴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의료사회주의'라는 데 있다. 의사들의 의료서비스는 공공재가 아니지만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은 사람 살리는 가격을 정해놓았다.
병원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정부가 가격을 묶어놓으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외상외과는 계속해서 축소되어왔다.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응급실 의료진은 교대근무에 일반병실보다 사람 수도 많아야 하며 초과근무수당도 줘야 한다. 과별로 교수나 펠로우, 전문의급 등 각 인원이 들어가고 필요의약품도 완비해야 한다. 넓은 공간과 소독여건 또한 필수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대다수 의사들은 휴식시간 없이 24시간 대기, 주 7일 근무라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며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가 건강하다.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정한 근무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다른 응급시스템 개선책으로는 (응급실이 북적이는 원인으로 꼽히는) 건강보험 '6시간 룰'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본인부담률(5시간59분 이하)은 50~100%이지만, 환자가 응급실에 6시간 이상 눌러앉으면 부담률은 20%로 떨어진다.
의료진이 '치료가 끝났으니 비켜달라'고 요청해도 버티는 환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다. 결국 응급실에 경증환자가 넘쳐서 중증환자 병상이 부족해진다.
현행법상 응급구조사가 인공호흡과 지혈 등 14개 행위만 할수 있어 병원 도착시까지 환자 스스로 살아있어야 하는 맹점도 문제다.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은 다음달 일부 119구급대원의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는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삽시간에 죽어나가는 응급실, 외상외과 등 열악한 과에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언제까지 공무원들의 머리와 의사들의 희생으로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떠받칠 것인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