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정부측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처음 언급하면서 목표치를 하향 조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행정부가 집권 1기의 목표를 ‘핵동결’로 잡고, 집권 2기에 ‘핵폐기’를 추진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는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월31일 미국 스탠포드대학 강연을 통해 “북한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방북 때 영변 핵시설 이외에도 플루토늄과 우라늄농축 시설을 해체하고 파괴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한 것보다도 후퇴한 것이어서 그동안 북미 간 실무협상에서 진전이 없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1차 북미 정상회담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하노이 정상회담’도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담판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진다. 지난해 6월 ‘센토사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군사훈련을 중지한다”고 선언한 것과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두려움마저 일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회담 의제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고 있으며, 특히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콕 집어 묻고 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미군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우리는 다른 것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해 현재로서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또다시 비용을 거론하며 “한국에는 4만명의 미군이 있는데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 폴리티코는 22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협상을 총괄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행정부 인사들조차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의 참모들은 그가 대북협상에서 당할까봐 우려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다른 인사들은 그가 너무 많이 내어줄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갖고 있다./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최근 방한한 조엘 위트 38노스 대표도 22일 경남대 극동연구소 세미나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로 “다른 사람이 비판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정상외교를 밀어붙일 것라는 점”이라고 꼽으면서도 부정적인 요소로 “트럼프의 대표적인 약점은 디테일에 약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트럼프가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기반을 다자주의적인 차원에서 다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다가가지도 않았고, 일본에도 연대를 쌓으려고 하지 않았다”며 “만약에 북한과 무엇인가 딜을 이뤘다고 했을 때 장차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시아지역 내 미국의 이권과 동북아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위험한 부분이 있다면 자칫 가던 길을 벗어나서 동의해서는 안되는 내용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매체 더 폴리티코는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북미 실무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시작됐지만 내용면에서 실질적 진전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북미 정상이 하노이에서 일대일 단독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은 기본적으로 트럼프 말고 다른 사람과는 상대를 안하려고 한다. 그들은 비건도 폼페이오도 상대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에서 나오면서 성공과 승리를 선언할 것이고, 실제로는 바뀐 게 없을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 이외의 모든 사람은 좌절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북미회담에 대한 비관론을 뒤집으려면 '비핵화 로드맵'이 필요하다. 북미 간 완전한 비핵화의 시작과 끝에 대한 합의가 나와야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이 북한 비핵화 과정의 ‘입구’가 될 수 있으므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이 때문에 ‘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의제로 삼고 있다고 전한 미 고위당국자도 이번 회담에 대해 “매우 신속하고 큼직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우선순위는 비핵화에 대한 이해증진과 비핵화 로드맵을 향한 협력”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고위당국자가 ‘비핵화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을 포함해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비관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포기’겠지만 그동안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괌에 있는 미국의 전략자산 철수까지 포함한다'는 주장을 반복해 내놓고 있어 '비핵화 의미'란 한가지 의제만 놓고도 넘어야 할 과정이 많기 때문이다.
북미 간 '핵동결' 합의는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관건은 양국의 '협상 유지'에 달려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볼때 미북 간 실무협상 자체가 성사되기 힘들었고, 막상 실무협상이 열려도 논의에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비핵화 진전'을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미국의 상응조치와 관련해서는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연락사무소 설치’와 ‘금강산관광 재개 용인’ 정도가 언급되고 있어 제재 완화 대신 '관계 개선'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이 역시 비핵화 진전이 없다면 논란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