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한 사람의 힘이다. 콘텐트를 좌우하는 PD 한 명이 방송국의 분위기를 모두 바꾼 것이다.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 얘기다. TV조선이 지난해 초 지상파 출신 PD 서혜진을 예능국장으로 영입하더니 그를 중심으로 짧은 새 변신에 성공했다.
서혜진은 연속 히트를 친 '아내의 맛', '연애의 맛'을 런칭하며, 예능 불모지 TV조선에 신무기를 장착시킨 뒤 이내 쳐낸 장외 홈런 한 방이 '미스트롯'이다. '미스트롯'은 예정된 10회 방송 중 반환점을 돈 상태인데, 이미 대박이다. 지난 4일 '미스트롯' 6회 분이 평균시청률 11.18%를 달성, 마의 시청률이라는 10% 벽을 뚫고 종편 예능 최고기록을 세웠다.
2월 말 첫 방송 때부터 지상파-종편 예능 동시간대 시청률 1위(5.89%)를 장식했던 '미스트롯'이라서 예상 못했던 건 아니지만, 지금 성적은 기대 이상이다. 이미 종편 예능 역대 시청률 1위 JTBC '효리네 민박 시즌2'(10.75%)를 따돌렸지만, 남은 방송 1개월이 더욱 더 볼만할 것이다.
TV조선의 제2의 트롯 전성기를 이끌 차세대 스타들의 '내일은 미스트롯 효(孝) 콘서트'가 5월 4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TV조선, JTBC TV 예능 시대 이끌 듯
6회 방송 뒷부분에 맛보기로 잠시 등장한 군부대에서의 행사 미션은 분위기로 보아 7회 방송 땐 시청률 추가 갱신을 이끌어낼 것이다. 그 경우 '미스트롯' 신화는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트로트 장르를 매개로 전연령대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마법을 연출해낼 것이다. 트로트 신바람을 안방극장에 불어넣은데 이어 5월 '효 콘서트' 전국 투어도 흥미롭다.
TV가 개발한 콘텐츠를 일반 오프라인 무대로 확장하는 실험인데, 티켓 오픈 전부터 쏟아지는 문의전화로 즐거운 비명이라고 들었다. 트로트 부활이란 목표는 초과 달성했고, 저변 확대로 나선 모양새다. 그래저래 이 프로가 예능 불모지 TV조선 체질을 바꿔놓을 것도 분명하다.
애청자인 내 입장에서는 단순히 TV예능 프로를 떠나 트로트라고 하는 대중음악의 비주류 장르의 부활 내지 르네상스의 새로운 전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기획만 좋다면 비주류 장르로 흥행 대박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점이다. 그래서 '미스트롯'의 질주는 비주류의 역습이다.
트로트도 비주류 장르이고, TV조선도 예능 분야의 비주류가 아니었던가? 이번 '미스트롯' 성공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조만간 지상파-종편의 권력지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TV조선 성장세가 1~2년 계속된다면 TV조선과 JTBC 종편 투톱이 TV의 예능 흐름을 이끌고, '공룡 케이블TV'인 tvN이 버티는 새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이미 분명해진 지상파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지상파의 몰락은 제작능력의 부재와 매출액의 추락 두 가지 현상으로 저들을 압박할 것이다. 이런 지각변동을 예능의 변방 TV조선의 '제작 쿠데타' 한 방으로 이끌어냈다는 게 새삼 관심거리다.
오늘 '미스트롯' 관련해 두 가지 얘기를 전하려 한다. 우선 가수 장윤정의 재발견이다. 이 프로를 끌고 가는 심사위원 얼굴마담은 젊은 트로트 작곡가 조영수와 함께 장윤정인데, 간판 심사위원으로 그녀가 좀 약하다는 당초 지적이 없지 않았다. 그 고정관념이 이번에 바뀌었다. 참가자 1대1 코치도 볼만 했지만, 그게 내내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이었다.
'신바람 트로트' 새로운 가능성
장윤정의 경우 예전 SBS 'K팝 스타'의 박진영 같은 요설(饒舌)의 심사평은 없었다. 진솔한 접근에서 오는 공감의 심사평이 외려 빛난다. 그중 명 심사평은 주부로 구성된 트로트 걸그룹 맘마미애가 팀 미션으로 노래 '우연히'를 불렀을 때 나왔다. 이 노래를 그들은 단순히 파트별로 나눠부르는데 그치지 않고 뮤지컬의 틀을 빌려와 화려한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이때 장윤정은 심사 코멘트에서 주목할 발언을 했다. 우선 "내가 있는 이 장르(트로트)에도 이야기가 필요하구나하는 걸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트로트 하면 혼자 부르는 노래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거기에 스토리를 입히고 드라마적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새로운 무대예술로 발전할 수 있다는 발견을 했다는 뜻일텐데 참 정곡을 찌른 코멘트였다.
그 직전 "(출연자) 네 분이 옷을 찢을 때 나도 옷을 찢고 싶었다. 나도 나이트에 가고 싶다"는 발언은 더 진솔했다. 육아와 가사에 지친 주부들이 펑퍼짐한 가운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변신을 하는 장면에 대한 공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백 마디 분석보다 그게 더 위력적이다.
장윤정의 재발견 못지않게 트로트의 잠재력도 이번에 새삼 엿볼 수 있었다. 청승 떠는 음악 트로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댄스 트로트, 록 트로트 등의 등장이 위력적이었다. 트로트는 이제 흥과 신바람의 동의어다. 오디션 참가자들의 연령층이 젊은 탓도 있지만, 트로트가 빠른 템포로 바뀌고 역동적 음악으로 변한 현상이 이 프로를 중심으로 뚜렷하다.
이게 트로트 장르의 변화에 큰 기폭제가 될 것도 분명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 냉정한 관찰자이어야 할 심사위원들이 틈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경연 참가자들의 노래에 추임새를 넣고 덩달아 춤추는 것도 실은 금기에 속한다. 하지만 '미스트롯'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그건 트로트 장르만의 힘이고, 한국적 일체감이 아닐까? 방송 초반 일부에선 밤무대를 연상시키는 선정적 옷차림이 시비의 대상이었다. 출연자 의상이 나가요 걸을 닮았다는 비판인데, 그건 TV조선 관계자들이 잘 새겨볼 문제다. 단 ‘미스트롯’이 대박이기 때문에 많은 지적도 용서된다. 남은 한 달 당신들의 깔끔한 마무리를 기대한다. 당신들은 음악 역사를 쓰고 있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